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정신문화의 성지 (안동)

반야화 2013. 11. 16. 23:47

 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퇴계종택-왕모산, 출발 전 계획은 내 본향의 근거지를 찾아가 보는 코스로 도산서원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거기서부터 걸어서 퇴계 선생님이 즐겨 걸으셨다는 예뎐길(퇴계오솔길)을 거쳐서 청량산까지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길은 도산서원에서부터 막혔다. 걸어서 하루 길이 아니라고 했다.

보통 제주 올레코스 정도라면 늦어도 7시간 정도 걸으면 되겠지 싶어 자신이 있었는데 해가 짧고 처음 길이라 강행할 수가 없었다. 워낙 대중교통 불모지라 이동이 어려워서인데 그렇담 가는 데까지 가보자 라는 심사로 다음 코스인 퇴계종택으로 향했다.

 

퇴계종택으로 가는 노정이 너무 아름다워 마치 무한의 화폭에 철부지 아이가 마구 밟고 다니는 듯해서 고운 그림에 때를 묻힐세라 고이 내려 딛는  발걸음이었다. 안동에는 진성이씨 종택이 파별로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 우선 퇴계종택으로 갔는데 종택은 들판 가운데 외진 곳에 있어서 쓸쓸해 보였지만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어떤 온기 같은 것이 나를 감싸는 듯했다. 내실에는 원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진성이 씨 딸 내라는 이유로 내실까지 들어가서 종손 어른께 인사도 드리고 친필과 차 대접까지 받는 영광을 누렸다. 어른은 그냥 인사를 받는 게 아니라 같이 공손한 모습으로 맞절까지 하셔서 너무 죄송스러웠는데 또 밖까지 나오셔서 손을 잡고 배웅까지 하시는 걸 보고 그분의 몸에 베인 사람을 대하는 도리 같은 것이 대대로 전해지는 인품인 것 같았다.

 

종택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이육사문학관 역시 건지산 기슭 첩첩산중에 위치해 있었고 뒤편에는 육사 선생님의 묘소가 있었으며 앞에는 왕모산이 둥그렇게 낙동강 줄기가 굽이쳐 흐르는 모양새와 흡사하게 함께 흐르고 있었다.육사선생님은 왕모산 갈선대에서 절정이란 시상을 떠 올렸다고 했다. 왕모산에서 한참 더 걸어야 예뎐길 입구가 나오는데 아직 다 개발하자 않아서 일부 구간만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더이상 할 수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안동에는 물돌이마을이 많은데 도산서원을 안고 도는 모습이나 왕모산 앞을 둥글게 돌아가는 강줄기가 아름다운 가을산세와 더불어 그림같이 아름다운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밖에도 무섬마을 하회마을 다 물돌이 마을들이다. 정신문화의 산실인 안동 곳곳에 우리 선조님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번 여행은 호 젖이 뿌리를 찾아 더듬어 가는 행복한 여행이었고 그 후예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 자랑스러운 여정이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진성이 씨라는 이유로 대중교통 불모지에서 차를 태워서 목적자까지 데려다주어서 사실 걷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저에게 차편 편의를 봐주신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도산서원 전경

 

 

전교당(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

선조 7년에 건립된 대강당

 

 

등받이와 돗자리 유물

문방사우 유물, 매화 연 벼루

청자의자, 청려장, 투호, 안석 (유물)

한국에서 현존하는 교육용 천문관측기기 가운데 조선시대(1560년대)에 만들어진 最古로 알려진

‘도산서원 혼상’ 과 ‘혼천의’가 도산서원 옥진각에 빛바랜 채 보관되어 있다.

 

서원 앞마당에 서원의 역사를 짐작케 하는

고목나무에 세월의 무게가 실려 땅에 닿을 듯 자라고 있다.

 

(시사단) 정조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게선생님의 학덕을 기리고  정조 임금님의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 별과 시험을 보던 곳 응시자 7,228명 중에 임금님이  11명을 뽑았다 한다. 이 때도 비율이 엄청났구나 싶었다. 시사단이 마주한 강 건너 천연대에서 차를 마시며 500여 년 전 선생님이 거닐었던 천연대 산책길과 물속에 내려앉은 구름과 그림자와 그 잔잔한 물결을 감상하며 감회에 젓는다.

 

실선으로 보이는 낙동강의 곡선

 

여기서부터 걸어야 하는 먼 거리.

 

 계상서당

계상서당

천 원짜리 지폐 뒷면 겸제 선생의 계상정거도다' 아담하고 소박한 서당, 계상서당(溪上書堂)은 퇴계선생이 만년에 은퇴하여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곳으로  많은 제자들이 입문하여 장소가 협소해지자 후에 도산서당으로 옮겼다 한다.  퇴계 선생은 강학(講學)하던 도산서원을 집인 계상(溪上)에서 천천히 걸어 다니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상계(上溪)에서 도산서원을 다니면서 지은 시

花發岩崖春寂寂 벼랑에 꽃이 피고 봄날은 고요한데
鳥鳴澗樹水潺潺 시내 숲에 새울고 냇물은 잔잔하네
偶從山後携童冠 우연히 산 뒤에서 동자 관자 이끌고
閒到山前問考槃 한가로이 산 앞에 와 고반을 묻노라

특히 퇴계 선생님은 도산서당을 세운 이후에도 이곳에 연거(燕居)하였으며 1570년 계상서당에서 서

 

종손 어른의 친필 

함께 인사드린 일가분들 

 

 

 

 

 이육사의 6형제들 모두 독립투사

사진에서 보던 동그란 안경이 눈물겹다.

 

절정이란 시상을 떠올린 왕모산과 낙동강 줄기
서낭당 , 현존하는 서낭당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귀하게 남아있는 곳

                       

 왕모산 갈선대(칼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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