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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가 만든 거리

추모관을 다녀와서 찰나의 가장 짧은 순간이 가장 먼 거리가 되는 생사의 갈림길, 이승과 저승은 그런 관계였어 처음으로 방문한 추모관이란 곳은 장묘문화가 바뀌면서 생겨난 신들의 아파트 같기도 했다. 살아서 움켜잡고 욕심부리던 재산들이 무슨 소용이람. 거기는 빈부차도 없이 일정한 공간에 항아리 하나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외관상으론 가족공원 같은 느낌을 주려고 아름다울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었지만 머물고 싶은 공원은 아니었어 내 가족만 모셔져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마무리된 인생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신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엔 이미 공원이 아니라고 하니 내 형제가 있는데 왜 그리 거리가 먼지....... 야산엔 수목장이 있고 명패가 걸려있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더러는 주인을 기다리듯 무성한 잎을 피워..

living note 2009.10.14

반포대교 야경

밤중에는 도심에 있을 필요가 없었던 내가 언젠가부터 차로만 지나던 한강을 걸어서 건너보고 싶다고 늘 생각만 하다가 추석을 맞아 집에 와 있는 딸하고 같이 걷기로 하고 종로 3가에서 만나 반포대교로 갔다. 반포대교는 오세훈 시장의 걸작으로 불릴만한 무지개분수가 화려한 불빛과 함께 멋진 음악 선률에 맞혀 물줄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 잠수교를 천천히 걸으면서 음악도 듣고 사진도 찍고 작심한 야경 산책에 푹 빠져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었다. 양 옆으로는 다른 대교의 불빛과 도시의 불빛이 어우러져 있고 하늘에는 조금도 기울지 않은 한가위의 만월이 청아한 은파를 무지개분수만큼이나 내리고 있는데 서울을 홍보하기에 충분한 명소를 딸과 함께 걸어보는 여유로운 가을밤의 낭만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리라. 무..

living note 2009.10.05

나의 꽃밭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꽃밭을 살피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두 딸이 꽃이었는데 이젠 더 이상 돌보지 않아도 되는 화분을 박차고 더 넓은 공간으로 꽃을 피우러 나가고 나니 어디에다 정성을 쏟아야 할지 생각하다가 화초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고 나면 한 잎씩 피어나고 꽃을 피워주고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이쁜 모습으로 정성에 보답해 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잎에는 윤기가 흐르고 꽃은 제 색깔을 가장 농후하게 머금은 채로 우리는 날마다 아름다운 교감을 나누고 있다. 난생처음으로 내손으로 씨앗을 뿌려 꽃까지 피워보니 농사꾼의 해마다 거두는 결실에 못지않는 기쁨이 있다. 뭔가를 키운다는 것은 잃어버린 시간인 줄 알았던 내 시간들이 고스란히 새싹과 잎에 녹아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아무것도 ..

living note 2009.10.01

내 인생의 무대

북한산 족두리 바위,여기를 가기 위해서는 불광동에서 출발을 해야 한다. 북한산 품이 얼마나 장대한지 코스에 따라 출발점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같은 북한산 줄기이지만 정릉 쪽에서 출발하려면 우리 집에서는 차로 4분 거리에 산성입구가 있는데 비해  여기서 정릉까지는 한 시간 이상을 가야 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기도 하다. 3년을 다녀야 다 갈 수 있다는 코스들을 난 거의 다 가 본 셈인데 이상하게도 몇 년 후에 다시 가면 처음 가는 것처럼 낯설어진다. 그만큼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북한산은 언제부터인가 내 중년의 삶을 풍요롭게 장식해 주는 내 인생의 무대가 되고 있다. 계절과 장소에 따라 연극무대, 음악 무대. 독서 무대 등 희로애락의 대부분이 연출되는, 어쩌면 앞으로도 불과분의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등산 2009.09.23

지하철 단상

단상 1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이 빽빽한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나라가 IMF 부채를 지고 살던 때에 콩나물시루 같던 출근길에 툭 튀어나온 등산배낭을 남의 앞에 들이밀고서 있을 때는 참 많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난 그래도 그런 모습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날마다 들려오는 소식은 실직과 생존투쟁 이야기뿐인 것 같은데 그래도 출퇴근하는 인파가 많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는 10년을 주기로 어떤 고비 같은 게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국가도 다르지 않은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걸 보면 지금이 한 고개를 넘어가는 깔닥고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상 2 파아란 하늘이 넓은 배경으로 드리워져 있고 맑고 향긋한 가을 공기는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living note 2009.09.22

거꾸로 보는 세상

도봉산 산행 중에서 살다 보니 가끔은 이기적인 행동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보는 하루였다. 바로 뒤에 북한산을 두고 한 시간 반을 가야 하는 도봉산은 참 힘들었다. 모처럼 동행하는 친구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결정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늘 얼마나 일들이 꼬였는지 너무 힘든 후에야 느낀 것은, 용감하게 북한산으로 와, 하는 한 마디만 했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난 배짱이 부족한지. 몇 주 만에 하는 산행이 힘들었지만 날씨가 맑고 하늘이 푸르러서 어지러웠던 기분을 진정시켜 주었고 오랜만에 수다도 떨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다가 혼자 잠시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그 속에 산이 거꾸로 들어차 있는 걸 우연히 발견하고 그래서 세상을 거꾸로 보는 방법으로 사진을 찍어보았다. 아름다운 산천은 거꾸로 ..

등산 2009.09.01

오고 가는 길

오는 것도 내 뜻이 아니요 가는 것도 내 뜻이 아닌데 올 때는 내가 울고 갈 때는 짝이 운다. 인생행로 먼 소실점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씨도 뿌리고 열매도 맺으면서 함께 걷던 길을 앞서서 가시덩굴 걷어주며 손잡아 주던 님 이제는 가고 없는 길 위에 서서 소실점 끝에 먼저 가 기다리는 님 따라가지 못하는 남은자의 슬픔이 빗물 되어 그 길을 적시는구나. 청천에 별이 되신 님이시여! 뒤 따를 어둠의 길 밝혀주시어 그대 숨결로 조금만 더 이세상을 견디며 큰 뜻의 영광을 심어둔 후 그대 곁에 별이되리다. 김대중 대통령님을 추모하며

living note 2009.08.20

세월에대한 변명

세월이 흐르는 것이라고 누가 말하는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마는 계절같이 원하지 않아도 늘어나는 나이테같이 그것을 흐르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거스르고 싶은 마음속에는 오롯이 세월이 쌓이고만 있다. D데이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기다리는 시간에도 쌓여있고 무심한 낚싯대에도 세월은 쌓이는 것이라고, 그렇듯이 세월은 흘러 없어지는 게 아니라 보물도 아닌 것이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것에 대해 잡지 못하는 세월에 대한 변명을 해 본다. 한가족이 집안을 채우고 살 때는 작기만 하던 공간들이 방 임자들이 하나씩 떠나고 나니 필요치 않은 물건들만 버림받은 모양새로 퇴물이 되고 가져가라 해도 버리고 간 것들 어쩌면 남은 나같이 보이기만 하는데 이제 물건에 대한 집착은 버릴 때가 온 것 같구나.진열하고 싶은 것..

living note 2009.08.14

아기가 발견한 하늘

그날도 이랬을까요! 어느새 25년이 지나고 아이는 20대 후반에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문밖에서 엄마, 하고 뛰어 들어오더니"엄마, 나 하늘에 오줌 눴어"라고 하는 거예요. 하늘에 어떻게 오줌을 누지? 했더니 엄마손을 잡고 보여주겠다고 나간 곳에는 비가 오고 나서 오늘처럼 활짝 개이고 뭉게구름이 아름답던 날 길에 빗물이 고여서 거기에 하늘이 비친 것입니다. 그때 네 살짜리 아이는 빗물에 쉬를 하고는 하늘에 오줌을 눴다라고 하던 그 이쁜 말이 얼마나 시 적인지 지금 생각해도 순수한 동심이 너무 귀여워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집 앞 연못으로 나갔더니 연못에 이쁜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이 비쳐서 우리 아이가 보던 그때의 하늘 같았습니다.

living note 2009.08.09

오백 년 역사 속으로

서오릉(경릉. 창릉. 명릉. 익릉. 홍릉) 산책오백 년 역사 속에서 내가 보고 느낀 건, 산 자 보다도 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명당에서 참 편안하게 잠드신 왕릉을 보니 이 나라의 수호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울창한 자연림 속에 겹겹이 송림으로 둘러 쳐지고 사이사이를 계곡물이 자연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서 수목도 잘 자라고 후대들이 찾아가도 훌륭한 쉼터까지 제공해 주시는 크나큰 왕들의 품 속 같았다. 뜨거운 여름이지만 하늘을 뒤덮는 숲이 있고 물도 있고 감촉 좋은 모래길로 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하루 종일을 다녀도 지루하지 않았고 계절마다 가야겠다는 다짐을 남겨두고 돌아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중 명릉을 돌아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능 바로 옆에까지 갈 수가 없어 정자각에서 사진을 찍고 보니..

등산 2009.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