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봄손님2,얼레지를 만나다

반야화 2021. 3. 27. 10:00

몰아의 경지
열흘 전에 만나 봄의 손님이라고 불렀던 노루귀가 아직 돌아가지 않고 얼레지를 만나 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둘은 거친 산기슭 한 자락을 차지한 채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면서 눈을 맞추고 봄의 향연에 초대받은 주인공들처럼 서로가 애틋한 분홍빛 우정으로 봄을 향유하고 있었다. 꽃들이 랑데부를 즐기는 현장에 불청객이 그 절 윤한 아름다운 화원에 사바의 때 묻은 발을 들여놓고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의 향연에 관객이 되어 함께 즐겼다.

그 이쁜 것이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핀 것이 아니라 꼭 배경을 선택해서 피어 있다. 바윗돌 앞이나 나무 등걸 틈에서 그것들을 소품처럼 이용하기도 하고 배경처럼 뒤에 두기도 해서 사진을 찍으면 인위적으로 꾸민 장소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그뿐 아니라 어쩌다 한 포기만 만나도 앞태도 뒤태도 아리따운 자태 앞에 무릎을 다 꿇을 텐데 멀리서도 보일만큼 산기슭 전체를 연분홍 화원으로 만들고 있으니 무릎 꿇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그 어떤 가인의 미모도 이처럼 매혹적일 수 없다. 그 이쁜 얼굴 한 번 보려고 엎드리고 맨땅에 주저앉아 고개를 거꾸로 들이밀고 온몸으로 애쓰며 나에게로 담아왔다. 이제는 내 모든 의무와 역할에서 은퇴하고 소욕지족으로 살려는 나에게 이만한 행복이면 너무 많은 걸 누리는 게 아닐까. 아직 만나야 할 꽃들을 위하여 나의 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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