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주 일회씩 정기 걷기를 하고 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느껴지는 것은 경기도의 야산을 탐방하는 대원들이 된 것 같다. 경기도는 높고 낮은 산들이 많아 앞으로도 탐방을 계속하면 경기도 사계의 그림이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이천에 있는 설봉산을 갔는데 이 역시 처음 가 본 산이다.
설봉산은 이천의 진산이며 유적으로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토성 위에 신라가 다시 석축으로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니 삼국시대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성은 일부 복원이 되었는데 여장이 없는 석축으로만 된 편축 기법으로, 외벽은 석축으로 쌓고 안은 흙으로 채워서 성 안인 줄도 모르고 점심을 먹고 한참을 놀았음에도 내려와서야 우리가 성 안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규모는 작지만 성에서는 언제나 시대를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비애를 느낀다. 난 성 걷는 것을 참 좋아한다. 성 하나가 탄생하기까지의 선조님들의 피땀을 느끼기도 하고 시대의 전시 상황 같은 것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성은 여장이나 총 안이 별도로 없어서 그대로 사람이 노출이 되었을 것 같은데 적이 올라올 수는 없어도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 아니라 신라 말 고려초에 지었다는 영월암이 있고 보물 제822호인 마애여래입상도 있으며 나옹선사가 심었다는 은행나무의 신목도 볼 수 있어서 이번 산행이 무척 유익한 행보였다.
설봉산 아래는 설봉호수가 있다. 호수에서 뒤돌아 산 쪽을 보니 산의 원경을 보지도 못한 채 올랐는데 아래에서 보는 전체의 산세와 지세가 한눈에 보이고 호수에 반영까지 되어서 아름다움을 더했다. 설봉산이 U자 형태인데 내 눈엔 산의 양팔이 길게 호수를 끌어안고 있고 가슴팍에는 영월암이 심장처럼 들어앉아 있어 동맥과 정맥으로 기를 흐르게 하는 가운데 넓은 부지의 공원을 품었으며 오른쪽 팔 안에는 산세에 걸맞은 미술관과 애국지사 묘역, 육이오 전사자의 충혼탑까지 따뜻하게 안겨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긴 양팔이 맞닿지 못하고 터진 틈으로는 이천시 관고동을 시작으로 부챗살처럼 시가지가 퍼져 나가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너무나 이상적으로 산세와 지세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래서 설봉산은 이천의 진산이라고 부는 것 같다.
해마다 오월이면 산철쭉을 보면서 오월 예찬을 했었는데 갈수록 꽃이 빨리 피어서 나의 예찬마저 앞당겨야 하는 변화를 느낀다.
조계종 본사 용주사의 말사인 영월암, 설봉산 정상 아래 자리 잡은 절은 이천시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전각들은 개축을 했으나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은 사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애불상은 원래 부처님이 들어 있는 걸 석공의 기술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그만큼 바위가 부처를 품고 있을 것 같은 훌륭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자세히 보면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시대가 워낙 오래된 신라 말기 때이다 보니 오히려 손의 어색한 부분이 귀엽기까지 하다. 뒷부분의 바위는 몸체와 분리가 되어 있어서 마치 부처님의 후광처럼 보인다.
시립 미술관 마당에 딱 한그루 심어져 넓은 마당을 차지하고 마음껏 가지를 펼쳐 나가며 대지를 차지한 나무다. 장우성 화백 탄생 백주년에 심은 기념식수인 수사해당화 나무, 가지는 밑동에서부터 갈라져 마치 꽃다발 모양이고 꽃은 빽빽하게 달려서 빈틈이 없는 너무 아름다운 꽃나무를 처음 보았다. 꽃이 너무 아름답고 설치미술 같아서 마치 화백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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