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인제 조경동 계곡

반야화 2014. 7. 30. 12:12

하루살이에게 가장 무서운 건 시간이라고 한다. 하루살이의 시간 같은 그 귀한 날들을 작년 여름에는 복지부동으로 다 날려버렸다. 땀 흘리기 싫어서. 맞서 보지도 않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해 주는 날, 어제는 그랬어.

 

四美로 꽉 채운 날이었어, 금오신화에서 김시습은 사미란,좋은계절,아름다운 경치, 이를 즐길 줄 아는 마음, 유쾌하게 노는 일이라 하셨지. 지나간 시간들이 어디로 달아나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잠재의식으로 깊이 간직되었다가 심적 자극에 의해 어느 순간에 밖으로 표출되는거지,잠시 잊고 있었던 어린 동심이 맑은 물속에서 마구마구 발동이 되는지 모든 어른들이 아이가 되었다.그러는 사이에 오탁악세는 다 씻어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사바로 돌아온다 해도 한 번도 씻어내지 못한 이 보다야 얼마나 더 윤기 나는 삶이 되겠는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본 적이 없는 나에게 강원도 인제란 생소한 곳이다. 그런 인제에서 산속으로 깊숙이 더 들어가면 농작물조차 척박함에도 결실을 맺는 감자,수수.곰취 옥수수들이 빽빽이 따가운 빛으로 알을 영글어 가고 있었으며 곰취는 노랗게 꽃을 밭 한가득 피워서 벌 나비를 불러 염문을 뿌리고 있었다. 그 깊은 곳에 어떻게 놀자리가 있는 줄을 알고 찾아가게 되는지 나 혼자라면 평생 그 산이, 그 물이 있다는 걸 모른 채 살았을텐데 요즘은 오지까지 찾아드는 내가 너무 장한 일을 하는 것 같다. 산악회 전문가 덕에 내가 누린다.

 

조경동계곡으로 가는 길은 차로도 몇 구비를 휘돌아서 깊이 들어가 동방 약수에서 시작하는데 처음엔  아스팔트 길을 해를 안고 1시간 정도 백두대간 트레일 코스 안내소까지 가면 바라 게이트를 지나 왼쪽으로 접어들면 흙길이 나오고 그 길로도 약 한 시간가량 더 내려간다. 계곡의 폭포는 아래로 흐르는데 비너스 계곡은 위로 오를수록 소리 없는 계곡을 이루어 온 몸을 적신다. 그러나 물을 만나기 위함인데 그까짓 비너스계곡이 흘러내린들 무순 상관이겠는가?

 

드디어 아침가리골 물가에 도착해 나무그늘 아래 점심을 먹고 차 한잔의 넉넉함도 잊은 채 물을 보고 참지 못하는지 바로 일어나 물로 들어간다, 처음엔 잔잔히 흐르는 갯가였으니 물길이 약 6킬나 된다 하니 더 멋진 계곡이 있을 것같아 크게 환호하지 않고 걸어간다. 계곡 옆으로 길이 있으나 대부분 물속으로 걷는다. 젖을 준비가 되어 있는 물길은 너무 자유롭고 즐거웠다. 옷을 입은 채로 아쿠아슈즈를 신고 걸으니 이끼를 피하면 크게 미끄럽지도 않고 무릎 위까지 젖어도 그러려니 하면서 걷는 길이 나에겐 특별한 체험이었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물은 산을 건너지 못한다.` 그러나 산과 물은 서로 인접해 불가분의 관계로 공생의 길을 간다. 산은 물을 넘으려는 생각 없이 고요히 잠기어 있고, 물은 산 그림자를  안고 굽이돌아  흐른다. 그 아름다운 동행에 내가 잠기고 넘으며 하루를 그 웅장함에 안기어 작은 미물처럼 놀 다간다.

 

계곡 트레킹이 끝나는 지점에 대기하고 있는 차를 보면 마치 나를 모시러 온 것처럼 너무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시장기가 밀려올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먹을 걸 준다. 그 또한 감사함이다. 준비해 온 여벌로 갈아입는 이도 있지만 난 그냥 바람에 말리면서 잠시 작은 시골마을에 심취하면서 며칠이라면 이런 곳에 살다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 놀고 돌아가는 길, 끊김 없이 길게 이어진 산맥들이 너무 아름답고 작은 촌락들이 소박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잠들 틈도 없이 달려간다. 그런데 해질 녘이면 왜 그렇게 그리움 같은 게 밀려오는지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이 때로는 괴롭기까지 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뭐. 그것도 행복에 겨운 거지. 그럴 거야. 난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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