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소백산 형제봉코스

반야화 2014. 5. 21. 15:19

거시기 산행, 우리나라 대표 대명사인 거시기엔 어떤 말을 대신해서 거시기를 대입해도 의사소통이 다 된다. 그러나 약간의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자기 합리화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명사여서 때로는 엉뚱한 발상이 될 수도 있는 참 재미있는 엄연한 표준어다.나 역시 이번 산행에서 거시기를 엉뚱하게 생각했었으니까.

 

어제는 가지 말라는 길로 들어서서 길한테 매를 맞는 날인지도 모른다.그런가 하면 군자이기를 포기한 길이 기도한 것은 사람 다니는 길이 아니라 산돼지가 다니는 길이라니.......

 

군자라고 항상 대로행을 하다 보면 삶이 따분할 수도 있어서 한 두 번 정도는 애교일 수도 있으니까. 소백산엔 아직 한 번도 못 갔기 때문에 목적이 뭐든 기대감으로 따라나섰다.그런데 알고 보니 명산의 명불허전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거시기산행이니까 주인공을 찾아 나서다 보니 다소 내 생각과 차질은 있었지만 난생처음 경험하는 거시기가 즐거우면서도  내심으론 답답한 관목을 벗어나 높은 곳에 올라 소백산의 웅장함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다.그러나 잠시 그 마음을 접고 오늘 해야 할 일 그것에 주일 무적으로 임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내 봉지는 점점 무게를 더해가는 게 제법 성과도 좋고 그것이 따라다니며 향까지 뿌려주니까 금상첨화 였다.

 

사람은 상처를 입으면 눈물을 흘리거나 괴로움을 주는데  나무나 풀과 같은 식물들은 향기를 준다. 너무 애틋해서 공짜로 받아들이기엔 짠한 마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순리리라. 모두들 하루의 목표치는 목표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이미 채워졌지만 그래도 목표 지점을 찾아가야 하루의 완성이 되기 때문에 찾아가는데, 존재감이 미미한 형제봉 가는 길은 사람 발자국은 선명치 않고 곳곳에 산돼지 똥이 있는 걸 보면 산돼지 길이 맞는 것 같았다.

 

헤매다 헤매다 형제봉에 다다르고 그 미미한 존재감을 확 깨는 순간, 그 흔한 표지석 하나 못 얻었지만 형제봉은 역시 명소였어. 그동안 꽉 막혔던 시야를 다 걷어내고 소백산의 절경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 그림에 난 억누를 수 없는 감탄을 쏟아내고 말았다. 명산에서 보는 절경은 뭐니 뭐니 해도 원근감이 있는 장단 고저의 곡선이다. 형제봉에서도 그 아름다운 곡선을 볼 수 있어 만족한 산행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하산할 일만 남았는데 밟히지 않는 낙엽들이 수북한 비탈길을 가는데 스틱이 눈 속에 꽂인 것처럼 진흙에 꽂혀서 잘 빠지지도 않았다. 큰 산은 어디나 긴 자락을 뻗기 때문에 높이보다는 산자락을 빠져나오는 것이 더 힘든다. 높이는 희망과 목표가 있어서 당연하게 감수하는 길이지만 쓸데없는 것 같은 긴긴 산자락을 다 빠져나오는 것은 괜스런 고행길 같다

 

해는 이미 저물고 버스 있는 곳까지 나오니까 석양이 불그레하다. 그 힘든 산행 끝에 어느 대장님의 배려로 땀 흘린 후에 가장 좋은 음식을 내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하루도 저물고 산자락에 어둠이 내리더니 촌락에 하나 둘 불빛이 켜질 때 집으로 향했다. 영주 고치령에서 단양 베틀제에 걸친 긴 하루, 소중한 경험과 대자연의 나눔이 감사한 또 하나의 행복을 추가한 날이었다.

 

 

 감자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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