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법화산 봄축제

반야화 2017. 4. 24. 15:40

봄의 모성애는 아스팔트를 뚫는다.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봄이야말로 위대한 어머니다. 딱딱한 아스팔트에도 흙 알갱이 몇 알만 있으면 작은 생명이 솟구치는 걸 본다.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이름 모를 꽃이 하필이면 금이 간 길 위에 어쩌려고 꽃은 피는지, 아무도 이름 붙여주지 않아 잡초라고 하지만 봄은 평등하게 무명초까지도 다 꽃 피우게 하는 모성애가 있다. 이토록 힘겹게 피어난 봄의 자식들을 누가 잡초라고 함부로 밟을 수 있을까.

 

요즘은 산책이 즐겁다. 현관문 밖을 나서기만 하면 바로 술밭이 있고 그 솔 사이사이마다 연달래라고 불렸던 산철쭉들이 놀랍도록 많이 피어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그렇게 많은 꽃나무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절대적 아름다움을 지닌 꽃, 누가 가꾸지 않아도 저토록 화려한 꽃밭을 해마다 나에게 선물처럼 가져다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그래서 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쁘다 이쁘다 하면서 칭찬해주고 매일 그 길을 지나면서 행복하다고 말해준다.

 

법화산은 지금 철쭉 축제장이다.지리산 바래봉을 가지 않아도 나의 야외 정원에서 만나는 철쭉들이 있어 해마다 온다는 약속을 믿는 즐거움이 있다. 법화산 길은 산책시간을 최대한 3시간까지 늘려 걸을 수 있는 여러 길이 있다. 초봄에는 문만 열어도 매화향이 짙게 들어오고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확실히 향이 다른 신선한 공기를 주기 때문에 나는 그 품에서 일상의 낭만을 향유하는 여유가 있다.. 그런데 이 좋은 조건을 우리 아이들은 아무도 즐기지 않아서 속상할 때가 있다. 아직도 꽃이 핀 줄도 모른다. 휴일이 되어도 야구 보는 게 더 좋다고 하니 어떤 말로도 통하지 않는 것은 젊음이 있어서다. 스스로가 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심지어 집안에 곱게 핀 화초를 코 밑에 들이밀어도 이쁜 줄도 모르고 어쩌다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화초가 목이 말라서 축 늘어져 있다.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을까?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 난 아주 오래전부터 꽃을 볼 줄 알았을 것 같다.

 

꽃도 좋고 잎도 좋다. 갓 피어난 연두색 잎들은 아직 벌레들의 입자 욱 하나 나지 않고 윤기 번지르한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참 좋은데 이제 곧 애벌레들이 깨어나면 연역한 잎들이 습격을 당하고 찢어지고 뚫어지고 수난을 받겠지만 그럴수록 잎들은 더욱 억세지고 더 많이 피어날 것이다. 봄 잔치가 끝나도 서러워할 것 없다. 여름이 되면 짙은 산그늘이 생기고 매미 찾아들면 그 또한 야외 음악당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이렇듯 산다는 것은 모두가 "일체유심조"여서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줄 알면 그것이 최상의 삶이 되는 것이다.

 

현관문 열고 나오면 바로 만나는 길

 

법화산 산책로

법화산은 지금 철쭉 축제 중 나의 자연정원

 

 

 

산책길에서 생긴 잘못된 만남 괜히 만져보다가 피부염만 나에게 옮겨준 놈

 

 

 

루비의 산책로

 

루비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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