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북설악 마산 물굽이계곡

반야화 2014. 7. 23. 13:46

설악산에 바람 없기를 바랐더냐, 설악의 바람으로 도전이란 말이 생겼지 않았느냐.

대청봉 정수리에서 산신령이 들려주는 말이 들리는 듯한 바람 많은 날, 오늘은 행운 같은 날의 여름 산행이다. 바람은 언제나 나뭇가지 위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큰 바람이 폭풍의 소리를 내더라도 작은 우리 인간은 바람 아래 놀면서 조금씩만 자비롭게 어루만져 주셔도 무더운 날엔 그 감사함이 바람의 위력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이 장마철에 비가 실리지 않은 바람은 삼복더위에 도전하는 산꾼들의 행보에는 배낭 속에 든 어떤 음식보다도 더 이로운 보양식이 되어 준다.

 

북설악 마산으로 가는 날,북설악은 설악산에 이름은 올렸지만 그 산의 장대함에는 감히 끼지 못하고 설악산 국립공원의 권역에서 경계를 이루며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남한 쪽으로는 최 북단에서 그 걸음을 멈추어야 하는 종점 같은 곳이다.그러나 언젠가는 이 지점에서 이어 더 북으로 행진해 백두산 천지에 이르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는 곳이기도 하리라.

 

바람이 겉은 말릴 수 있어도 속까지는 말리지 못해 몸 안은 끓는 듯 뜨거웠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마산에 오르기까지는 무난했다. 마산봉을 내려와 병풍바위 가는 길은 높은 산에 준 평원 같은 곳이 있어 여름 야생화인 동자꽃, 말 나리꽃, 노루오줌, 각종 취꽃 등으로 꽃길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설악의 바람에 지쳐 함부로 자란 나무와 돌부리들이 어울려 마치 제주의 곶자왈을 걷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좁다란 길을 평화롭게 걷다가 병풍 바위에 서는 순간 바람을 막아주던 나무들이 비켜선 자리에서 막힘없이 가속도가 붙은 강풍이 태풍의 위력만큼이나 거세게 불어와 병풍바위를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었고 모자는 날아갈 테 세고 몸은 지탱하기도 어려워 겨우 한 컷 인증만 한 채 돌아서 다시 대간령쪽을 향해 길을 가는데 다시 평원의 길을 간다. 설악산엔 교목이 별로 없다. 그 거센 바람에 저항해야 하는 나무가 어떻게 곧은 몸통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무들은 바람이 만들어주는 데로 가지를 키우고 그것이 또한 멋을 부리기라도 한 듯 설악의 바람 앞엔

수난도 예술이 되는 삶의 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평원의 길이 끝나고 암봉에 이르니 하늘에서 쏟아부은 듯한 돌들이 아무렇게나 박혀서 백두대간을 힘차게 달려온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숨 고르기라도 하라는 듯 발걸음을 붙잡으며 쉽게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암봉에서 잠시 흐린 그림으로 여기도 분명 설악산의 영역이 맞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원경에는 동해 쪽 풍경과 마을이 보였고 설악산의 풍경이 느껴졌지만 그것마저 너무 흐려서 아쉬움만 남겼다.그도 잠시 이제는 하산길로 접어들어 어느새 대간령에 이르고 보니 나의 어리석음이 오늘의 기대를 뚝 분질러버리는 느낌이었다. 부끄럽기도 한 것은 글자 한 자 때문이다. 난 대관령의 푸른 목장을 연상하며 그 목가적 풍경이 어디쯤일까 하면서 왔건만 `대관령이 아니라 대간령`옛날에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갯길이며 대간령 고갯길에 주막이 있어 오가던 봇짐 진 나그네의 목을 축이던 곳으로 지금은 돌무더기를 쌓아서 그 흔적 하나를 남겨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알고 나서는 그 고갯길을 넘나들던 나그네의 흥건히 젖은 적삼으로 바람이 스며들고 술술 넘어가던 술 한 잔의 넉넉함이 재충전이 되었을 풍경이 스치고 가는 그 고갯마루에서 그때의 애환을 느껴보는 계기가 되어보는 귀한 순간을 추억으로 담아가는 오늘의 여정이 참 좋다. 바쁜 걸음 쉬어서 끝 지점으로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계곡이 등장하고 면경 같은 맑은 계곡물에 피로를 씻어내고 나면 고생 없는 결과만 있는 것 같은 상쾌함으로 행복만을 가벼워진 배낭으로 다시 채워 넣는다.

 

비록 늦은 나이에 시작한 국토순례길 같은 산행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나에겐 너무 소중한 시간들이다. 늦다는 것, 흐린 날 서쪽하늘의 노을처럼 아침해보다 더 이름답다는 걸 난 안다. 난 아름다움이야. 그래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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