떠날 건 떠나고 남을 건 남은 늦가을, 친구와 단 둘이 걷고 싶은 곳 찾아 용인 민속촌으로 갔다. 그 곱던 이파리들도 떠나고 떨어진 낙엽도 쓸려 나가고 사람들마저 붐비지 않는 한적한 날이다. 맛있는 먹거리들로 즐비하던 난전들도 문을 닫았고 주말이 아니어서 참 한가로이 걸을 수 있었다. 거리는 깨끗이 쓸려 있고 보드라운 황톳빛 바닥의 촉감이 참 좋다. 무엇을 본다고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한가로이 걸으며 화려함이 지나간 뒤의 그 여운을 즐기러 갔기 때문에 그런대로 좋은 장소였다.
우리가 다 보고 이용까지 했던 과거의 물건들은 쓸모도 시간도 정지되어 있고 초가의 지붕은 이엉을 이기 전의 누추한 모습으로 썩은 속살을 털어내고 한창 월동준비로 분주히 보내는 모습이었다. 마당을 쓸고 있는 아저씨, 엿장수 재현의 가위소리, 대장간의 아저씨, 옛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그들은 평상복은 그대로 입고 그 위에 함부로 걸친 우리 옷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보이고 추워도 보이는데 쌀쌀한 초겨울의 찬기를 오후 햇살이 잠시 그들의 노고를 녹여주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비빔밥을 먹었는데 특별하지 않아도 맛은 괜찮았고 잘 익은 김치가 사이다 맛이 나는 게 참 맛있었다. 난 한 번도 그런 맛을 낸 적이 없는데 비법이 뭘까 궁금했다. 예전에 다녀갔을 때 먹었던 빈대떡이 생각나서 추가했더니 그 맛은 느껴지지 않았고 괜스레 포만감으로 힘들어서 우리는 더 걸어야 했다. 진한 커피를 한 잔씩 손에 들고 마시면서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더니 처음에 못 본 99칸짜리 집이 전통혼례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 예술적인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면 옛 모습 그대로 관리되고 있는 색 바랜 기둥이며 대청들이 아직도 여전히 멋스러웠다. 주인은 다 어느 하늘에 별이 되었을 텐데 공간은 그대로 남아서 사는 것이 다 무상함을 느끼면서 한 시대의 대가댁 생활을 그려보았다.
평일이어서 관객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입장료가 15000원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풍경이 우리에겐 좀 비싸게 느껴졌으니 뭔가를 보여주려는 듯 풍물놀이, 줄타기. 마상공연이 펼쳐졌다. 그중에서 줄타기는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그 앞에 서 있으니 모두가 비틀거리는 이 혼란한 세상에 오직 그만이 중심을 잡고 그만이 가장 정직하게 똑바로 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평생을 그렇게 외줄 위에서 노구를 이끌고 얼마나 똑바로 살려고 노력했는지 보는 우리는 가슴이 서늘한데 그는 놀이하듯 즐기고 있었다.
친구끼리는 수다도 좋지만 가끔은 호젓이 걸으면서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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