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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맞이 대공원길

고난의 행군과도 같던 지루하고도 버겁던 여름이 드디어 끝자락까지 거두어들이는 것인가. 촉촉하게 젖은 땅에서 가을향기가 올라오고 나뭇잎은 무더위를 견뎌낸 흔적들이 애처러울만큼 말짱한 게 없다.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한데 붙잡고 싶은 사람이어야 향기를 남긴다. 그러나 여름의 뒷모습은 잘 가라는 말 외에 붙잡고 싶은 마음조차 없으니 향기 없는 계절이다. 가을은 안에 있으니 밖에 나가나 다 좋다. 집에만 있어도 쾌적함이 좋고 밖에 나가면 숲 속을 걷기에도 참 좋다. 그러나 가을이라는 말은 계절을 넘어서는 함의를 생각하면 그 속에는 인생행로가 들어 있어 기울어가는 내 생의 가을처럼 쓸쓸함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고 한해살이가 이룬 거 없이 시간만 거두어들이는구나 싶은 생각에 더욱 쓸쓸함이 파고든다.어느새..

living note 2023.09.13

공기처럼 당연했던 바다

늘 있는 바다, 마르지 않을 바다여서 고마운 줄 몰랐어. 마치 공기처럼,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걸 너무 늦게, 이제야 그 존재가치를 느끼고 감사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농사가 없으면 당장 양식 걱정을 하면서 그 양식옆에 함께 차려졌던 찬은 왜 걱정하지 않았을까. 배추만으로 김치가 될 수 없는데 양념걱정은 왜 안 했을까. 바다는 끊임 없이 내어주고 원하면 언제든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여러 가지 해산물과 기본으로 바다에서 구해야 되는 걸 구매목록에 넣고 보니 너무 많다. 멸치만 해도 용도별로 가지 수가 이렇게 많았다니, 디포리, 다시 멸치, 고바멸치, 가이리멸치, 지리멸치 이 중에서 다시 멸치와 조림용으로 가이리를 샀고 멸치젓, 새우젓 김, 다시마, 오징어, 삼치팩, 소금 등등을 샀다. 기..

living note 2023.08.25

뜨거운 단상

입추도 지나고 풋밤이 영글어가는 가을의 문턱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고 더워는 점점 심해지니 아직은 여름의 정체성이 더 짙어 그 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한동안 여름의 문 뒤에서 서성이게 될 것 같다. 사계절을 석 달씩 사등분으로 나누면 정확하고 뚜렷하던 우리나라 계절이 이제는 봄가을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여름과 겨울은 기세 등등 하게 영역을 넓혀가며 다른 계절을 침범하고 있다. 너무 습하고 더워서 집안을 피서지로 생각하고 지내다가 뒷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노란 망태버섯이 궁금해서 갔더니 작년보다 좀 늦게 갔다고 어느새 망태버섯은 피었다가 노란 치마는 이미 낡아서 쭈굴쭈굴하고 과감하게 아예 벗어버린 것들이 흉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렇듯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데 그때를 놓치고는 ..

living note 2023.08.08

청천의 별

얼마 만에 보는 푸른 밤하늘인가! 다시는 보여주지 않을 것 같던 밤하늘의 푸른빛이 반갑고 좋기보다는 야속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저럴 거면서, 저렇게 멋진 얼굴을 감추고 무슨 원한으로 울분의 얼굴로 세상을 초토화시키고 싶었을까. 그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 맑고 깨끗한 밤하늘에 별을 띄워놓고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늘의 권력은 인자할 땐 너무도 감사하고 따사롭지만 남용할 때면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을 못하는 지상 최고의 권력을 지닌 하느님을 감사와 원망의 양면성 아래 쳐다볼 수밖에 없는 미약한 인간인데 작은 권력 하나 가졌다고 우쭐대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것도 함께 경험하는 광란의 장마철이다. 여름에는 밤이 좋고 밤에 하는 산책이 좋은데 오랜만에 그것을 할 수 있어서 광교호수로 갔더니 세상은..

카테고리 없음 2023.07.18

의왕 왕송호수 연꽃

한여름에 피는 연꽃, 모든 꽃이 피기를 거부하는 이때 연은 제철을 맞아 진흙을 덮어버린 초록 위로 긴 꽃대를 피워 올리며 여름에도 꽃을 보는 즐거움을 준다. 빛이 따스해야 꽃이 피는 것처럼 물속에 사는 연은 물이 빛만큼 따스해야 꽃을 피우나 보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연을 보면서생긴 말이 아닐까. 이른 아침에 달려간 호수에는 초록바탕 위로 진리의 꽃을 피워놓고 한바탕 뜨거운 향연을 벌이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간밤에 내린 비로 연잎은 물을 담아 바람에 굴리며 과유불급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빗물을 가득 채우지 않으며 물을 담고도 꼿꼿이 설 수 있을 만큼만 채운다. 더 담기면 잎을 기울여 쏟아버린다. 필요이상이면 오히려 못 미치는 게 나은 줄을 아는 꽃이다. 버릴 것은 없고 배울 것만 있는 연꽃, 바탕..

living note 2023.07.08

돌로미티, 안녕

53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귀국 전 날이다. 이탈리아 중부지역인 로마에서 시작된 여정이 피렌체에서 한 달을 체류하면서 근처 소도시를 여행하는 것도 좋았고 피렌체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는 곳마다 최고를 경신하다가 이곳 돌로미티에서 최종적으로 최고라는 말로 확인 도장을 찍는다.오늘은 돌로미티의 산, 꽃, 동네, 모든 탈것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하자며 갔던 곳을 다시 올라 한 번씩 둘러보고 인사를 했다. 좋은 날씨와, 맑은 하늘 불편함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고 말하고 돌아왔는데 네 군데를 다니면서 푸니쿨라, 곤돌라, 리프트, 케이블까를 타고 올라가 잠시잠시 다니면서 다시 보고 돌아왔다. 비가 오라가락 했지만 비로 인해서 일정에 방해를 받은 일도 없었고 날마다 푸른 하..

해외여행 2023.06.21

돌로미티(사소롱고와 사소피아토 완주 트레일)

발 가르디니 지역에는 오르디세이, 산타 크리스티나, 셀바 3개의 마을이 있는데 오늘은 셀바마을에서 시작하는 파소롱고와 파소피아토를 도는 트레일을 걷는다. 집이 있는 오르티세이에서 351번 버스를 타고 오르테세이에 약 40분간 이동해서 셀바마을에서 내려 산 쪽으로 조금 오르면 리프트 타는 곳이 나온다. 여기서 큰 리프트인 몬테 파나를 타고 중간에 몬테 세우라 리프트를 갈아타고 파소셀라 초원지대이며이며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내린다. 리프트에서 내리면 거대한 사소롱고와 피아토의 장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발 가르디나, 발 디 파사 지역의 상징인 웅장한 사소 롱고와 사소 피아토의 산군을 일주하면서 왕의 길로 알려진 팻말이 있는 길에 들어서면 산허리에 하얀 뱀 같은 길이 보이고 사방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보..

해외여행 2023.06.20

사소롱고 반환점으로...

시작점에서는 사소롱고를 따라 걷다가 이어진 길이지만 두 봉우리가 떨어져 있는 정상을 지나면 사소 피아토를 안고 돈다. 그리고 피아토 구간이 끝나고 아래 사진의 표지판이 나오면 반환점을 돌아 다시 롱고 밑으로 도는데 자갈길을 힘들게 걷다가 키 큰 나무가 있는 숲 지대를 걷는 곳이어서 그늘도 있고 싱그러운 숲과 엘펜로즈꽃이 피기 시작하는 길이어서 참 좋았다. 이 구간이 끝나면 우리의 하산 지점인 strada pana라는 초원인데 바로 사소롱고 뿌리 같은 곳이다. 지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초원에 노란 아네모네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멋진 곳이다. 팬 로드라는 이름을 가진 초원에 서면 누구라도 이곳에서 그냥 내려가지 못하게 붙잡는 자연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다. 세체다 산군이 바로 보이고 좌우에 풍경이 너무 아름답..

해외여행 2023.06.19

돌로미티 마운트 픽

세체다 정상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평범하고 밋밋해 보이는 산이 하나 보인다. 그 산을 오르기로 하고 두 번째 세체다를 찾아서 정상까지 올라가서 다시 한번 멋진 세체다를 쳐다본 후 리프트 밑으로 내려오다 이쁜 교회를 보고 오른쪽길로 접어들었다. 돌로미티에 저렇게 평범해 보이는, 아무데나 있을법한 산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채 접어들었는데 산길로 20분 정도 들어갔더니 작은 호수가 있고 너무너무 아름답고 이쁜 장소가 있었다. 그제야 왜 이길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레이크 상트라는 작은 호수에는 거대하고 시커먼 세체다가 구름을 드리우고 빠져 있으며 주변에는 푸른 초원에 온통 꽃밭이 펼쳐져 있다. 약간 경사도가 있는 분화구 비슷한 곳에 물이 고였는데 물이 많을 때는 주변이 잠길 것 같은 작지만 호수라고 부르고 아..

해외여행 2023.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