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동안 함께해 주신 여러 회원님과 공유하고 싶은 섣달 그믐날입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거창한 주제가 없어도 뭔가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지는 날인데 올해는 송년산행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날에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낼 때는 괜스레 센티해지기도 하고 우울감에 젖기도 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송년가 한 번 듣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무디어지는 것인지, 그게 좋은 것인지, 새해에 대한 기대도 계획도 없고 간다는 생각도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흔히들 이즘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는 말은 해놓은 것도 없이 세월만 갔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여러 회원님과 함께한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매화가 필 무렵부터 눈꽃을 볼 때까지 참 많이도 다녔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난여름에는 경험한 적이 없는 삼복더위에도 양동이로 물을 몸속으로 들어붓는 것 같은 갈증 속에서도 산행을 했고 산천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놓치지 않고 봐 왔던 것 같습니다. 그 많이 남겨놓은 발자국들을 생각하면 결코 허송세월 한 것이 아니라 체력을 저축했기 때문에 하룻저녁에 다 찾아 쓸 수도 있는 돈보다 가치가 더 높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계절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리듬이며 그 변화는 리듬의 반주처럼 어느 날은 격정적으로 끌어올려 주고 또 어떤 때는 조용히 음을 낮추어 본질이 돋보이게끔 해주는 삶의 음악 같은 활력소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생체리듬이 순조로워서 아무 탈 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산행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서로 보조를 맞추면서 잘 지나온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겨울 설악을 갔습니다. 설악산은 언제 어느 지점에서 시작해도 차에서 내려서는 순간부터 압도적인 위용을 느끼게 하는 점이 다른 산과는 차별화를 느끼게 해 주더군요. 이제 설악산의 사계를 다 본 것 같습니다. 설악산은 항상 눈에 덮여 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12 선녀탕 코스를 오르는 시작점인 장수대에서부터 대승폭포까지는 아이젠 없이도 올랐고 나뭇가지엔 눈이 없어도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엔 백발이 덮여가는 초로의 정수리 같은 봉우리를 보면서 빨리 가 만지고 싶었지만 가는 동안에 자꾸만 녹아내려 가까이 갔을 때는 회춘을 해가는 이의 두상처럼 검은색으로 변해버려서 아쉬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설한풍 속에서도 먹는 즐거움은 언제나 그렇듯 산행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인데 날아드는 눈발이 묻어 들어가는 설밥을 먹고 하산길로 접어드니 드디어 눈 산행 같은 행보가 시작이 되고 길도 없는 발자국을 따라 갈지자로 비틀거리면서도 그것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계곡은 물소리가 우렁차게 나야 제맛인데 다 얼어붙은 빙벽 밑으로 선녀탕은 선녀의 마음처럼 따뜻한지 이쁜 모습으로 녹아서 빙벽의 숨구멍이 되어 있고 열두 개를 다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몇 개는 이름값을 하면서 말갛게 찰랑 데고 있었죠. 가파른 눈길을 무사히 다 내려오니까 천생 천사의 주목들이 세월이 다 파먹은 빈 몸뚱이를 꼿꼿이 세우고 아직도 천년은 더 남았노라는 듯한 기개가 멋졌습니다. 우리도 그같이 세월에 맞서는 꿋꿋한 정신으로 새해에도 변함없이 여러 회원님들 즐거운 산행 많이 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연초에 서원 한 가지씩은 세우면서 행복하게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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