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 원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작품은 어떤 곳에 설치하는가에 따라 진가가 달라진다. 아무리 설치비를 많이 들여도 봐주는 이 가 없으면 이미 작품이 아니고 거푸집이 되고 달랑 돌멩이 몇 개를 동네 놓아도 훌륭한 작품이 되어 지나가는 발길을 잡아챌 때가 있다.
내 고향은 낙동강 상류, 낙동강 제2의 지류에 속한다.`길안천`이란 강 이름이 말해주듯 그 강 언저리에 사는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고 편안하다"라는 걸 우리는 늘 체험하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 사라호 태풍이 모든 걸 집어삼켰을 때도 우리 마을은 말짱하게 편안해서 우리는 강둑에서 벌건 황톳물에 떠내려오는 집체와 그 집 위에 사람이 올라타고 떠내려가는 것도 목격했다 큰 물이 지고 난 후에는 강변에 나뒹굴던 온 갖가지 농산물이며 살림살이들과 과수원이 통째로 떠내려와서 꺾어진 빈 나뭇가지에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서 따먹어도 되는 사과나무같이 많이 달린 채 종착점 인양 함부로 놓여 있었다.
몇 개의 마을을 먹여 살리면서 작은 동네의 동맥 역할을 하며 논밭의 곡식들을 살찌우던 그 큰 강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있다. 지금은 보를 만들어 갇힌물은 이까가 앉았고 보 아래는 바닥을 드러낸 채 추억들을 묻어버린 강바닥의 돌들만이 강의 잔해처럼 가난하게 졸졸거리고 있고 그 유유하던 물줄기는 어디로 숨어서 흐르는지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쏘가리도 은어도 버린 강에 우리의 어린 시절도 자갈돌 속에 묻혀버렸다.
며칠 전에 올 들어 두 번째 고향 친구들과 만났다. 우리들 사이에 놓였던 징검다리가 끊어졌던 걸 이제 우리는 다시 그 자리에 돌덩이를 놓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견고하게. 약속 장소인 터미널에서 11시에 만나 혀도 잊지 못하고 미각을 간직하고 있던 골부리 국 정식을 먹고 어린 시절이 돌멩이 알알에 박혀있는 그 강 길안천 강변 마을에서 가장 멋을 부린 이쁜 정자에 앉아서 추억 더듬기에 한창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소제로 추억 한 페이지를 만들고 싶었지만 인물이 아닌 풍경인데도 아무도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아 기록이 될만한 사진 한 장도 얻지 못하고 난 어느 무명작가의 손길에 의해 만들어진 어설픈 설치작품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갔다. 20억 원을 들여서 만든 작품이 헌 걸레짝 같이 남았지만 아무도 찾는 이 없어 나만이라도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걸어보았다.
그 작품은 바로 전 국민의 이슈가 되고 있는 4대 강 개발로 생긴 생뚱맞은 졸작이다. 넓고 긴 강변에 잡초밭이 펼쳐져 있고 잡초 한가운데로 마치 뱀 한 마리가 지나간 흔적 같은 외줄기 시멘트길이 허얗게 누워 있다. 한참을 걷다 보면 강을 가로지르는 물속에 강변 돌들은 버림받은 채 강가에 무너진 축대처럼 흩어져 있고 고급스러운 화강암 돌덩이가 강을 장식하고 있다. 그 강에 있는 걸 잘 활용했더라면 강과 더 잘 어울려서 함께 어루만지면서 흘러가는 강의 친구가 되었을텐데 덩치가 너무 커서 거기까지 오기엔 높은 공임이 들었을 것 같은 돌덩이,마치 우리 어린시절에 동네에 어쩌다 찾아 들었던 시골마을에 서울내기처럼 어울리지 않는 구경거리로 덕지덕지 놓여 있어 강의 흐름까지 방해하고 있었지만 다행이 상류여서 녹조는 아니었다.그리고 강변에는 나그네 하나 받아 본 적이 없는 때묻지 않은 벤취들이 있고 공 한 번 딩굴지 않은 거대한 운동장이 있다.그 뿐 아니라 관객의 박수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는 무대장치 같은 것도 죽 늘어서 있다.그 큰 여러 개의 그늘막 속에는 왜가리 한 마리 쉬어가지 않는다.
이 가난하고 쉴 틈 없는 시골에 잔뜩 멋을 부린 시설물이 모두가 무용지물로 방치되어 있다. 20억 원이면 빚에 허덕이는 고향마을이 발전할 수 있는 비용으로 쓰여서 농가소득을 높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분노 같은 게 치밀었다. 어느 분의 강을 빛낼만한 업적이 아니라 용도변경도 안 되는 시골마을의 리어카에 꽃장식 같은 쓸데없는 사치품이지만 그나마 외면당하고 있으니 아니 그 시설을 누릴만한 사람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누구든 통치자는 물리적 업적보다는 정신적 업적을 남겨주는 존경받는 위인이기를 바란다.
멀리서 본 임하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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