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그 산에 있었다.
날이 맑으면 마음이 맑고 마음이 맑으면 지나온 자취가 거울처럼 마음속에서 다 비친다. 오늘 같이 좋은 날엔 깊숙이 잠재된 의식의 심중 깊은 곳까지 다 들쳐지는 맑디맑은 마음이다. 면경 같이 맑은 오늘 위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발걸음을 춤사위로 만들어 가락까지 흐르게 한다.
지평선이 없는 우리나라, 곧은 지평선은 숨을 곳 하나 없어 보이지만 굴곡진 삶을 다 감추어 줄 것만 같은 내 나라 지형은 잘 못 된 건 감추어 주고 불룩 솟아 막아주며 키다리 아저씨의 선행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차별 없이 감싸주는 넓은 품이 있어 오늘처럼 무덤 앞 따스한 볕에서 점심을 먹어도 우리의 조상님을 뵙는 것 같은 편안함이 있어 웃고 즐기는 장소도 되어준다. 그렇듯 생명 가진 모든 것의 순환이 산에서 이루어지듯 물과 공기를 만들고 흐르는 물은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삶이 되고 죽음이 되며 언젠가는 나 역시 산속 어느 따스한 양지에 잠들 것이다. 결국 우리는 높은 산과 깊은 바다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검은 나무 몸속에 어떻게 이런 다채로운 색채가 들어 있었을까. 멀리서 바라보면 같은 초록이지만 조금씩 연하고 짙은 계열을 만들고 색색이 꽃들을 피워 배치하는 색채의 솜씨는 인위적으로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예술성을 가진, 자연은 매직컬리한 천재다. 간밤에 비 내리고 바람은 낮게 깔렸던 구름을 하얗게 뭉쳐 목화송이를 만들어 청색 하늘을 어린아이들의 스케치북처럼 보는 재미를 준다. 젊은 시절 헌신적인 삶을 살아낸 끝에 이렇듯 여유를 부리는 지금이 있어 너무 좋다. 그래, 잘 산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