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7

함께 사는 세상이었으면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메인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혹한 소식에 문득 노숙하는 사람들이 걱정이 된다. 그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제대로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공간엔 관리자들이 돌아가는 밤 시간에는 다 봉쇄되고 겨우 맞바람이 치는 어느 역 통로에서나 한 자리 얻을 수 있었던 그들은 다 어디에서 이 추위를 견뎌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경쟁으로 태어난 다 같은 일등 선수들인데 어찌하여 모든 삶의 경쟁에서 밀려나 하필이면 그들일까? 무능해서라고, 아니면 억지로 운명으로 까지 치부해 버리기엔 사회구조엔 문제가 없을까? 발전하는 서울의 모습 이면에 멋진 음악에 춤추며 발광하는 반포대교 분수가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주거가 헐리고 쾌적한 공원으로 탈바꿈되는 세련된 도시가 발전으로..

living note 2009.12.19

반추

산책할 때는 그냥 걷기만 하는 것아 아니다. 혼자 조용히 걷다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은 것을 보려고 애쓴다. 오늘도 비 온 후에 우연히 본 특별한 것이 있다. 비가 조용히 내렸는지 간밤에 내린 비로 오목한 낙엽 한 장에 담겨 있는 빗물에서 그만 나신을 보고 부끄러운 듯 아무도 모르게 벗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지난날을 반추하고 있었다. 빼곡히 달고 있던 잎들을 다 떨구고 난 빈 몸을 본 나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해 살이를 다 끝내고 홀가분했을 수도 있고 새싹에서 단풍이 질 때까지의 변신을 거듭했던 깊은 회상에 잠기며 또다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living note 2009.12.05

삶에도 탄력을 유지해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고무줄 같은 세월인 줄 알았다. 한 끝을 어디엔가 매어놓고 한 끝은 느슨하게 잡고 출발한 세월을 조금씩 감아쥐면서 몇 고비를 변해야 했던 역할을 어느 만큼 하고 나서 더러 매듭도 풀고 팽팽하게 잡고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고무줄 한 매듭에서 추의 무게가 느껴지고 수직으로 늘어나 추락해 가는 나를 발견한 바쁜 마음에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달음박질로도 쫓아갈 수 없는 세월을 그리 느긋하냐고, 내모는 듯한 울림에 놀란 의식을 깨워 따뜻한 방을 박차고 삶의 탄력을 유지하기 위해 겨울 속으로 맞서기로 다짐한다. 첫 추위를 맛보는 피부는 까칠하게 곤두서지만 지난 계절들의 씨를 다 품고 있는 대지는 아름답기만 하다. 동면에 든 까만 나무는 봄을 품고 가을밤을 합창하던 소리들은 유충으로 품고..

living note 2009.11.16

가장 아름다운 법당

진관 공원을 걷다. 부처를 형상으로 모시고 절을 짓는 것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함이지 그곳에 부처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부처는 마음속에 있고 기도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停)이라고 걸어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조용히 있거나 이 모든 행위 속에서도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자유롭고 자애로움인가, 이 가르침이 시간의 제한을 받는 나에게는 참으로 큰 위로가 되어서 난 집 앞 야산 공원을 나만의 법당이고 또한 최고의 법당이라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서원을 담아 고요히 산책을 하고나면 온 마음이 후광에 쌓이는 것처럼 환희를 맛보기도 해서 굳이 절을 찾지 않은지가 참 오래된 것 같다. 자연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자연의 순리에서..

living note 2009.11.09

내 고향에도 가을이

친정 가는 길, 거대한 수채화 화폭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그런 거였다. 짙은 안개가 원경을 수묵담채화로 만들기도 했지만 조금씩 벗어나는 안갯속의 화폭은 명산의 화려한 단풍이 아니라 나지막한 야산에 여러 가지 색채가 조화를 이루며 갓 미술을 전공한 순수함의 작품 같기도 한 그 풍경 속 끝 지점에 아련히 남아있을 친정으로 내달리는 가족여행이 10월의 마지막 날을 추억의 한 페이지로 만들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친정이 자꾸만 발길이 멀어지는 건 무조건 갔던 만만한 곳이 아니라 볼일이 생겨야 찾게 되는 거리가 되었지만 들어서면 아직도 엄마의 따스함이 그대로 느껴질 만큼 가을걷이를 보따리 보따리로 싸 주는 오빠 내외의 인정이 엄마의 손길을 그대로 아어가고 있어 아직도 내게는 변함없는 친정이다. 당일 돌아와야..

living note 2009.11.01

찰나가 만든 거리

추모관을 다녀와서 찰나의 가장 짧은 순간이 가장 먼 거리가 되는 생사의 갈림길, 이승과 저승은 그런 관계였어 처음으로 방문한 추모관이란 곳은 장묘문화가 바뀌면서 생겨난 신들의 아파트 같기도 했다. 살아서 움켜잡고 욕심부리던 재산들이 무슨 소용이람. 거기는 빈부차도 없이 일정한 공간에 항아리 하나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외관상으론 가족공원 같은 느낌을 주려고 아름다울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었지만 머물고 싶은 공원은 아니었어 내 가족만 모셔져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마무리된 인생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신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엔 이미 공원이 아니라고 하니 내 형제가 있는데 왜 그리 거리가 먼지....... 야산엔 수목장이 있고 명패가 걸려있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더러는 주인을 기다리듯 무성한 잎을 피워..

living note 2009.10.14

반포대교 야경

밤중에는 도심에 있을 필요가 없었던 내가 언젠가부터 차로만 지나던 한강을 걸어서 건너보고 싶다고 늘 생각만 하다가 추석을 맞아 집에 와 있는 딸하고 같이 걷기로 하고 종로 3가에서 만나 반포대교로 갔다. 반포대교는 오세훈 시장의 걸작으로 불릴만한 무지개분수가 화려한 불빛과 함께 멋진 음악 선률에 맞혀 물줄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 잠수교를 천천히 걸으면서 음악도 듣고 사진도 찍고 작심한 야경 산책에 푹 빠져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양 옆으로는 다른 대교의 불빛과 도시의 불빛이 어우러져 있고 하늘에는 조금도 기울지 않은 한가위의 만월이 청아한 은파를 무지개분수만큼이나 내리고 있는데 서울을 홍보하기에 충분한 명소를 딸과 함께 걸어보는 여유로운 가을밤의 낭만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리라. 무..

living note 2009.10.05

나의 꽃밭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꽃밭을 살피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두 딸이 꽃이었는데 이젠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되는 화분을 박차고 더 넓은 공간으로 꽃을 피우러 나가고 나니 어디에다 정성을 쏟아야 할지 생각하다가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고 나면 한 잎씩 피어나고 꽃을 피워주고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이쁜 모습으로 정성에 보답해 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잎에는 윤기가 흐르고 꽃은 제 색깔을 가장 농후하게 머금은 채로 우리는 날마다 아름다운 교감을 나누고 있다. 난생처음으로 내손으로 씨앗을 뿌려 꽃까지 피워보니 농사꾼의 해마다 거두는 결실에 못지않는 기쁨이 있다. 뭔가를 키운다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인 줄 알았던 내 시간들이 고스란히 새싹과 잎에 녹아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아무것도 ..

living note 2009.10.01

지하철 단상

단상 1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 빽빽한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나라가 IMF 부채를 지고 살던 때에 콩나물시루 같던 출근길에 툭 튀어나온 등산배낭을 남의 앞에 들이밀고서 있을 때는 참 많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난 그래도 그런 모습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날마다 들려오는 소식은 실직과 생존투쟁 이야기뿐인 것 같은데 그래도 출퇴근하는 인파가 많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10년을 주기로 어떤 고비 같은 게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국가도 다르지 않은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걸 보면 지금이 한 고개를 넘어가는 깔닥고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상 2 파아란 하늘이 넓은 배경으로 드리워져 있고 맑고 향긋한 가을 공기는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living note 2009.09.22

오고 가는 길

오는 것도 내 뜻이 아니요 가는 것도 내 뜻이 아닌데 올 때는 내가 울고 갈 때는 짝이 운다. 인생행로 먼 소실점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씨도 뿌리고 열매도 맺으면서 함께 걷던 길을 앞서서 가시덩굴 걷어주며 손잡아 주던 님 이제는 가고 없는 길 위에 서서 소실점 끝에 먼저 가 기다리는 님 따라가지 못하는 남은자의 슬픔이 빗물 되어 그 길을 적시는구나. 청천에 별이 되신 님이시여! 뒤 따를 어둠의 길 밝혀주시어 그대 숨결로 조금만 더 이세상을 견디며 큰 뜻의 영광을 심어둔 후 그대 곁에 별이되리다. 김대중 대통령님을 추모하며

living note 200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