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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의상능선을 타다. 나의 소우주에는 순환하는 사계절들로 꽉 들어찬 기분이다. 유래 없는 춘설로 계곡에는 여름 같은 물이 그들만의 멜로디로 봄바람과 합주를 하면서 흐르고 더디다고 재촉하던 봄기운도 밑에서부터 꽃을 피우면서 나와 같이 산행을 즐기며 산등성이를 넘는 것 같았다. 2010년 새봄이 시작되고 시산제도 지냈으니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으로 산행을 하게 되리라. 우선, 의상능선부터 다시 시작하려는데 그곳은 북한산에서 다소 험한 코스여서 피해왔지만 지난해 핼리콥터로 돌을 실어 나르고 했으니 위험한 곳이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기도 해서 코스로 잡았더니 역시 안전하게 돌계단으로 잘 짜여 있어서 이제는 걱정 없이 누구나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거의 수직상승으로 올라야 하는 의상능선, 용혈봉, 용출봉...

등산 2010.04.06

법정스님의 향기

봄은 오고 꽃은 피는데 스님의 낙화를 어찌 보라시는지요 아름다운 꽃도 향기 없이 지고 마는데 스님의 향기는 너무도 짙어 세세생생 `맑고 향기롭게`로 남습니다. 스님의 말씀 구구절절은 세상에 굴러 다니던 때묻은 말씀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세상을 굴러다니는 법륜이 되어 미혹한 중생의 마음에 큰 울림이 되고 자나 깨나 지니고 싶은 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걸 다 비워도 그것이 충만으로 되는 건 스님의 향기입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진정한 멘토가 되어주실 선지자님 한꺼번에 떠나시니 텅빈 충만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서운함만 가득합니다. 민주화의 꽃 한꺼번에 낙화되고 정신적 지도자 한꺼번에 떠나시니 혼란한 세상에 우매한 방황만이 감돕니다. 스님의 재가 불씨가 되어 다시 세상에 빛이 되어 주시옵소서! 법정스님을 추모하..

living note 2010.03.15

자연의 모성

진관공원과 북한산 어제 본 것이 꿈의 환영인가,춘설은 그렇게 맥없이 녹아내리고 화폭 같던 공원에는 나목만이 황사에 흔들리고 있다. 생강꽃이 필 무렵인데 혹한 보다 더 많은 눈이 오는 게 변고라고 할 수밖에. 자연이라고 모성이 없겠는가. 앙상하고 헐벗은 母木이지만 자식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따뜻한 모성은 사람과 같은 것이어서, 메마른 엄마나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이지만 몸속에는 고운 꽃과  잎을 다품어 안고 긴 겨울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꿋꿋이 견디어 내고 있다. 그러면서 선뜻 봄 속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마치 부모가 어린아이를 험한 세상 밖으로 내 보내지 못하는 심정으로 춘설을 염려했던 것 같다.  꽃샘추위가 잦아들 무렵 이제는 내어 놓아도 괜찮겠지 싶어 그냥 피게 두었던 철없는 어린 꽃이 ..

등산 2010.03.12

관악산에서

날씨만으로도 기분 좋은 출발이다.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캄캄한 밤과 대비되는 아침으로 보면 천지만물이 밝음으로 인해 깨어나고 햇빛을 양식으로 봄을 맞이하려는 자연에게 땅속 깊이 비춰 드는 아침은 얼마나 더 찬란한 환희로움인지. 이런 맑고 상쾌한 아침에 대자연의 호흡 속으로 들어가는 행복이 얼마만 한 지를 아는 사람은 그 또한 자연이다. 산속, 그곳에 가면 언제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나고, 빠져들고 그러다가 그 여운으로 다시 찾고 그렇게 보낸 세월이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참 많은 순리를 배우고 따르며 살아가는 인생이 행복인 거지 그렇게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등산 2010.02.24

신도림역

신도림역 신도림을 아시나요/거대한 지하 괴물의 뱃속 같은 인천행에서는 누구나 학다리가 된다/한 다리를 감추고 선 산고의 고통 같은 기다림/ 문이 열리면 수많은 옆구리로 아우성 없는 해산을 하고/ 인파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파도의 포말이 된다./ 2분마다 파도가 밀려오고 쓸려가는 신도림의 인해. 가난한 영혼으로 배를 채운 괴물은 하 모니카를 연주하기도 하고 /날 선 목소리로 외치는 짧은 장터가 되기도 한다/ 하모니카 연주가 시작이 되면 모세의 기적처럼 인해가 갈라지고/ 연주자는 유유히 땡그랑 소리를 즐기며/ 그 긴 인해를 가르며 그릇을 채우고 고단한 삶을 괴물에 기대어 밀려오고 쓸려 가는 파도를 탄다. 그래도 이 얼마나 다행이냐/ 아침마다 학다리가 되어도 좋다고 삶을 지고 섰는 이는 갈 곳이 있어 행복이 아..

living note 2010.02.20

눈밭에 서서

이 모양이 어떻게 생겼을까요? 발자국도 아닌 것이 음각과 양각의 무늬가 생겼고 음각에는 단풍잎이 구르다 빠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새하얀 눈밭, 이것은 갓난아기 마음 밭이고 이것은 착한 사람 마음 바탕이고 이것은 욕심 없는 근본이다. 이 순수, 어쩌다 발자국 하나 생기는 것은 세상의 때가 묻음이고 어쩌다 한줄기 길이라도 생기면 욕심의 맛을 알게 되고 어쩌다 마구 밟히면 타락의 세상이다. 새하얀 건 위험한 것 누가 발자국을 남겨 세상의 때를 묻혔는가 누가 길을 내어 욕심을 알게 했는가 누가 드나들어 타락한 세상인가 이것이 인생의 쓴맛이라면 다시 눈밭으로 돌아가리라.

등산 2010.02.17

섣달 그믐날의 선물

생각지도 못했다. 밤사이 눈이 온다는 예보가 없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커튼을 열었는데"어머나 눈이다" 하는 환호성과 아침부터 미소가 지어지는 아주 기분 좋은 설을 맞게 되었다. 지난 2009년 연말에도 눈이 와서 좋았는 데음력 섣달 그믐날 뜻밖의 하얀 설경이 선물로 배달된 것 같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주부라면 오늘이 보통날이라야 말이지. 아침부터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일거리는 잔뜩 쌓여있고 그렇지만 도저히 설레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어, 가게에 살 것도 있고 해서 장바구니를 들고 한 바뀌 돌고 들어 오려고 생각했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하듯 진관 공원 옆을 지나는데 마음이 오늘은 발끝에 돌고 있는지 저절로 장바구니 말아 쥐고 공원(앞산)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이젠도 지팡이도 아무런..

등산 2010.02.13

수다의 단계

수다에도 단계가 있다. 우선 문화라는 걸 살펴보면 그것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어떤 것에 서서히 젖어들다가 타성이 되고 공감대가 형성이 되다 보면 문화로까지 정착이 되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 가족제도가 대가족 중심에서 언젠가부터 핵가족화가 되어버린 것이 어느새 문화처럼 당연시되고 자식들뿐 아니라 부모들까지도 함께 사는 걸 대부분 힘들어하는 추세다. 그렇게 되어가는 원인은 개인주의가 팽배해져서 효 사상은 점점 쇠퇴해 가고 매사에 자신을 위주로 생각하는 관점이 두드러지다 보니 서로의 독립된 생활에서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 익숙해지는 것이다. 핵가족의 정착은 우리들의 수다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떠는데 친구가 그런다. 시집간 딸이 아이를 낳아서 ..

living note 2010.01.27

2010년 첫 산행

경인년 새해가 된지도 벌써 한 달이 반 이상 가 버렸다. 눈 덮인 산에 누구보다 먼저 오르고 싶었던 내가 어쩌다가 그 좋은 설경을 다 놓치고 이제 눈이 물로 되어가는 때에 찾게 되었는지, 처음엔 눈이 너무 많아서 못 가고 그다음엔 혼자는 못 가고 그러다가 뒤늦게 오늘에야 갔더니 아직도 음지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양지에는 모처럼 기온이 올라 녹은 눈이 질퍽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험심을 버려야 하는데 오늘은 평소에 가지 않던 코스를 택해서 한참 오르는데 가파른 길에 눈까지 쌓였고 잡을 곳도 발 디딜 곳도 없는 눈 쌓인 바위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속으론 얼마나 두려웠던지, 혼자서 간밤에 꾸었던 꿈이 생각나는 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찔한 경험을 했지만 정상에 서는 순간 안도의 긴 숨을 토해내면..

등산 2010.01.19

주부의 정년

주부의 정년은 가지는 처내고 몸통만 남은 고목같은 것/ 어느날 서류 속에도 가지치기가 끝나고 동그마니 몸통만 남은 것/ 가지는 또 다른 땅에 삽목의 뿌리를 내리고/ 고목의 홈통 한 켠에 생사가 불안한 새잎이 돋고 새로운 가지를 키운다. 나는 새로운 가지/ 언제 내가 이렇게 평화로웠던가/ 언제 내가 이렇게 자유로웠던가/ 언제 내가 이렇게 한가로웠던가/ 언제 내가 걱정없는 날이 있었던가, 아! 지금이 좋다. 고목에 잎을 피운 지금이 참 좋다. 변덕스런 교육정책, 바늘구멍 취업난도 강건너 불구경/ 그러나 한 가지 양념처럼 남겨 놓은 일/ 밑그림도 채색도 끝나고 화룡점정만 남았네/ 사랑으로 시작한 인생 사랑으로 열매맺고/ 사랑으로 떠나보낼 예쁜 꽃송이 하나/화룡점정 되는날은/ 두번 째 식목일/ 마지막 꽃잎 하나..

living note 2010.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