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86

아기가 발견한 하늘

그날도 이랬을까요! 어느새 25년이 지나고 아이는 20대 후반에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문밖에서 엄마, 하고 뛰어 들어오더니"엄마, 나 하늘에 오줌 눴어"라고 하는 거예요. 하늘에 어떻게 오줌을 누지? 했더니 엄마손을 잡고 보여주겠다고 나간 곳에는 비가 오고 나서 오늘처럼 활짝 개이고 뭉게구름이 아름답던 날 길에 빗물이 고여서 거기에 하늘이 비친 것입니다. 그때 네 살짜리 아이는 빗물에 쉬를 하고는 하늘에 오줌을 눴다라고 하던 그 이쁜 말이 얼마나 시 적인지 지금 생각해도 순수한 동심이 너무 귀여워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집 앞 연못으로 나갔더니 연못에 이쁜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이 비쳐서 우리 아이가 보던 그때의 하늘 같았습니다.

living note 2009.08.09

기다려주자

빨리 어떤 결단을 내야 하는 국민성이 나에게도 다분히 보인다. 그런데 작은 꽃 한 송이를 보고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배운다 모종이 아닌 꽃씨를 뿌려 꽃 피워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자고 나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화단으로 갔는데 어느날 한낮 그 무성하던 화초 잎에 구엉이 뻥뻥 뚫려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새파란 벌레 한 마리가 그 짖을 하고 있길래 빨리 없애야 한다는생각으로 옆에 있던 바퀴벌레 약을 뿌려 버렸다, 벌레 한 마리 손으로 잡지 못해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후, 벌레는 죽었는지 보이지 않고 한련화의 남은 잎들이 누렇게 말라버렸다. 꽃에게 너무 미안해서 사과를 하고 자책하면 지내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털이 다 뽑힌 싸닭 움 닭 같던 줄기에서 ..

living note 2009.07.14

폭우 속으로 산책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졌다 젖어도 상관없는 가장 편한 차림으로 동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역시 나다니는 사람 없고 자연만이 피하는 법 없이 굵은 빗방울에 아파 보였다. 동네 실계천에는 마치 큰 강처럼 흙물로 가득 찼고 길 건너 창릉천도 무섭도록 흙탕물로 수초들을 다 덮고도 뭔가를 더 쓸어갈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동네 생태연못에는 왜가리 한 쌍이 날아와 흙탕물을 비행을 하다가 먹이를 잡을 수 없어선지 물가를 서성이고 있었는데 늘 밤에만 산책을 하다 보니 오늘 처음 보는 한쌍이 너무 신기하여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날아갈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밤에 다니던 길을 다 돌고 집에 들어오니 벌써 서쪽하늘에는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 눈부시게 하루를 마감하는 광채를 내고..

living note 2009.07.09

떨어져서 피는 꽃

여름에는 밤이 참 좋죠. 낮에는 차만 보이던 동네가 밤이 되니 온 가족이 강아지까지 다 밖으로 나옵니다. 공기는 또 얼마나 좋은지 풀벌레와 개구리 맹꽁이까지 합창으로 한여름밤의 꿈같은 향연을 매일 밤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달까지 밝아서 조명까지 비추이는 무대는 더욱 빛나는 밤입니다. 합창이 잦아들고 강가로 갔더니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이름 모를 꽃이 떨어져 잔디 위에서 다시 피는 것 같이 아름답게 보였어요. 어쩌면 떨어진 모습이 이렇게 이쁠까요? 밤은 깊어 가는데 이쁜 꽃과 밝은 달을 두고 들어 올 수가 없어 서성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서 작은 수반 꽃잎을 띄워두고 보려고 안고 왔습니다. 며칠은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식탁에는 산에서 찍은 사진을 유리 밑에 깔았더니좀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저의 작..

living note 2009.07.08

엄마는 휴가 중

30년 만에 찾아온 휴가를 즐기려 하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보낼 방법도 없지만, 이것이 때로는 빨간 띠를 두르지 않는 파업 같기도 하고 자유가 지나쳐 방종 같기도 해서 어떤 때는 끼니때가 되어 솥뚜껑을 열면 밥이 없거나 국솥에 국이 없을 때도 있다. 아니면 휴업상태 같기도 해서 아침이 되어도 부엌으로 가지 않고 침대에 누워 그냥 음악만 듣고 있기도 하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방 안에서 잔잔한 선률이 마음을 실어 일몰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다. 먹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던 일상이 요즘은 먹는 건 별게 아닌냥 내 맘대로 살고 있는 것 같다. 날짜도 요일도 알 필요가 없다 딱히 일정에 따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딸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출가, 가출? 을 해 버리고 나니 마치 30년 만에 얻은..

living note 2009.06.25

시원섭섭함이란?

삶이 완성되기까지에는 몇 번의 이별이 찾아 오지만 강 물 위에 꽃잎을 띄워 보내 듯 간절한 염원을 담아 고이 보내야 하는 이별도 있었네. 새끼를 가진 삶이란 천일염보다 짜다,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이 깊은 의미로 느껴지는 밤. 그렇게 염전 같았던 가슴으로 키워낸 딸을 떠나보낸 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더니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 싶었다. 자식 하나를 올바르게 키워내는데 들어가야 하는 공은 어쩌면 짜디짠 염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역할의 일부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주는 일은 염전에 작은 물길 하나를 두어 민물이 들어오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몇 번의 이별이 또 얼마나 가슴을 적실지 모르지만 내가 잘 살아주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함이라기보다는 떠나간 내 일부를 위함일지도 모른..

living note 2009.04.08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자

나의 존재감 나에게 있어서 존재감이 없는 것을 말하라면 유행가 가사 2절 같은 것이다 1절보다 더 멋진 가사라 하더라도 난 한 번도 2절을 알려고 애써본 적이 없으니까 집안에서 존재감 1위일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차츰 밀려나 유행가 가사 2절이 되었다. 정해진 나의 한계에 다다르는 동안에 나의 존재감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기억되는 부분보다 잊히는 상실감이 더 클 것 이기에 애써 나를 부각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내가 가꾸어오던 꽃밭에서 한 포기씩 분양된 꽃(딸들)들은 더 이상 그 꽃밭을 돌아보지 않는다. 나의 영역엔 잡초가 무성하고 박차고 나간 꽃들은 나 없이도 잘 살고 있으며 더 이상 잔소리가 먹혀들지 않는, 더 나아가 이 세상 한 귀퉁이에 나 하나 없다 해도 계절은 돌고 돌 것이며 봄..

living note 2009.03.16

나를 위한 시간

참 지루하게도 해 바쳤다. 거친 표현을 하고 싶은 주부라는 자리, 그 무수한 날들에 가족을 위한 밥상에 나의 숟가락이 얹힐 뿐 남편을 위해서 국은 꼭 있어야 하고자 식을 위해선 졸임이나 찜 같은 게 있어야 하고 냉장고는 차 있는데 나를 위한 찬통이 없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만의 상을 차리기로 했다. 나의 상은 편리해야 하고 내가 좋아해야 한다. 가족이 다 나가고 난 후 점심 한 끼 먼저 커피콩을 갈아서 실내 가득 향을 풍겨 놓고 물을 끓여 원두를 걸러놓는다. 직접 만든 요구르트에 직접 만든 매실을 넣어 소스를 만든다. 그다음에는 사과. 바나나. 호박고구마 으깬 것. 적채. 호두를 담고 소스를 끼얹어 샐러드를 만들고 빵 한 개 반을 구워서 그 위에 올려서 먹는다. 그런데 가끔은 진한 커피 향이 마주하고 ..

living note 2009.02.28

어느 메마른 날

문득 발견한 인생 천지만물이 태어난 것도 음양의 휘감김인 걸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천지를 얻었다 했지만 한평생 물러서서 바라 볼 행복을 얻었는가? 순환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숨어 다니는 불행과 동반하지 않을 것이네. 세발이 되어서 걸어가는 노년에 동반한 건 그래도 친구였네. 이 길의 소실점에서 먼저 보낸 휘감김을 다시 찾는다면 내 옆에 자네는 없을 것이네. 속살은 아직도 청춘인데 언제 이 많은 나이테에 빼앗긴 고달픈 삶이던가. 쩍쩍 갈라진 상처는 봉합이 안 되고 결국은 내 관으로 쓰일 나무 같은 인생이여라. 친구, 이제 나는 베어져 관으로 가네 그대도 뒤따라 와 다음생도 동반해 주면 안 되겠는가? 고백하네 나 무척 외로웠다네. 이것이 인생의 마지막 증표라네.

living note 2009.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