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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에 다시 서다.

난 오늘도 그 산에 있었다. 날이 맑으면 마음이 맑고 마음이 맑으면 지나온 자취가 거울처럼 마음속에서 다 비친다. 오늘 같이 좋은 날엔 깊숙이 잠재된 의식의 심중 깊은 곳까지 다 들쳐지는 맑디맑은 마음이다. 면경 같이 맑은 오늘 위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발걸음을 춤사위로 만들어 가락까지 흐르게 한다. 지평선이 없는 우리나라, 곧은 지평선은 숨을 곳 하나 없어 보이지만 굴곡진 삶을 다 감추어 줄 것만 같은 내 나라 지형은 잘 못 된 건 감추어 주고 불룩 솟아 막아주며 키다리 아저씨의 선행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차별 없이 감싸주는 넓은 품이 있어 오늘처럼 무덤 앞 따스한 볕에서 점심을 먹어도 우리의 조상님을 뵙는 것 같은 편안함이 있어 웃고 즐기는 장소도 되어준다. 그렇듯 ..

등산 2021.04.13

천마산 야생화

꽃길 따라 들어가서 꽃밭에서 놀다가 물길 따라 나왔다. 호킹 박사님께서는 불구의 몸으로도 우주를 다 내다보시면서 "우주의 이 장대한 디자인을 감상할 수 있는 이 한 번의 삶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이 장대한 지구에 꽃으로 수를 놓은 이 섬세함을 선생의 찬양에 덧붙이고 싶다. 꽃밭에서 온 마음을 다 쏟아 들여다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동적인 시간에서 정적인 시간으로 전환해도 좋을 만큼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언젠가는 내 인생 정적으로 살아도 그 고요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 내적인 행복을 만들어도 좋을 날이 오겠지만 아직은 마음이 몸을 따르지 않고 더 치치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땅에서 올라오는 야생화는 끝물이지 싶다. 한차레 땅 꽃이 지고 나면 나무에서 피어나는..

야생화 2021.04.06

매력적인 도시,광교에 빠지다.

봄은 지구촌의 축재 기간이다. 병들고 오염된 지구촌에 봄의 여신은 너무도 건강하고 깨끗하게 희망까지 담아서 땅 위로 마구 솟구친다. 마치 천국이 잠시 땅으로 내려앉아 천국과 극락의 세계를 맛 보여주는 듯하다. 봄에도 겨울 속을 헤매고 꽃이 피어도 꽃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산책을 한다. 밤새도록 비가 내리고 아침에 수정 같이 맑고 투명하게 하늘을 열어둔 아침이 너무 찬란하다. 더구나 휴일 아침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이 하루가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봄나들이를 즐기는데 방역지침에도 그들의 마음을 오늘 하루만큼은 가둘 수도 나무랄 수도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산을 오르며 요동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가운데 떠나간 사람, 잊힌 ..

카테고리 없음 2021.04.04

봄손님2,얼레지를 만나다

몰아의 경지 열흘 전에 만나 봄의 손님이라고 불렀던 노루귀가 아직 돌아가지 않고 얼레지를 만나 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둘은 거친 산기슭 한 자락을 차지한 채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면서 눈을 맞추고 봄의 향연에 초대받은 주인공들처럼 서로가 애틋한 분홍빛 우정으로 봄을 향유하고 있었다. 꽃들이 랑데부를 즐기는 현장에 불청객이 그 절 윤한 아름다운 화원에 사바의 때 묻은 발을 들여놓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향연에 관객이 되어 함께 즐겼다. 그 이쁜 것이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핀 것이 아니라 꼭 배경을 선택해서 피어 있다. 바윗돌 앞이나 나무 등걸 틈에서 그것들을 소품처럼 이용하기도 하고 배경처럼 뒤에 두기도 해서 사진을 찍으면 인위적으로 꾸민 장소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그뿐 아니라 어쩌다 한 포기만 ..

야생화 2021.03.27

노루귀의 귀환

해마다 맞이하는 꽃이지만 꽃이 다르게 보입니다. 꽃을 맞이하는 세월이 한 개씩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첫 봄꽃은 그냥 꽃이 아닙니다. 손님입니다. 그리움 저 끝에서 대지의 바탕색에 십자수를 놓듯이 몽글몽글 생명으로 채우면서 꼭 올 것을 알고 기다리는 손님입니다. 내일은 어디쯤 마중가 서성이면 꽃을 한 아름 안겨 줄 것만 같아 밤이 길기만 합니다. 드디어 아름답고도 도도한 봄처녀를 만나 무릎 꿇고 작은 송이 파르르 떨고 있는 가녀린 몸을 힘들게 모셨습니다. 차창으로 보이는 수원화성의 원경

야생화 2021.03.16

역사적인 날의 트레킹

2021.2.26일, 첫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는 날. 역사적인 날이다. 일 년이 넘도록 전 세계가 겪어내던 코로나19를 종식시키기 위한 백신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접종하는 날이다. 참으로 긴 터널을 두 눈 감고 걸어 나오다가 드디어 약한 동아줄 한 끝을 잡고 따라 나오는 것 같은 날이다. 점점 동아줄의 굵기가 변하고 결국에는 큰 밧줄이 되어 인류 전체를 터널 밖으로 끌어내는 날이 올 것 같은 예감 좋은 날이다. 그동안 잠깐씩 숲길을 걸으면서 인파가 적은 평일과 인원수를 줄여 제한적으로 걸음을 이어 오면서 숲 속에서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고 긴 호흡을 하고 나면 마치 청량제를 들이켜는 것 같은 공기 맛을 느낄 수 있어 그 재미로 숲길을 걸었다. 오늘은 물길을 따라 걸어본다, 탄천 분당에서 서울 쪽으로..

living note 2021.02.24

동탄,구봉산과 반석산

산을 깎아 신도시를 만들면서 남겨놓은 야산들이 나무높이보다 더 높아져버린 아파트 숲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남겨놓은 숲이 일대 모든 주민들의 쉼터와 질 좋은 공기를 뿜어내는 역할을 해주니 너무 고마운 존재가 된다. 산이 아니라 공원이 된 그곳에는 수많은 길들이 생겨나서 산을 둘러싸고 있는 동네를 실핏줄처럼 연결해서 어디서 올라오든 돌아나갈 수 있는 하얀 길들이 나목 사이로 철부지 어린 손이 함부로 그어놓은 선처럼 구불구불 그려져 있다. 멀리 가지 못해서 돌아본 주변에 이렇게 좋은 길들이 있다는 걸 요즘 많이 알아가고 있다. 오늘은 아파트 바다에 섬 같은 야산을 걸었는데 마침 눈까지 내려서 호젓한 산길 도화지 같은 눈 위에 첫 발자국들을 만들어가는 재미도 너무 좋았다. 끝인가 싶으면 내리는 눈이 끝이라는..

living note 202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