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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날의 산책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습기 없는 눈이 실가지 위에 곱게 내려앉는다. 눈 입자가 보일만큼 가벼운 눈이 힘없이 내리는 날이면 밟기도 안쓰럽다. 마치 고운 채로 친 쌀가루를 묻혀둔 것 같은 마을 공원의 풍경은 미처 거두지 못한 가을 위에 덮혀지면 붉고 흰 눈이 만들어 낸 그림 같은 풍경이 냉정한 겨울한테 밀어내지 말라는 가을의 부탁 같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어디로 떠난 것 같지만 아니다. 서로에게 스며든 계절이 하나가 되어 대지의 품에서 잠들어 있다. 때가 되면 고운 계절을 하나씩 낳아서 아름답게 보여 줄 것이기에 기다리는 그것이 그리움이다.

living note 2023.12.18

트레킹의 즐거움

길을 걸었고, 길을 걸을 것이다. 물의 흐름은 끝이 있지만 길의 흐름은 어디가 끝인 줄을 모르고 정지된 듯하면서도 길 위에 올라서면 그것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23년 12월, 이 시점에서 돌어보니 단단하게 봉해진 한 해를 커팅하는 순간부터 길을 따라서, 길 위에서 우리는 흘러왔다. 아름다운 흐름이었다. 참 많이도 걸었다. 내 몸에 무명실을 두르고 그 끝을 길 위에 깔면서 걸었다면 아마 멋진 그림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연초에 선으로만 그린 드로잉이 완성되고 계절 따라 채색되어 가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다 보면 어느새 채색은 빛이 바래져 무채색의 겨울이 되고 한 해도 마무리가 된다.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길을 따라 흘러왔다. 어쩌다가 몸이 쉬어달라라고 반항을..

등산 2023.12.07

불암산

가을이 떠난 자리, 가을이 남긴 자리를 더듬어보려고 불암산을 찾았다. 가을이 떠난 자리라면 산자락을 뒤덮은 낙엽으로 그 여운을 남기고 있었고, 가을이 남긴 자리라면 텅 빈 충만 같은 게 있었다. 텅 비었다는 건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초록으로 메워졌던 자리가 텅 비었고, 충만이란 건 떠날 건 떠나고 남을 건 남은 그 자리를 다시 초록으로 채울 수 있는 모성을 간직한 나무들의 몸통이 숲을 꽉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텅 빈 듯하지만 가득 찬 겨울숲 속은 짙은 녹차향이 발자국마다 배어 나왔고 간밤의 겨울비로 젖은 눅눅함을 밟고 오랜만에 정상을 향해가는 길은 지난날의 기억을 찾을 수없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올랐으니 옛날 그 산이 아닌듯했다. 그때는 바위에 온통 붉고 검은 낙서로 도배가 되어있어서 좋은 ..

등산 2023.11.24

2023년 첫 눈 출사

수원화성에서...... 첫눈 온다는 소식에 아직도 설렘 반짝이는 가슴 있었네. 비 오는 날의 이별은 있어도 첫눈 오는 날의 이별은 없듯이 모든 이의 가슴속에 간직되었던 이쁜 추억 한 자락을 일시에 꺼내는 첫눈 오는 날, 그래서 첫눈을 서설이라고 하나보다. 격정의 가을빛이 바래지고 우리들 마음도 차분해지는 시점에 찾아온 첫눈 오는 날, 하얀 바탕에 첫사랑의 자욱이 선명한 그런 추억이 잠재의식을 뚫고 살며시 올라오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에 나만의 새싹 같던 첫사랑이 걸었던 시절을 들춰보는 추억 하나 없이 노년으로 접어들었을 때, 첫눈 오는 날마저 눈이 와서 불편하다는 때 묻은 마음밖에 없는 일상의 연속이라면 삶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쭉쭉 뻗은 교목들이 빽빽하고 길섶에 초록이 남아 있는..

living note 2023.11.17

안동 하회마을

여행을 하던 시간도 좋았지만 다녀와서 글을 쓰면서 회상 속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장면들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지금이 더 행복한 순간이다. 이번여행은 낙동강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량산 전망대에서 보이던 그 물줄기가 흘러가는 방향 따라 우리도 함께 흐르는데 낙동강은 장난꾸러기 같다. 긴 여정이 지루했는지 청량산 안내소가 있는 장소를 물돌이로 만들더니 농암종택을 지나고 심심할 때면 또 하나의 물돌이 마을을 만들며 하회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크게 하나를 더 만들고는 구불구불 흘러간다. 그렇게 만든 물돌이 마을이 네 개나 된다.( 청량산안내소, 무섬마을, 회룡포, 하회마을) 그렇게 하회에서 장난기를 멈춘 낙동강은 여러 지역을 먹여 살리며 하심 하는 심성으로 바다로 가는 유장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낙동강 합..

카테고리 없음 2023.11.11

병산서원

이번 안동여행의 기록을 쓰다 보니 마지막장에서 알게 된 공통점은 어디를 가나 학문과 만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자들이 만년에 남긴 안빈낙도의 삶이 한결 같이 고향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었으며 삶의 흔적들을 남겨 잠시나마 후대에게 생의 마무리가 얼마나 아름다워야 하는지 군자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과 오랜 세월 속에서도 그것을 잘 지켜내고 있는 후손들의 노력도 볼 수 있었다. 만휴정, 농암종택, 병산서원, 하회마을을 돌아보면서 청렴결백하게 하게 살았던 분들만 낙향하기를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부귀영화를 원했다면 두메산골 외진 고향으로 찾아들지 않았을 것이다. 서원과 종택을 찾아가는 곳마다 편리한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불편함을 느끼는데..

living note 2023.11.09

안동 천등산 봉정사

언젠가 뉴스에서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더 오래된 건물이 발견되었다는 것. 그 목조건물이 바로 안동 봉정사라는 걸 알고 나니 꼭 보고 싶었다. 무량수전보다 13년이나 앞선다는 봉정사 극락전인데 와서 보니 사찰 안에 있는 전각들이 전체가 국보와 보물이고 시대 또한 고려말부터 신라 초. 중. 후기까지의 건축양식이 한자리에 다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봉정사의 또다른 놀라운 점은 너무 아름다운 장소라는 것이고 뒤에는 천등산이 있고 경내의 정원은 고목으로만 우거진 숲이 대단하고 영산암으로 오르는 계곡의 숲과 만세루와 우화루를 들어섰을 때의 아름다움, 다시 온다면 천등산도 올라보고 하루쯤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그..

등산 2023.11.08

안동 만휴정과 월영교

3박 4일간의 여행 일정을 짜는데 안동에서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여행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가야 할 곳이 동서남북에 산재해 있고 거의 안동 시내에서 멀리 들어가는 농촌마을이다 보니 하루에 두세 번 다니는 버스의 시간을 맞추기란 어려움이 많아서 이틀간은 안동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시티투어 차를 타면 멀어도 도로가 막히지 않으니 거의 40분 정도면 다 갈 수 있었다. 코스별로 선택해서 예약을 하는데 만휴정, 월영교, 봉정사가 묶여 있는 코스를 선택했고 나머지 하루는 하회마을 코스를 하기로 정하고 나니 그제야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나 좋은 장소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먼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만휴정으로 갔다. 만휴정 가는 길목에는 바로 친정집이 있는 동네다. 거기까지 갔지..

living note 2023.11.07

청량산 고산정

이제부터 고산정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한 가지를 포기하니 마음이 훨씬 여유롭고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은 것 같다. 아침안개가 다 걷히기 전에 종택 밑으로 내려가서 낙동강변을 걷다가 위쪽길로 올라가서 가송길로 약 20분을 걸으면 고산정이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이튿날 선비순례길 4코스를 걸어서 육사문학관까지 가려고 했는데 중간에 길이 끊기다시피 좋지 않다고도 하고 그보다 농암종택에서 고산정까지의 그림 같은 풍경이 좋아서 두 곳의 사잇길을 놀며 걸으며 고산정까지 갔는데 와, 이 골짜기에 이런 아름다움이 놓여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강 이쪽저쪽을 건너 다니면서 그 일대 액자 속 그림이 되어 마음껏 즐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에 속하는 가송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living note 2023.11.06

안동 농암종택

청량산 산행을 마치고 걸어서 농암종택까지 올 계획이었으나 산행에서 쌓인 피로 때문에 택시로 바로 오고 말았다. 평소에 우리가 하던 트레킹에 비하면 거리상으로 가능했으나 이어질 일정을 생각해서 숙소로 바로 왔다. 해 질 무렵에 농암종택에 들어섰더니 농암선생의 17대 종손인 이성원 종손님의 안내를 받아 한속정사로 들어갔더니 이미 따뜻하게 방을 데워놓으셨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선 여정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대자연가든으로 안내받아 저녁을 먹고 밤길을 걸으며 숙소로 가는데 물소리 풀벌레소리만 들리고 하늘엔 별이 총총한데 폰 플래시로 길을 밝히며 밤 마실길 같은 숨죽인 밤의 정적을 느껴보는 것이 오랜만에 해본 경험이었다. 안동에는 숙박할 수 있는 고택과 종택이 45곳이 있다. 종택이 18개, 고택이 27..

등산 2023.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