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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논픽션)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유안진 시인 1992년,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왔고 그 생활이 너무 낯설고 적응이 안 되다가 어느 날 방송국에서 주부백일장이라는 프로에 한 편의 글을 쓴 것이 방송을 타고 당시 서울대 교수님으로 재직하시던 유안진 교수님이 심사를 하셨기 때문에 20년이 넘었지만 생생히 기억이 된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쓴 것이 입선이란 연락을 받고 참 부끄러웠다. 그동안 늘 책을 보면서도 이분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시인님이 안동 출신이고 책 속에는 고향도 내 고향과 이웃 고을인 데다가 내가 아는 동네들이 총출동하는 바람에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어떻게 정리를 할까 생각다가 먼저 가장 핵심적인 걸 먼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명문가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명쾌한 전주 류..

카테고리 없음 2013.12.05

지란지교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 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

living note 2013.12.04

정신문화의 성지 (안동)

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퇴계종택-왕모산, 출발 전 계획은 내 본향의 근거지를 찾아가 보는 코스로 도산서원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거기서부터 걸어서 퇴계 선생님이 즐겨 걸으셨다는 예뎐길(퇴계오솔길)을 거쳐서 청량산까지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길은 도산서원에서부터 막혔다. 걸어서 하루 길이 아니라고 했다. 보통 제주 올레코스 정도라면 늦어도 7시간 정도 걸으면 되겠지 싶어 자신이 있었는데 해가 짧고 처음 길이라 강행할 수가 없었다. 워낙 대중교통 불모지라 이동이 어려워서인데 그렇담 가는 데까지 가보자 라는 심사로 다음 코스인 퇴계종택으로 향했다. 퇴계종택으로 가는 노정이 너무 아름다워 마치 무한의 화폭에 철부지 아이가 마구 밟고 다니는 듯해서 고운 그림에 때를 묻힐세라 고이 내려 딛는 발걸음이었다. 안..

등산 2013.11.16

주왕산과 주산지

안동의 가을은 아름다웠다. 임하댐 안동댐 낙동강 줄기, 물의 고장답게 아침은 늘 안갯속에서 맞는다. 댐과 강에서 토해내는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안갯속에서 노란 은행잎 가로수들이 마치 허공 터널 같은 연한 실루엣을 만든다. 내 어릴 때는 집 앞에 신작로라고 부르던 자갈길이 이제는 고운 아스팔트 길이 되고 달구지나 시외버스만 다니던 길이 요즘은 시외버스는 간혹 있고 주왕산 가는 승용차들이 너무 많아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길이 되었다. 사과농사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시과 따러 간다는 핑계로 일에 앞서 먼저 때를 놓칠까 봐 먼저 주왕산으로 갔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그 길에 골짜기엔 안개로 채우고 나직한 야산이 길게 이어진 산골은 오색단풍이 아침햇살에 유난히 찬란하다.우선 주산지까지는 오빠와 동행하고 주왕산..

등산 2013.11.13

10월의 마지막 날(남산 산책길)

시월의 마지막날엔 꼭 남산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인 날이다.흐릿한 서울 한복판 볼록하게 솟은 남산 위에 가을은 계절의 만찬을 차려놓고 우리들의 영혼을 살찌우라고 했다.  공자 왈: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에게 미치지 못하고,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다. 내가 아무리 자연을 좋아하고 남산의 가을이 어떤 그림을 펼쳐놓았는지 알지만 즐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날을 잡았다. 시작은 장충단 공원에서 부터였다.첫인상에서 우리는 폐부부터 활짝 열고 잎들의 발악 같기도 한 그 열정이 만들어낸 향을 마시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여자가 셋이면 말로써 독을 깨뜨릴 정도라고 하지 않던가. 이 늦은 나이에도 어디에 동심이 들어 있었던지 밑바닥에 누르고 살았던..

등산 2013.10.31

정선 민둥산

가을, 나의 행복의 도구가 되어주는 산행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 하루를 그냥 보내고 나면 시간이 아까워질 만큼 매일이 좋은 날들이다. 9월 정기산행, 혼자 멀리 떨어져 나온 뒤 정기산행에는 꼭 참석한다는 나와의 약속이지만 그날이 되면 어디로 가든 목적지보다는 함께 한다는 그 시간들이 참 좋다. 산은 높낮이를 떠나서 무조건 경외심을 가져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코스가 짧다고 해서 스틱 없이 오르는데 경사도가 심해서 몸의 지탱을 두 다리에만 부담을 주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아마도 북한산 의상봉 정도? 다행히 따가운 가을 햇살이 아니어서 무난히 오를 수 있었다. 그동안 억새 산행을 재미없을 거라 생각해 왔었다. 왜냐하면 억새밖에 볼 게 없을 것 같아서 가을이면 어느 산에나 있을법한 걸 뭐하러 ..

등산 2013.09.29

고창투어

코스: 새만금 방조제, 변산반도, 고창읍성, 방장산 편백숲, 고인돌 박물관, 미당 시 문학관, 선운사. 올 가을 들어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길 우중에 출발했지만 별 무리 없이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석정온천에서 눅눅한 심신을 속속들이땀으로 우려내고 난 뒤 근처 숙소에서 세상의 소음은 다 어둠 속에 묻히고 오직 풀벌레들만 잠들지 않은 추분의 밤을 나 역시 잠들지 못하고 그 작은 몸짓의 음악에 취하는 밤이었다. 이튿날, 그 긴 밤을 모질도록 지새웠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풀잎마다 방울방울 "나 너를 적신다" 하고선 비는 바람이 되었다. 가을은 고창의 하늘에서 나리고, 대지는 그 드높은 하늘의 푸른빛을 받아 황금색 들판으로 가을의 바탕색을 만들었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바탕색에 피어나는 꽃무릇, 얼마나 보고 싶었..

living note 2013.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