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백양산과 내장산 단풍

반야화 2014. 11. 5. 12:21

코스: 백양사 주차장-영천 굴-백양산-새제-소 죽음재-신선봉-연지봉-내장사 제4 주차장.

 

가을은 봄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봄은 새로움과 희망이라면, 가을은 봄에 맞았던 새싹에서부터 푸르름의  일대기를 보는 것 같아서 그 지켜보는 마음도 생장의 주기를 따라 흐르면서 만추의 한가운데 서게 되면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맑은 하늘만 봐도 그 너머에 있는 사람까지 생각하게 되고 살갗에 닿는 싸늘한 바람기는 그런 마음 간수를 해야 할 때를 알리는 사유의 계절이다.

 

산행하는 날은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늘을 본다. 새벽하늘에 별이 보이면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이 들뜬다. 이번에는 출발점이 아닌 승차 끝 지점에서 차를 기다리디 보니 차가 늦어지면 겨울에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 것 같았다. 이제까지는 항상 바로 차에 오를 수 있는 편리는 모른 채 남보다 이른 시간 이어서 그것만 안 좋은 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살면서 사소한 것까지 경험은 참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남을 안다.

 

7시에 출발해서 남으로 내려가는 동안 안팎의 기온차로 차창에 결로가 생겨 경유지의 가을색은 잘 보이지 않아서 눈을 감고 있는 동안 3시간 반 가량 되어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다. 백양사가  가까워질 경로에 댐인지 강인지 모를 물이 보였다. 규모와 위치로 보아서 영산강이 아닐까 하는 강줄기가 한참을 이어지고 들판은 이미 텅 비어 올해는 노란 들녘의 풍요를 보지 못한 채 가을이 흘러간다. 이번 산행은 전남 장성에서 시작해 전북 정읍까지 가는 두 지역에 걸친 산행이다. 먼저 처음으로 보는 백양사는 입구에서부터 단풍길이고 다 물들진 않았지만 고목들의 잔 가지들이 강 쪽으로 드리운 흐드러짐이 무척 아름다웠다.

 

난 아직 아마추어 산꾼인가? 산이 목표인데 언제나 그렇듯 지나는 길목의 유적지는 들려보고 싶어 진다.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긴 하지만 산 외에는 늘 주마간산 격인 행보가 아쉬움을 남긴다. 이번에도 다시 가기 어려운 백양사 경내를 살펴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겨우 인증사진만 찍었다. 잠시 사진 두 컷 찍는 동안에 벌써 일행은 멀어지고 꼴찌에 서 있어 힘들게 따라가는데 약수암 지나 백양사의 전설을 간직한 영천 굴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설법을 들은 양이 7일 만에 선사로 환생하기 전에 머물렀다는 중요한 곳인데 그냥 스쳐갔다. 오직 산, 산만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영천 굴 위로 솟은 거대한 암석이 하나의 산처럼 우뚝한 백학봉을 바라보며 오르는 동안에 잡념은 사라졌다. 

 

백학봉을 오르는 가파르게 이어지는 계단길, 그 압도적인 봉우리를 오르는 길은 마치 천국의 계단 같았지만 그 봉에 올라도 천국은 간 곳 없고 뫼만 높더라. 백학봉에서 바라보는 백양사의 가람은 계곡물이 흐를 것 같은 골짜기지만 계곡을 안전하게 비켜선 자리가 포근하고 평온하게 보였다. 백학봉을 지나 조금 평탄한 구간, 그것이 천국의 길이었을까? 우선 편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숨을 고르며 조금 더 가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곧장 상왕봉 쪽이 아닌 비 탐방로를 찾아 질러가는 길로 들어섰는데 길이라기엔 모호한 비탈을 한참을 오르내리면서 찾는 일이 난  오히려 재미있었다. 그렇게 헤매는 도중에 대가 저수지가  보여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골짜기로 모여든 낙엽들이 스틱에 꽂혀 낙엽 꼬치가 만들어졌다.

 

산 하나를 온전히 넘고 나서 새로 시작하는 내장산으로 가는 여정이 어어지는데 아득한 신선봉이 한숨 한 번 길게 토해진다. 오르다 보면 눈에 보이는 꼭대기가 다가 아니고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 신선봉 정상에 서니 깊은 골 높은 산이 겹겹이 이어져 있고 바다 같은 구름띠를 두른 평야들이 아스라이 보인다. 잠시 인증숏을 남기고 정확한 지점도 모른 채 연화봉을 거쳐 내장사에 도착했다. 산이 깊으니까 어느새 산그늘이 내려앉아 그 고운 단풍색은 재색을 다 펼치지 못하고 마치 조명받지 못하는 주연배우 같았다. 그러나 절 일대를 온통 단풍으로 물들여놓은 내장사 단풍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처음이라니! 산 위의 단풍은 찬바람을 맞으면 금방 잎의 끝부분은 마르거나 상처가 생기는데 산 아래 내장사 단풍은 나무가 굵은 고목의 둥치가 아닌 여러 개의 가지들이 디테일하고 잎들은 화장이 지워지지 않은 말짱한 얼굴같이 곱고 색상도 너무 다채로워서 다른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웠다. 단풍이 마치 나무에 비단을 휘감아 놓은 듯 화려한데 그 멋진 운치에 빠져 보는 시간이 부족해서 마음까지 완전히 물들지 못했다.

 

우리가 그토록 전국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가을이지만 잎새들의 가을은 어쩌면 한 철을 마감하는 아픔을 말로는 하지 못해 뭄으로 표현하는 단말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 가지가 죽으면 한 가지가 사는 이 모순적인 순리가 변증법적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는 것이 또한  사는 것이 되기도 하는 순환의 고리 위에서 인간은 단 한 번 살고 간다. 그래서 이 모두가 소중한 순간들이다.

 

백양사 입구

 

 

 

 

 

 

백양산 백학봉

 

 

영천굴

 

 

 

 

여기서부터 내장사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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