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설악산 백담사코스

반야화 2014. 8. 27. 11:14

백담사-영시암-오세암-마등령-설악동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의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건 무리야. 지구는 인간의 것이기 이전부터 먼저 자연이 주인이었으니까. 하산해서 차에 타자마자 서 대장한테 "앞으로 비 오는 날은 산행 안 할 거야"이렇게 말했지만 산고의 고통을 겪고 나면 다시는 안 낳겠다고 하면서 둘째를 낳듯이, 지난주에 그렇게 힘들고도 잊은 듯이 어제는 그보다 배가되는 고행을 했고 며칠이면 또 잊고 우중산행이라도 또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일 년에 고기 한 근도 대접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매주 온 산천을 돌아다니는 건 내 발과 다리한테 너무 가혹했어, 그리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빗속에 조마조마한 산길을 걷는데 문득 그 생각이 드는 건 내게도 양심이 있어서다. 지난주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좀 더 준비 잘한다고 비옷도 입고 비닐로 신발도 싸고 했으나 그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올라갈 때는 그런대로 신발이 뽀송뽀송 했으나 오세암에서 마등령 가는 길에 폭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위에서 쏟아지는 물길이 다 폭포처럼 되었고,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가는 길은 다 빗물에 잠겨서 등산화는 질펑이고 비바람은 몰아치고 감당이 안되어서 그때부터는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안전하게 하산하는데만 집중했다.

 

어쩌다가 같은팀이지만 낯선 두 사람과 같이 갔는데 그들은 달아나고 뒷사람은 기다려도 오지 않고 숲 속은 시커멓고 휘몰아치는 비바람은 무섭고 돌길은 젖어서 미끄럽고 혹시라도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싶어 너무 무서웠다. 불안한 마음으로 한참을 더 내려가니 앞서 가던 두 사람을 잠시 쉬어가는 중에 다시 합류해서 안심하고 내려가는데 희미하게 보이는 설악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 놓일 내가 아니다. 이미 카메라는 안팎이 다 젖었고 속으로 물만 안 들어가면 된다 싶어 풍경을 다 카메라에 담았다. 원하는 그림은 아니지만 진경산수란 원래 그런 거야 있는 그 데로 지 하면서 몽환적인 풍경을 담으면서 가는 동안 앞사람은 다시 멀어졌지만 이제는 하나뿐인 길로 하산하면 되니까 편안하게 비선대까지 갔더니 비선대 계곡의 물이 무섭게 불어 있었다. 소리는 흰 거품을 뿜어내며 포효하는 짐승같고 색깔은 옥색이고 힘은 모든 걸 다 쓸어버릴 듯했다. 우중산행이어서 이런것도 보게 되는구나 싶어 나쁘지 않았다.

 

이번 백담사코스는 무척 가보고 싶었던 코스여서 비 예보에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나 절을 둘러볼 시간이 없어 그냥 통과한 것이 아쉬웠다. 특히 오세암이 무척 보고 싶었던 것은, 어린 동자승이 눈 덮인 암자에서 탁발 나간 큰스님이 돌아오지 못하고 혼자 오돌오돌 무서움에 떨었을 그 설화를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생각보다는 오두막같은 암자는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유명세를 타고 찾아드는 중생이 많아지니 점점 증축이 된게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쏟아지는 빗 속에서 오세암이 있어 점심을 무사히 먹을 수 있었다. 만약에 온 산이 하얗게 눈에 덮였더라면 내가 그리던 풍경에 젖을 수 있었겠지만 비가 쏟아지니 멀리에 희미하게 펼쳐져 있는 만경대와 주위 암자를 둘러치고 있는 풍경만이 흐느끼듯 젖고 있었다.

 

어렵게 마등령에 오르고 보니 3년 전에 공룡능선을 타면서 마등령에서 비박을 했던 생각이 스쳐가고 홀로 그곳에 다시 서서 그때도 날은 저물고 비는 오고 어두워서 사방이 안 보여서 잘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마등령 삼거리를 지나 마등령 삼거리에서 비박을 했던 것 같았다. 감회가 새롭고 그날도 비가 왔지만 풍경만은 선명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이 새삼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보는 마등령은 마치 그날의 꿈을 꾸는 듯 짙은 운우풍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 속에서 뭔가 희미한 실체를 더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등령과 비는 내게 있어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게 뭘까? 아마도 쉽게 보지도 말고 한꺼번에 보지도 말고 어느 맑은 날 다시 오라는,그리고는 속속들이 다 보여주겠다는 불립문자와 같은  가르침이 아닐는지. 그래 다시 올꺼야,맑디맑은 고운 날에 다시 와 마등령 그 푸근함에 안겨 설악을 느낄 거야. 기다려요 마등령 산신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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