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석상암-마이제-도솔산-견치산-소리제-천상봉-천마봉-도솔암-선운사 계곡-주차장.
막바지 가을 산행을 나서면서 기대치에 돌덩이를 매달았지만 실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각각의 부제가 붙었지만 일대가 선운산 도립공원인 곳으로 생각되는 선운산 가는 길에 경수산을 돌아보며 오른다. 나설 때는 겨울 같은데 산을 오르면 땀이 나고, 옷 선택이 애매한 철이다. 겨울옷을 입었더니 몸에 척척 감기는 느낌이 개운치가 않다. 11시가 다 돼서 시작하다 보니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 견치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소리제까지 가는 길은 유유자적할 수 있는 조용하고 좁다란 토끼길이 무척 좋았다.
.조금 흘렸던 땀은 갈바람에 날아가고 다시 산뜻해진 심신으로 가뿐하게 걸어서 천상봉에 오르면 처음으로 선운산의 위용이 느껴지는 사자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좀 더 천마봉을 향해 다가가면 낙조대가 우뚝하고 그곳에 올라서면 335m 밖에 안 되지만 눈앞의 양쪽으로 산이 있고 도천저수지와 산과 산 중간에 서해가 조금 보이는 그 좁은 공간 속으로 떨어지는 낙조를 본다면 외로움이 더해져서 울어버릴 것 같은 낙조의 빛과 눈물이 겹쳐질 심상이 그려지는 아름다운 노을이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져 있는 천마봉은 그곳에 섰을 때는 봉우리라고 하기엔 너무 밋밋한 장소였는데 도솔암 쪽으로 철계단을 내려서 올려다보는 천마봉은 완전 다른 모습으로 하늘을 나르기 직전 천마의 기개가 느껴지는 멋진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천마봉에서 바라보는 도솔암과 내원궁의 풍경은 선운산의 정체성을 보는 듯한 곳이다.
선운산은 444미터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솔암과 내원궁` 도솔천이란 부처님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기 전에 머물던 하늘 나라이며 내원궁은 도솔천의 궁전이다. 언젠가는 도솔천 내원궁에서 다시 출현하실 미륵불이 머물면서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시길 기대하게 되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사후에 극락으로 간다면 도솔천에 태어나는 것이 불자들의 염원이 되기도 하는 천상계이다. 도솔암 내원궁의 풍경을 보면 내원궁을 보호라도 하듯이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치고 구름이라도 날아들면 구름을 타고 참선을 하는 禪雲山의 가장 포근한 곳에 내려앉은 형상이다. 아마도 몇 안 되는 우리나라 기도처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구도의 마음가짐도 삼배의 참배도 못 한 채 돌아서 선운사로 내려가면 구월에 화려한 꽃으로 뭇 인파를 불러들였던 꽃무릇이 꽃대는 간 곳 없고 보리밭 같은 싹들이 멀리서 보면 잔디 같기도 하고 단풍그림의 바탕색이 되어서 한결 더 단풍이 빛나게 해 준다. 내장산의 단풍은 확실히 품격이 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거에 비하면 선운사 단풍은 은행나무 같은 키 큰 교목들의 잔치가 한 차례 끝나고 그 아래서 2막으로 향연이 펼쳐지는 속살까지 태우는 클라이맥스였다.
별 기대 않고 운동삼아 찾아갔던 곳에서 잊을 수 없는 가을 풍경을 만나고 나니 행복감이 충만해져서 감사함이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상사화의 절규가 끝나자 연이어지는 단풍의 향연이 있어 그 골짜기의 막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쓸쓸하고 외로운 볌부들이여, 선운사로 가시라! 아무도 없는 낙조대에 올라 마음껏 눈물 뿌리고 고운 단풍과 함박웃음 흩날리며모든 내면을 씻아보라 내일은 다시 행복해지리라.
견치산에서 본 경수산
견치산
낙조대에서
도솔암 내원궁
내원궁 뒤 마애불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장사송 또는 진흥 송, 600년 된 부챗살 같은 소나무
꽃무릇 싹과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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