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7

어느 메마른 날

문득 발견한 인생 천지만물이 태어난 것도 음양의 휘감김인 걸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천지를 얻었다 했지만 한평생 물러서서 바라 볼 행복을 얻었는가? 순환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숨어 다니는 불행과 동반하지 않을 것이네. 세발이 되어서 걸어가는 노년에 동반한 건 그래도 친구였네. 이 길의 소실점에서 먼저 보낸 휘감김을 다시 찾는다면 내 옆에 자네는 없을 것이네. 속살은 아직도 청춘인데 언제 이 많은 나이테에 빼앗긴 고달픈 삶이던가. 쩍쩍 갈라진 상처는 봉합이 안 되고 결국은 내 관으로 쓰일 나무 같은 인생이여라. 친구, 이제 나는 베어져 관으로 가네 그대도 뒤따라 와 다음생도 동반해 주면 안 되겠는가? 고백하네 나 무척 외로웠다네.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증표라네.

living note 2009.02.25

구름낀 정월대보름

구름아,달을 뱉어라 하늘을 닦아 보름달을 볼까 하였더니 구름은 숨구멍 틈도 내 주지 않으니 내 맘에 구름을 걷어 심안으로 만나리라. 바람을 일구어 구름을 쫓아 보려 온몸으로 춤을 추어도 바람은 닫지 않고 은쟁반을 받쳐 든 빈손을 내리지 못하네 설익은 소원 하나 삼백예순을 기다려 결실을 보잤더니 무정한 구름이 소원까지 묻어 버렸네.

living note 2009.02.09

이외수씨가 뜨는 이유

요즘 이외수 소설가가 뜨고 있는 모양인데, 천진난만하고 자유로운 그를 나도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문인들이 너무 입을 다물고 있어. 옛날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는 애국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언론의 자유가 있는 이 시대에 김지하 시인의 오적 정도는 나와야 되는데, 오적을 보면 얼마나 통쾌하냐. 지금 정치권에서는 제2의 오적이 나올까 봐 언론 통제법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건, 아닌걸 아니라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네티즌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런 때에 이외수 씨는 힘든다고 하는 방송을 하면서 몇 마디씩 하는 정치, 사회 풍자가 전파를 통 해퍼 져 나가니 당연히 인기가 있을 수밖에. 문인들이 글을 통해 사회를 바로 보고 비판하는 안목은 없이 책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것..

living note 2009.02.02

낯선 숫자들

눈이 부시다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날씨에 기대를 거는 거야. 간밤에 싸락 싸락 눈이 쌓이더니 오늘 아침엔 반사되어 더욱 눈이 부시게 아침이 열리고 집안 가득히 선물처럼 밀려드는 햇살에 한 해 동안 걸러내지 못한 마음에 살균작용이 일어나고 있어. 그때도 그랬어. 새로운 천 년이란 낯선 숫자가 등장하고 사람들은 모두 새로움에 낯설어 한참을 헤매었지. 나 어렸을 땐 1900으로 시작하는 해만 있는 줄 알았다. 이제 겨우 낯선 숫자에 적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새 팔 년이 흘렀는가 싶었더니 또다시 맞이하는 낯선 숫자 2009라는 숫자, 숙제장처럼 등장한 365칸의 네모가 주어지 고정 답이 없는 숙제를 풀라고 한다. 그래, 난 내 방식대로 풀어 보는 거지 뭐, 첫날은 희망이..

living note 2008.12.23

이 시대의 얼굴 상

이 시대의 얼굴상,묘하게 생긴 바위가 이 시대의 일그러진얼굴상으로 비친건 왜일까.동터오는 아침이 버거운 사람들주린 고픔을 달래야 하는 사람들주머니가 두둑해도 무엇을 믿고 먹어야 할지가 고민인 사람들나는 이대로 괜찮을까 고민인 사람들고단한 삶을 물려 주고 싶지 않아역할이 고민인 사람들내 보금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고민인 사람들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어둠에묻히고 싶은 사람들눈감고 귀 막아도 들려오고 보여지는암담한 현실같은 이 시대의 얼굴상이목구비가 다 비뚤어진 이 모습이 성형되는그날이 오길 기원해 본다.

living note 2008.12.08

사계절 그림 넉 장에 놀다 보니...

그림 늑장에 놀다 보니    빛살 곱고 단풍이 고운 계절, 가을.아름다운 계절이라고  아름답게만 떠나지는 않는 것 같다.해마다 되풀이되는 나의 그림 늑장이 속에 놀다 보니 청춘은 가고 살갗엔 밭이랑 같은 주름과더러는 이별의 상처자국도  남는 걸 보면 봄에는 꽁꽁 닫아 두었던 마음문까지 열리고새로운 꽃바람으로 세월 가는 줄 모르다가가을이 되면  쓸쓸해지는 것은 세월의 깊이만큼 인생의 깊이도 기울어 가는 느낌 때문이리라.아직 한 철이 더 남았건만......... 겨울이야 마음까지도 월동준비를 하고다음 해는 더 좋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기다림의 시간이기에 묵묵히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아직 청춘의 초입 같은데내 인생의 하늘은 어느새 해가 중천을 지나서쪽으로 기울고 있어, 그렇지만 석양의 노을만큼은누구보..

living note 2008.10.09

소고기파동과 촛불집회

암담하다. 끝이 안 보인다. 세상은 지금 거미줄 같은 지하철 노선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도 입구도 출구도 온통 미로 같기만 하다. 구석구석에서 못 믿겠다,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구호로 나타나는데 구호마다 옳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다. 7080 민주화를 겪으면서 그 혼란한 시기에도 이토록 한 마음을 이룬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촛불을 들고 한마음으로 모였다. 그때는 세상이 어두워 은폐 속에 보도되는 언론매체를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밝혀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현장 목소리를 바로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세상이 되었구나 싶다. 이런 세상에서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왜곡된 주장으로 민심을 바로잡기는 더더욱 역부족이다. 이럴 때는 다수의 여론..

living note 2008.06.10

금선사의 새벽풍경

금선사의 새벽 풍경 간절한 염원으로 새벽기도를 마치고 법당 문 나서보니 선잠 깬 옥잠화는 새벽이슬 꼭 깨물고 예쁘게 터진 꽃잎 상큼한 향으로 공양을 드리고 경내는 꽃 향으로 취한 듯하다. 젖어드는 새벽안개 옷자락을 적시며 종각 아래 흔들의자에 앉아 저 린발을 풀고 있는데 선도산 품 안에 노니는 장뀌 소리가 적막을 깨우고 수묵화 같은 경내 풍경에 도취된 마음으로 사방을 눈 속에 넣고 보니 어느새 계곡도 깨어나 물소리 가락 지으며 흘러내리는구나. 새벽안개는 걷히고 한 줄기 빛에 눈떠보니 간밤에 성불이라도 한 것처럼 꽉 찬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 하는데 아직도 스님의 하얀 고무신은 범종소리로 새벽을 깨운 힘겨움에 외로워만 보이고 공양간엔 구수한 내음이 시장기를 돋우는구나. * 1993년 철야 신중기도드린 날

living note 2008.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