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현명한 딸의 효도(천진암성당과 두물머리)

반야화 2014. 9. 11. 14:34

 오곡백과가 영글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맑고 푸른 초가을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풍요를 느끼는 이 좋은 가을의 중심이 되는 한가위 연휴 마지막 날, 양 가족의 나들이가 가을 속의 풍경이 되어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딸 부부는 참으로 현명한 효도를 하고 있다. 친정과 시댁 어느 곳에도 걸림이 없이 효도를 하자는 주의로써 늘 우리는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어쩌면 한 번의 수고로 마음 편해지는 결정일 수도 있고 또한 그 어울림이 좋은지도 모른다.

 

노는 일도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연휴에 손님 치르고 밤늦게까지 놀다 보면 잠도 부족하고 일하는 날보다 더 피곤할 수도 있는 게 명절인데 마지막 날에 사돈 내외분과 남한산성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천진암에 들러 성지를 둘러보고 다시 양수리 두물머리에 가서 산책을 하고 나니 어느덧 해 그늘이 길게 드리우고 서쪽하늘이 붉게 물들어갈 즘 도심으로 들어와서 저녁식사까지 함께하고 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축계획을 잡을 때 빨리빨리가 언제나 자랑처럼 행해진다. 그런데 천주교 발상지로 알려진  천진암 대성당은 백 년 계획이란 세월을 잡아 놓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 정도면 종교를 떠나 누구나 현장방문이 하고 싶어지는 곳이다. 왜 하필이면 백 년으로 잡았을까를 생각해봤다.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내 생각엔 천주교가 백해 받은 기간이 백 년간이었다는 역사적 배경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엄청난 규모의 건축비도 이유가 되겠고, 무엇보다 신자라면 누구라도 벽돌 하나라도 얹어서 정성을 들이고 싶어 하는 신앙심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천진암 대성당 주차장에서 보면 대형 십자가와 성모상이 눈에 뜨인다. 주차장에서 차로 1.5길로 더 들어가서 계곡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숲 속에 천진암 강학 당지와 이벽 성조 독서처가 나온다. 조금 더 올라가면 대성당 부지가 있는데 대성당 건평만 3,300평이라니 일대 부지가 엄청난 규모다. 터 닦기가 시작된 지 30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대성당의 건축은 시작되지 않았고 제대석만 축성돼 있었다. 이 건축물의 완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갓 태어나서도 70살은 되어야겠지, 우리나라에선 우일 무이한 건축물이 될 것이다. 대성당은 퇴촌에 있는 667미터의 앵자산 앵자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그 아래 기슭에 창립선조들 다섯 분의  묘역이 있다. 양지바르고 고요한 누가 봐도

성지임을 느낄 수 있는 좋은 터에 자라 잡고 있다.

 

이곳이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가 되었는데 그 유래를 보면 불교신자로선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천진암이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천진암과 주어사 절터는 오늘날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특히 1800년 초 조정의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교인들을 주어사 스님들이 숨겨주다가 발각돼, 스님들은 처형당하고 절은 폐사당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조선 후기 당시 주어사 스님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해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배려했다. 주어사를 종교 화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주어서 복원을 추진 중이라니 늦었지만 참 다행이고 한편 중앙신도회는 주어사에 봉안돼 있다가 각각 절두산 천주교 성당과 영주시청으로 옮겨진 의징스님의 추모비와 부도를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니 그 뜻이 속히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이런 아픈 역시가 있지만 천진암 부지 내에는 어디에도 절터의 표시는 없고 안내글 한 줄도 없는데 성당의 이름만은 왜 천진암으로 그대로 쓰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연관성이라도 한 줄 설명이 있었으면 서로 배려하는 뜻도 될 텐데, 역사를 숨길 수 없는 걸 안다면 지금이라도 암자가 있었던 자리만큼은 표시를 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한데 마치 천주교에 쫓겨난 기분이 들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 대성당 완성 그림**

건축물은 동서양의 상징이 함께 있다.

지붕이 십자가로 된 조감도

 

 

 

 

두물머리는 언제 봐도 좋다. 세연지에 연꽃이 가득했을 여름 풍경은 또 얼마나 좋았을까! 수면에 따가운 햇살이 내려앉아 반짝이는 모습이 잔잔하고 큰 액자틀 속에 앉으면 누구나 영화 속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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