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담하다. 끝이 안 보인다. 세상은 지금 거미줄 같은 지하철 노선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도 입구도 출구도 온통 미로 같기만 하다. 구석구석에서 못 믿겠다,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구호로 나타나는데 구호마다 옳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다. 7080 민주화를 겪으면서 그 혼란한 시기에도 이토록 한 마음을 이룬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촛불을 들고 한마음으로 모였다. 그때는 세상이 어두워 은폐 속에 보도되는 언론매체를 전적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밝혀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현장 목소리를 바로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세상이 되었구나 싶다.
이런 세상에서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왜곡된 주장으로 민심을 바로잡기는 더더욱 역부족이다. 이럴 때는 다수의 여론이 옳은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쇠고기 문제, 대운하 문제, 기본생활과 직결되는 공기업 문제, 물가상승이 모두, 어느 것 하나도 정책이 좋거나 옳다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더 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답답한 건 국민 대다수가 부정하고 아니다고 하면 그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듣지도 않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 그것이 답답하다. 아마도 저조하던 투표율을 무시한 채 월등했던 선거 결과를 너무 과신한 지지자들이 원했던 결과를 빨리 내놓으려고 무리한 정책을 쓰는 건 아닐까? 가장 먼저, 경제를 살려야 된다는 과제를 안고 출범한 정부가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에만 치중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만 보인다.
개인도 신용회복이 어려운데 온 국민의 원성을 샀던 국가가 잃어버린 신뢰 회복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정치를 잘한다고 해도 믿음보다는 의심을 먼저 받는 정부가 될 것이 걱정스럽다. 정부가 먼저 말했다. 세계를 향해서 "대한민국의 기업에 투자해 주십시오"라고 투자도 되기 전에 주주총회가 먼저 열리고 있는 꼴이다. 주주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을 수 있어야 될 텐데.......
기업은 상대적이고 경쟁적이다. 상대가 무너져도 내가 살아야 하는 것이 기업논리인데 국가경영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국가는 어느 일부분이 좋아야 되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아우르고 전체가 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민의 소리에 귀를 귀 우려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신자유 주의인 FTA 란 거대한 시장에 경제를 살릴 최선책이 있다고 생각해서 마구 밀어붙이는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만 이번 쇠고기 문제로 생긴 촛불집회는 위험물질 수입 반대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보다 국가적인 자존심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말만 선진국 대열에 섰다고 하면서 협상은 후진국보다 못하게 했으니까.
후진국에서도 가려서 질적으로 까다롭게 했던 협상을,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보면 그들은 먹지 않는 온갖 부산물까지 싹 쓸어오는 협상을 하고도 질 좋은 고기 싼값에 먹게 해 주었다고 하니 분노가 치밀 수밖에, 더군다나 우리나라 의식 수준이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는 통치자의 수준이 한심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온 국민이 원하는 재협상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앞으로는 좀 더 투명한 정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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