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새만금 방조제, 변산반도, 고창읍성, 방장산 편백숲, 고인돌 박물관, 미당 시 문학관, 선운사.
올 가을 들어 처음으로 떠나는 여행길 우중에 출발했지만 별 무리 없이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석정온천에서 눅눅한 심신을 속속들이땀으로 우려내고 난 뒤 근처 숙소에서 세상의 소음은 다 어둠 속에 묻히고 오직 풀벌레들만 잠들지 않은 추분의 밤을 나 역시 잠들지 못하고 그 작은 몸짓의 음악에 취하는 밤이었다.
이튿날, 그 긴 밤을 모질도록 지새웠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풀잎마다 방울방울 "나 너를 적신다" 하고선 비는 바람이 되었다. 가을은 고창의 하늘에서 나리고, 대지는 그 드높은 하늘의 푸른빛을 받아 황금색 들판으로 가을의 바탕색을 만들었다. 노랗게 물들어 가는 바탕색에 피어나는 꽃무릇, 얼마나 보고 싶었던 선운사의 피 토하는 붉은 구도의 정진 같은 풍경이었던가 무슨 한이 그리도 많아 핏빛의 상사화로 피어나야 했을까? 아마도 어느 여승의 구부득고가 이닐런지 사고(四苦 생로병사), 팔고(八苦 애별리고, 원증 회고 구부득고 오음 성고)
애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고통
원증 회고: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구부득고: 구하고 싶어도 구해지지 않는 고통
오음 성고: 육신의 구성에서 오는 다섯 가지 요소 오음 신(물리적, 심리적, 정신적)에서 오는 고통이 중에서도 구부득고(구도의 경지에 들지 못하는 고통)에 해당하는 고통이 한이 되어 토해 놓은 핏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한으로 보기엔 너무도 고운 빛깔과 요염한 꽃술에 온 마음을 빼앗겨 올 가을엔 더 이상 그 무엇을 못 본다 해도 나는 상사화의 잎이 되는 마음으로 꽃을 품어도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꽃무릇을 보기 위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그 외의 모든 일정과 풍경은 들러리에 불과해 주마간산의 행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게다. 좀 그러면 어떠랴 이 풍요로운 가을에......
고인돌
미당 서정주 시인의 문학관과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