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251

소백산 형제봉코스

거시기 산행, 우리나라 대표 대명사인 거시기엔 어떤 말을 대신해서 거시기를 대입해도 의사소통이 다 된다. 그러나 약간의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자기 합리화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명사여서 때로는 엉뚱한 발상이 될 수도 있는 참 재미있는 엄연한 표준어다.나 역시 이번 산행에서 거시기를 엉뚱하게 생각했었으니까. 어제는 가지 말라는 길로 들어서서 길한테 매를 맞는 날인지도 모른다.그런가 하면 군자이기를 포기한 길이 기도한 것은 사람 다니는 길이 아니라 산돼지가 다니는 길이라니....... 군자라고 항상 대로행을 하다 보면 삶이 따분할 수도 있어서 한 두 번 정도는 애교일 수도 있으니까. 소백산엔 아직 한 번도 못 갔기 때문에 목적이 뭐든 기대감으로 따라나섰다.그런데 알고 보니 명산의 명불허전을 감상하..

등산 2014.05.21

지리산 바래봉

오월 중순, 한국의 삼신산인 방장산의 신선은 어떤 모습일까 싶어 지리산으로 간다. 독일 시인 칼 붓세는 "산너머 저쪽"이란 시에서 산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 아~그를 남 따라갔다가/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네/산너머 저쪽 좀 더 멀리/행복이 있다고 말하네. 시인은 그렇게 행복 찾아 무작정 남 따라갔다가 행복을 찾지 못해 눈물을 머금고 되돌아왔지만 난 산너머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가기에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가는 길은 어떤 고난의 길이라도 기어이 그곳에 이르러 잠시 행복하려고 찾아간다.어차피 행복이란 순간의 연속이니까, 그 순간들을 늘려 가다보면 인생이 행복해지는 거다. 남원에서 정령치 휴게소까지 산속으로 들어가는 찻길은 마치 초록의 심연에서 점차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가는 듯한..

등산 2014.05.14

진해 장복산

벚꽃 나라 진해로 간다. 봄꽃 쫓아다니기에 지치도록 몸을 괴롭히는 시간이 즐겁다. 가만히 기다려도 내 집 문 앞까지 찾아 올 봄물 결이건만 굳이 찾아다니는 건 순간의 절정을 보기 위함이다. 짧은 순간을 보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절정의 순간을 본다는 건 인생을 무위도식하려는 정신이 이 닐까! 삶에도 단계가 이어서 그 순서를 밟아 누구나 그렇듯 열심히, 헌신적인 삶을 다 살아내고도 남는 시간을 여생이라고 한다면 그 여생은 나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진해, 그 전통적인 군항제를 이제야 찾게 되다니! 그만큼 나를 위한 시간을 모른 채 열심히 살았다는 거지. 그러나 획일적인 축제의 마당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기념적인 일에 그곳에 간다는 것도 축제는 축제다. 장복산, 행..

등산 2014.04.02

구례 둥주리봉,오산 사성암

봄이 왔다. 김용택 시인의 책 한 권을 보고 난 뒤부터 봄이 오면 섬진강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는데 그 봄도, 나도, 우린 약속을 지켰다. 자연만큼 정직한 게 없다. 봄이 언제 온다 하고 오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꽃이 언제 핀다 하고 피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무언가를 사랑하면 닮아가는지 세월의 두께가 책장처럼 쌓여가면서 자연을 닮아, 나도 작정을 하고 나면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편이다.봄과 섬진강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이미 설정된 곳이다. 강변 따라 그만큼 긴 길에는 봄의 색으로 덧칠을 해놓는 거대한 화폭이 되지만 이번엔 좀 이른 시기에 그 장관을 보지는 못했지만 나무를 보면 꽃은 연상작용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도 본다. 구례 동해마을에서 둥주리봉으로 오르는데 처음부터 가파른 ..

등산 2014.03.23

고흥 거금도

아! 하룻밤의 격세지감이여, 전날 그 투명한 하늘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며 여행을 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춘설이 내려 다른 세상의 아침을 맞으며 자칫 어제의 기억이 눈에 묻혀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전남 고흥군 금산면, 산행코스: 파성재-마당 목재-적대봉(592m)(봉수대) -오천리(몽돌해변) - 거금도-소록도 무박산행이다. 무박산행을 하려면 우선 일상의 필수 코스인 잠을 빼야 하는 일정이지만 가끔은 신체리듬의 코드를 바꾸었을 때 일어나는 변화를 겪어보는 것도 몸 상태를 체크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좋은 점이다. 결론적으로 아직은 내몸이 쓸만하다는 체크를 끝내고 적막강산에 발을 내딛고 검은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빛을 내 몸에다 박 으며 멀리 녹동항의 야경을 보며 산을 오른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밤..

등산 2014.03.09

정신문화의 성지 (안동)

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퇴계종택-왕모산, 출발 전 계획은 내 본향의 근거지를 찾아가 보는 코스로 도산서원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거기서부터 걸어서 퇴계 선생님이 즐겨 걸으셨다는 예뎐길(퇴계오솔길)을 거쳐서 청량산까지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 길은 도산서원에서부터 막혔다. 걸어서 하루 길이 아니라고 했다. 보통 제주 올레코스 정도라면 늦어도 7시간 정도 걸으면 되겠지 싶어 자신이 있었는데 해가 짧고 처음 길이라 강행할 수가 없었다. 워낙 대중교통 불모지라 이동이 어려워서인데 그렇담 가는 데까지 가보자 라는 심사로 다음 코스인 퇴계종택으로 향했다. 퇴계종택으로 가는 노정이 너무 아름다워 마치 무한의 화폭에 철부지 아이가 마구 밟고 다니는 듯해서 고운 그림에 때를 묻힐세라 고이 내려 딛는 발걸음이었다. 안..

등산 2013.11.16

주왕산과 주산지

안동의 가을은 아름다웠다. 임하댐 안동댐 낙동강 줄기, 물의 고장답게 아침은 늘 안갯속에서 맞는다. 댐과 강에서 토해내는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안갯속에서 노란 은행잎 가로수들이 마치 허공 터널 같은 연한 실루엣을 만든다. 내 어릴 때는 집 앞에 신작로라고 부르던 자갈길이 이제는 고운 아스팔트 길이 되고 달구지나 시외버스만 다니던 길이 요즘은 시외버스는 간혹 있고 주왕산 가는 승용차들이 너무 많아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길이 되었다. 사과농사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시과 따러 간다는 핑계로 일에 앞서 먼저 때를 놓칠까 봐 먼저 주왕산으로 갔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그 길에 골짜기엔 안개로 채우고 나직한 야산이 길게 이어진 산골은 오색단풍이 아침햇살에 유난히 찬란하다.우선 주산지까지는 오빠와 동행하고 주왕산..

등산 2013.11.13

10월의 마지막 날(남산 산책길)

시월의 마지막날엔 꼭 남산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인 날이다.흐릿한 서울 한복판 볼록하게 솟은 남산 위에 가을은 계절의 만찬을 차려놓고 우리들의 영혼을 살찌우라고 했다.  공자 왈: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에게 미치지 못하고,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다. 내가 아무리 자연을 좋아하고 남산의 가을이 어떤 그림을 펼쳐놓았는지 알지만 즐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날을 잡았다. 시작은 장충단 공원에서 부터였다.첫인상에서 우리는 폐부부터 활짝 열고 잎들의 발악 같기도 한 그 열정이 만들어낸 향을 마시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여자가 셋이면 말로써 독을 깨뜨릴 정도라고 하지 않던가. 이 늦은 나이에도 어디에 동심이 들어 있었던지 밑바닥에 누르고 살았던..

등산 2013.10.31

정선 민둥산

가을, 나의 행복의 도구가 되어주는 산행을 한껏 즐길 수 있는 계절이 되었다. 하루를 그냥 보내고 나면 시간이 아까워질 만큼 매일이 좋은 날들이다. 9월 정기산행, 혼자 멀리 떨어져 나온 뒤 정기산행에는 꼭 참석한다는 나와의 약속이지만 그날이 되면 어디로 가든 목적지보다는 함께 한다는 그 시간들이 참 좋다. 산은 높낮이를 떠나서 무조건 경외심을 가져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코스가 짧다고 해서 스틱 없이 오르는데 경사도가 심해서 몸의 지탱을 두 다리에만 부담을 주다 보니 쉽지가 않았다. 아마도 북한산 의상봉 정도? 다행히 따가운 가을 햇살이 아니어서 무난히 오를 수 있었다. 그동안 억새 산행을 재미없을 거라 생각해 왔었다. 왜냐하면 억새밖에 볼 게 없을 것 같아서 가을이면 어느 산에나 있을법한 걸 뭐하러 ..

등산 201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