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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마실길의 상사화

날씨 좋다는 말이 일상의 언어가 아닌지가 오래다. 주말마다 오던 비가 이제야 물러났는지 오늘 아침은 습도도 없고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다. 아침에 잠시 산책을 다녀왔는데 깨어난 모든 초목들이며 아파트 숲까지도 윤기가 흐르고 맑고 눈부신 하루가 시작되는데 마치 하늘에서 빛의 빙뱅이라도 일어난 것 같다. 이런 날은 산이 먼저 생각난다. 내가 어느 산속에서 푸른 물을 들이며 깊이 잠겨 있는 듯하다. 변산 마실길과 상사화라는 테마에 이끌리는 심상은 벌써 노랗게 꽃으로 들어찼다. 삼복더위를 피해서 오랜만에 떠나는데 이번엔 산행이 아니라 바닷길과 꽃길이 연상되어서 조금 들뜬 마음이 된다. 약 4시간을 달려가서 서해안 변산 송포항에 도착했다. 송포항에서 시작된 마실길 2코스에 접어들자마자 하얀 모래밭에 해당화가 붉게 ..

living note 2017.08.26

완클 경기지부 정모(한양도성길 달빛기행)

봄은 땅 속에서 시작하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다. 아침이면 늦여름의 여운에 초가을의 맑은 바람결이 더해지니 보석 같은 이슬이 맺히고 매미소리 느려지니 풀벌레 소리 요란한 가을 맛이 향긋한 자두 한 알을 깨물었을 때의 그 맛이다. 무더위에 지치고 고된 여름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뒤따라 가을이 온다는 무위자연의 순리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긴 빨랫줄에 높은 장대 곧추세우고 깃발 같은 빨래가 펄럭이며 고추잠자리 그네 타는 가을 풍경이 스쳐가는 청량한 늦여름은 밤이 참 좋다. 그래서 우리는 달빛기행을 즐기러 간다. 한양도성길 2코스는 달빛기행을 할 수 있는 멋진 코스다. 한성대역에서 저녁 7시에 만났는데도 도심에는 한낮의 열기가 그대로다. 오른편에 높은 축대 위로 혜화문이 보이고 조금 걸으니 바로 ..

living note 2017.08.13

괴산 이만봉 솔나리

솔나리를 만나러 간다. 만남은 설렘이고 설렘은 그리움을 낳는다. 그것이 비록 작은 꽃 한 송이일지라도. 그리고 가슴속 한 부분에 그것이 자라고 있어야 살아있음이고 인생에서 어쩌면 숨어 있는 작은 것이 가장 큰 가치를 주는지도 모른다. 그 큰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만봉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를 이루는 소백산맥의 한 봉우리다. 이름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몰라도 언뜻 생각하면 금강산 일만 이천봉보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착각이 든다. 알고 보니 이만봉이란 산 이름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란 전설이 있는 걸 보면 마을 사람들의 눈에 우뚝한 뒷산이 우러러 보여서 이름을 붙여준 게 아닐까 ..

등산 2017.07.12

제주완클 서,경 합동모임

코스: 도봉탐방지원센터-무수골-정의공주 묘-연산군묘-우이령 입구:솔밭공원-4.19 국립묘지-근현대사 기념관 이른 아침에 일어나 먼저 동쪽 하늘을 봤다. 맑은 날이면 조반 준비 전에 가장 먼저 보이는 장면이 있다. 마치 하루를 여는 아침인사라도 하듯 동쪽 하늘 아래 담장 같은 법화산 쟁반에 농익은 빨간 감홍시 같은 아침해가 담겨있는 듯한 풍경을 마주 바라보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어제 아침에도 가장 먼저 하늘을 보는데 없다. 매일 보던 그 장면에 심술궂은 누군가가 먹으로 덧칠을 해놓은 것 같은 무서운 얼굴이다. 구름이 낀 정도가 아니라 사방이 시커멓고 심란하다. 이 심란하고 혼란한 마음에 가야 한다는 결정타가 떠올랐다. 제주 손님, 그분들이 이 궂은날에 서울까지 오시는데 손님 대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

living note 2017.07.09

무용지물의 설치작품

20억 원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작품은 어떤 곳에 설치하는가에 따라 진가가 달라진다. 아무리 설치비를 많이 들여도 봐주는 이 가 없으면 이미 작품이 아니고 거푸집이 되고 달랑 돌멩이 몇 개를 동네 놓아도 훌륭한 작품이 되어 지나가는 발길을 잡아챌 때가 있다. 내 고향은 낙동강 상류, 낙동강 제2의 지류에 속한다.`길안천`이란 강 이름이 말해주듯 그 강 언저리에 사는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고 편안하다"라는 걸 우리는 늘 체험하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 사라호 태풍이 모든 걸 집어삼켰을 때도 우리 마을은 말짱하게 편안해서 우리는 강둑에서 벌건 황톳물에 떠내려오는 집체와 그 집 위에 사람이 올라타고 떠내려가는 것도 목격했다 큰 물이 지고 난 후에는 강변에 나뒹굴던 온 갖가지 농산물이며 살림살이들과 과수..

living note 2017.07.04

북설악 화암사와 라벤더팜

생각 없이 바쁘게 자나 온 시간을 돌아보니 벌써 하지다. 어제 처음으로 산행 중에 여름이라는 걸 느꼈다. 뜨거운 열기와 모자 밑으로 땀방울들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는 게 간지럽게 느껴지는 걸 보면 이제부터 얼음물을 내 몸 입구로 마구 쏟아부어야 하는 그때가 온 것이다. 이번 산행을 결정하게 된 건 보라색을 좋아하는 내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꽂히게 만드는 라벤더 팜을 본다는 말에 확 끌렸다. 보라색 들판 같은 꽃단지와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북설악이라는 애메한 명칭이 맘에 걸리는 곳이다. 설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빼어난 봉우리와 천하일품의 산경이 연상되는 곳인데 이곳은 설악의 잘난 봉우리를 하나도 갖지 못했고 설악의 명성에 끼지 못하는 북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 줄기다. 그래서 어떤 목표 지점을 찾아간..

등산 2017.06.21

제주올레2 (10코스 )

2017년 6.13일 10코스의 변화:화순 금모래 해변-10코스 안내소-대체 탐방로-보덕사-대체 탐방로 종점-사계 화석 발견지-송악산-송악산 전망대-섯상오름-하모해수욕장-하모 체육공원. 2차 제주올레를 시작했다. 시작했으니 이미 반은 한 거다. 후회를 하기 전에는 어리석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1차 때 시작부터 완주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첩을 사는 것도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도 내겐 필요치 않았다. 이제야 후회가 되고 그것이 어리석음이란 걸 안다. 그냥 궁금해서 걸었던 길이, 그다음이 또 그다음이 그렇게 이어진 길이 반이 넘어서자 완주라는 욕심이 생겼으니 이미 절차는 물 건너갔고 보는 것만 하자, 그렇게 완주를 했지만 뭔가 허탈하고 부족하고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것 같아서 힘들겠지만 2차를 ..

제주의 사계 2017.06.16

한라산 돈내코 코스

꽃같이 살고, 꽃같이 비쳐라. 꽃을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ㅏ남의 눈에 꽃으로 보인다면 반목 또한 없을 것이다.  봄 한 철 나비가 되어야 사는 나는 다시 날개를 달고 아직도 남아 있을 봄 찾아 간 날, 한라산 영실은 키 작은 철쭉들이 들꽃처럼 나직이 키를 낮추고 바람도 꺾지 못하는 붉은 서정을 펼치고 있었다. 영실에 오르면 산이 아니다. 들판이다. 붉은 들판이다. 평야다. 정신적 양식을 채워주는 곡창이다. 이로운 팜므파탈이다. 드넓은 들판에 작은 나비 한 마리가 혼미해진 마음으로 허한 속을 여백도 없이 다 채우고 나면 그 포만감은 혹한의 겨울에도 꽃이 있는 마음밭이 된다.  장엄한 비 폭포물기 없는 비가 내리고 있는 모습, 빗물 자국들이 만들어낸 장관 노루샘에 피어 있는 미나리 아제비 꽃         돈..

등산 2017.06.16

2017년의 지리산 종주(3 번째)

코스: 성삼재-노고단-피아골 삼거리-임걸령-노루목-삼도봉-하개재-토끼봉-명선봉-연하천 산장-벽소령-덕평봉(선비샘)-칠 선 봉-영신봉-세석평전-촛대봉-연하봉-장터목-제석봉-통천문-천왕봉-개선문-로터리대피소-망바위-칼바위-중산리로 하산 내가 몇 년째 지리산종주를 하는 이유: 체력변화의 테스트, 아직도 건재한다는 자부심, 할 수 있다는 과시 등, 결과는 변함없음과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었다는 것. 지리산처럼 큰 산은 일기예보를 믿으면 안 된다. 늘 변수가 따른다는 걸 알아야 되는데 비 예보가 1~4 밀리미터, 그리고 이튿날 오후 맑음이다. 비가 온다고 받아놓은 날의 약속을 깬다는 건 용기 있는 자만 할 수 있다. 지리산 종주라는 긴 여정 중에 비는 소나기 같았고 바람은 초속 20미터, 준 태풍급. 6월 5일..

등산 2017.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