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신록이 너무 좋다. 산천은 자연의 법칙으로 충만하고 어느새 매미도 자연의 목소리에 코러스의 선율을 넣는다.
이 푸르른 계절에 산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열심히 살고 있는 삶의 수당 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단양에 있는 올산으로 갔다.갈 때마다 처음인 산, 그래서 기대치가 높은 산행이다. 둥근 타원형으로 돌아나올 그 산에는 또 어떤 것들이 나를 반길지 모를 그 설레는 마음이 초입의 힘드는 과정은 다 짊어질 각오로 간다. 여름에 산을 오르면서 흘리는 땀은 몸속의 노폐물을 밖으로 다 배출해내는 과정이며 그만큼 들어가는 물은 몸을 헹구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어쩌다 물방울이 튀기라도 하면 그것을 닦아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전체가 다 젖으면 젖었다는 생각 없이 바람에 맞긴다. 흠뻑 젖은 몸 위로 실바람이라도 스쳐가면 마치 뱀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오싹한 한기가 한 가닥 싸아하게 지나간다. 그런 반복을 하면서 정상에 오르면 시퍼렇게 흘러내린 산의 날 선 꼭대기들을 한 눈으로 다 내려다보면서 그 순간에는 산이 나를 품은 게 아니라 내가 산을 다 품은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그 맛으로 산을 사랑하는 마나 아가 되는 것이다.
올산은 입구에서 묘한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는데 원래 신묘한 어떤 것은 접근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일까? 암송 역시 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내어주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라는 듯 우뚝 서 아무도 모른 채 지나칠 수 없는 시선을 빨아들인다. 그 묘한 기운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역시 잘 생긴 소나무들이 많고 소나무 옆에는 멋진 바위가 있어야 한 폭의 한국화가 완성되듯이 바위와 소나무가 자웅 같은 형상으로 잘 짜여 있다. 더러는 가파른 곳도 있지만 산이란 원래 인생 같아서 어디를 가도 다 굴곡진 힘든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올산을 오르면서 누구의 손길인지 가느다란 비닐끈으로 끊어질 듯하면서도 용하게 이어져 있는 끈이 바람에 풀려서 거미줄처럼 나무에 메여 있지만 그 덕에 길을 잃지 않도록 작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어서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그 작은 배려로 숫한 산꾼들이 헤매지 않아도 되니 꼭 큰 것만이 제 역할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올산을 올인 행보를 마치고 나면 맑게 흐르는 계곡물이 반갑다. 올산 숲에서, 나무에서 흘러내린 물들이 사방댐의 원천이 되어 자연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사람으로 순환하는 피가 되고 있으니 인간은 언제나 산 아래에 있지 산 위에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산은 늘 경외의 대상이 된다.
하루의 피로까지 다 씻고 차에 오를 수 있는 산행이어서 더 좋았던 유월의 막바지를 행복한 산행으로 마무리한다.
아래위 바위는 각각 왼쪽면과 오른쪽 면입니다. 하나로 연결해서 감상하면 중앙이 아주 작게 땅에 닿아 있는 하나의
대접 같은 모양이 되는데 조금 멀리 떨어져서 전부를 볼 수 없는 위치여서 아쉬운 명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