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던 시간도 좋았지만 다녀와서 글을 쓰면서 회상 속에 새록새록 떠오르는 장면들 하나하나를 담아내는 지금이 더 행복한 순간이다.
이번여행은 낙동강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량산 전망대에서 보이던 그 물줄기가 흘러가는 방향 따라 우리도 함께 흐르는데 낙동강은 장난꾸러기 같다. 긴 여정이 지루했는지 청량산 안내소가 있는 장소를 물돌이로 만들더니 농암종택을 지나고 심심할 때면 또 하나의 물돌이 마을을 만들며 하회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크게 하나를 더 만들고는 구불구불 흘러간다. 그렇게 만든 물돌이 마을이 네 개나 된다.( 청량산안내소, 무섬마을, 회룡포, 하회마을) 그렇게 하회에서 장난기를 멈춘 낙동강은 여러 지역을 먹여 살리며 하심 하는 심성으로 바다로 가는 유장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낙동강 합수그림이 참 재미있다. 마치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만나는 것 같은 형상이다. 강원도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강과 영양 일월산에서 시작된 동강(반변천)의 물길은 각기 따로 흐르다가 안동호와 임하호를 가득 채우고 흘러내린 물이 용상 두물머리에서 합수해서 거기서부터 하나의 낙동강이 된다. 안동 시내에서 용상동으로 넘어가는 법흥교 다리 아래가 양 방향의 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두물머리다. 낙동강의 본류는 낙강과 동강이 합류해서 낙동강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긴 여정을 떠난다.

부용대에서 보이는 하회마을 전경, 하회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부용대에 올라서 마을의 전경을 본다. 부용대는 정월대보름날에 줄불놀이를 하는 곳이다.

부용대에서 볼 때에는 낙동강 품 안에 동그랗게 안긴 마을이 옹기종기 반상이 모여 앉아 만송정과 벚나무길이 막아주는 방풍으로 포근함에 싸여 자그마한 마을로 보이더니 막상 마을로 들어서니 번듯한 양반가옥과 초라할 것 같지만 이쁜 초가들이 이 마을의 신분을 나타내는 준절하면서도 넘치지 않는 모습으로 따뜻하게 살아가는 유씨 가문의 집성촌이다. 가옥뿐 아니라 농지도 넓어서 작은 마을이 아니라 집성촌치고는 꽤 큰 마을이었다.
마을을 다녀봐도 마주치는 주민들은 거의 보이지도 않고 나그네만 흘러 다니는 하회마을은 기웃기웃 들여다보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대문을 열어 보여주는 안마당이 고맙기도 했다. 꼬불꼬불 토담을 돌며 명문가의 가옥들이 솟을대문만으로도 위용을 떨치며, 있는 그대로가 옛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 양반가 고택과 초가들이 어울려 있는 토담길을 돌며 마을을 살펴보는데 담장 너머 붉게 익어가는 감과 그림 같이 어울리는 마을이 가을빛을 담아내는 모습이 너무 아름 더웠다.

낙동강 상류 안동지방에서는 강물이 산을 옆에 세우고 함께 흐르는 것처럼 절벽의 산세가 이어져 있다.

충효당 뒤뜰

충효당 솟을대문 앞에서

충효당,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은 조선 중기의 재상이자 학자였던 류성룡선생 가문의 종택으로 손자 류원지가 유성룡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림과 제자들의 뜻을 모아지었다고 한다. 충효당이란 이름은 류성룡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라고 강조한 데서 유래했다.

토담과 감나무가 썩 잘 어울리는 시골 풍경이다. 토담이 언덕으로 올라갈수록 받침돌도 한 층 씩 높아지게 되어 있다.



염행당, 국가민속문화제 90호, 이 집은 주일대사를 지낸 유태하의 고택으로 충효당과 함께 남촌을 대표하는 집이다.

화경당 골목에서만 볼 수 있다. 실제로 살고 있는 집에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주민들한테 불편을 주면 안 된다.

화경당 고택, 중요민속자료 제84호, 물 격 무늬 벽체에는 독립유공자의 집이라고 붙어 있다. 하회마을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는데, 북촌과 남촌 사이에 도로가 있고 화경당은 마을 중심부 북촌에 양진당과 북촌을 대표하는 남향집이다.

양진당 고택, 보물 제306호 안동 하회마을에 자리한 하회 양진당은 국가 보물로 지정된 풍산 류 씨의 대종가로, 입암고택으로도 불린다. 고려 건축양식을 지닌 사랑채와 조선 건축양식을 지는 안채가 공존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안채와 사랑체인데 사랑체에는 두 개의 계단이 있고 오른쪽은 아버지가 다니고 왼쪽은 아들이 다니다. 아들이 다니는 계단에서 앞을 내다보면 하회의 진산인 화산의 문필봉이 직선으로 보이도록 되어 있어 아들은 어릴 때부터 문필봉을 보면서 학문에 전진하도록 독려했다는 말이 재미있다.

아들의 계단에서 바라보이는 앞에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화산의 문필봉이다

양진당의 솟을대문에는 일반적인 양반가의 대문과 달리 행랑채가 없다. 이것은 아랫사람한테도 안에서 살도록 하는 배려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아랫사람을 부리는데 하대하지 않았다고 하는 양반가다.

낙동강 위에 있는 만송정 솔밭공원

부용대





동네 중앙에 있는 삼신당으로 들어가는 토담길

삼신당은 하회마을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류종혜가 입향 할 때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수령 600년이 넘는 나무라고 한다. 마을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하당으로 불리며 화산 중턱의 상당, 중당과 함께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룬다.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그 음 날 아침에 이곳에서 제를 올리고 하회별신굿 탈놀이도 여기서 시작된다고 한다.

나무 밑동에 하얗게 메인 종이들이 다 소원을 적은 것인데 우리 일행도 소원을 적어서 메어 두었으니 모든 게 원만 성취되리라 기대한다.

오랜만에 보는 소 여물통



벚나무길 산책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