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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의 수난시대

소나무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다 좋아하는 면면히 이어져 온 사랑받는 나무다. 목재로는 궁궐을 받치는 기둥으로 쓰일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소나무가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해서 이제는 마치 소나무의 모양이 아파트의 가치를 가늠할 정도로 흔한 정원수가 되어버렸다. 산에서는 씨앗이 바위틈에 내리면 큰 바위를 쪼갤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런데 마을로 내려온 소나무는 생육조건이 맞지 않는지 잘 자라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많이 보는데 자연을 좋아하는 나로선 그걸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얼마 전에 개를 차에 달아매고 질주하다가 동물학대로 뭇매를 받는 사건이 있었다. 분명 동물학대다. 그런데 왜 식물 학대 죄는 없는 건가? 우리 마을에만 해도 이식한 소나무가 많이 죽어나간다...

living note 2012.05.22

오월이면 경주로 간다.

경주 남산 성묘길 오월의 아침은 걸러낼 것 하나 없는 보양식 같아 내 안으로 다 끌어넣어도 좋은 아침이다. 그런 날의 여명을 달려가는 곳이 경주남산, 어느새 나는 경주의 아침에 섰다. 경주는 가는 곳마다 부호들의 잘 짜인 정원같이 잡풀 하나 없는 넓은 공간들이 참 좋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경주 땅에 내려서는 순간 아카시아 향으로 손님 대접을 받는 것 같이 그 향내 나는 길을 걸으며 시부모님 산소에 다 달으니 작년에 느꼈던 쓸쓸함보다는 양지바르고 포근한 터의 안정감이 더 느껴졌다. 산소 옆에는 두 집안 식구들이 다 둘러앉아음 식을 나누어 먹던 널찍한 바위가 있는데 이제는 쓰러져가는 폐가처럼 낙엽만 쌓여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위로 몇 분은 돌아가시고 조카들과 내 딸도 출가를 했으니 함께 모인다는 것이 쉽지가..

living note 2012.05.20

남산 산책길

딸과의 데이트 봄은 해마다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대지가 하나의 화폭이 되고 겨울의 색상에 덧칠하고 덧칠하면서 생동감을 주는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우리 모녀는 그 그림 속에서 사미 좋은 계절, 아름다운 경치, 이를 즐길 줄 아는 마음, 유쾌하게 노는 일을 다 만끽한 날이었다. 시간만 나면 산으로 산으로 들어가기만 했는데 거기만이 제일이라 생각했는데, 산 밖 도심에도 아름다운 섬 같은 남산이 있어 일상이 고단한 사람들의 휴식을 책임지는 곳 같았다. 산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5시간을 놀며 걸으며 했지만 다 돌지 못하고 중간에 빠져나왔지만 꼭 한 번 다 돌아봤으면 싶다. 나 혼자 라면 그렇게 고집을 하고도 싶지만 딸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숲 속에 호 젖이 앉아..

living note 2012.04.28

이말산 단상

강풍을 동반한 비가 흠뻑 내리 고난 뒤 맑게 갠 날이다. 이제 막 돋아나는 잎들의 순이 강풍 때문에 똑똑 끊어져 있고 진달래도 다 지고 없지만 푸른색이 짙어지니 꽃 진 설움의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 비 온 후에 촉촉한 흙과 나무들이 풋풋한 향을 뿌리고 적당한 바람결엔 솔향마저 진동하니 들숨이 가빠진다. 이렇게 좋은 날은 날씨만으로도 행복하다. 혼자 조용히 산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풍요로움이라고 하면 가을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내 생각엔 봄이 더 풍요로운 계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농경사회에선 가을의 수확이 그걸 증명해 주지만 거두어 들일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풍요롭기는커녕 엄습해 오는 추위에 맞서야 하는 걱정이 더 컸을게다. 그러나 요즘 같은 산업사회에선 가을의 수확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living note 2012.04.26

꽃같은 시절

지천에 피어 있는 꽃들은 서로를 알아볼까요. 누가 더 이쁜지 누가 더 사랑받는지를. 사람도 꽃 같은 시절을 보냅니다. 우리 다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 딸들은 아직도 꽃 이어 서일 까요! 옆에 꽃이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네요. 꽃을 몰라보는 모양입니다. 억지로 코앞에 들이밀어도 시큰둥합니다. 꽃 같은 시절에는 꽃이 아름답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그 시절에서 너무 멀어져서 자꾸만 꽃이 이쁘고 늘 눈길을 주고받다가 시들 때가 되면 다시 꽃잎을 따서 마지막까지 싱싱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얼마나 이쁜지요. 다시 꽃이 되고 싶어서겠죠.

living note 2012.04.05

커피와 일상

무한대로 주어진 시간을 제한적으로 끊어 쓰는 것이 하루다. 오늘도 하루라는 시간을 열고 내 딸이 집안 가득 향기를 뿌려 놓고 말쑥한 차림으로 문을 나서면 나는 그 풋풋한 향기를 쌉싸무레한커피 향으로 밀어내 버린다. 그것이 내 일상의 시작이니까. 진정한 커피의 맛을 느끼려면 혼자 즐길 때 그 절정의 맛을 안다. 따끈한 물이 커피 속에서 방울방울 여과지를 통과하는 동안 나와 커피 사이엔 서로의 깊이를 가늠하는 침묵만이 맛에 도달하는 기다림이 되기도 하고 그 뒤에 있을 일과들의 순서를 정하며 아무런 할 일이 없어도 그것조차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게 된다. 같은 커피일지라도 연인들 사이에 놓인 커피는 그날의 대화에 따라 달콤하기도 하고 맹물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싸늘하게 식어 버림받기도 한다. 또..

living note 2012.03.30

지리산 종주

지리산 종주 첫째 날 거리: 약 40킬로미터 소요시간: 20시간 산행코스 : 성삼재~노고단~반야봉~중봉~묘향대~삼도봉~벽소령~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중산리 외줄기 눈길 지리지리 멀기도 하더라신새벽어둠부터 중천에 뜬 해 길기도 하더라. 차라리 날 저물어 지리산 어느 품에 나 깃들고 싶더라. 새벽 4시 반에 출발하여 세석대피소까지 참 지루하고 힘들게 올랐지만 정작 노고단을 어둠 속에서 스쳐 온 것이 아쉬움이었고 그다음부터는 눈길을 조심하느라 발등만 보고 올랐다. 점점 여명이 밝아오고 노루목에서 일출을 본 뒤 날은 밝았지만 발등만 보는 산행은 계속되었어, 살기 위해서 양식을 지고 가는데 자꾸만 뒤를 잡아당겨서 참 힘들게 올랐는데 어느새 세석대피소에 도착하고 일몰 직전이지만 장소가 그걸 볼 수 없도록 되..

등산 2012.02.13

한라산 가족여행

모든 선물이 나에게로 집중되는 것 같은 행복한 날이다. 하늘에서 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주는 것 같은 날이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 한라산으로 가는 날. 새하얀 바탕 위에선 꽃이 되어 보기도 하고, 파아란 하늘 배경에 눈꽃을 그리기도 하고 밤하늘엔 달도 그리고 저녁나절엔 마지막으로 하루를 넘기는 해님까지 배웅을 하고 나서야 우리 가족은 한라산 밑에 있는 숙소로 돌아와 신령스러운 백록담에 소복이 담긴 눈만큼이나 행복을 나눈다. 새벽에 일어나 누룽지를 삶아서 요기를 한 다음 성판악코스로 가는데 주차장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전날만 해도 적설량이 많아서 입산통제를 한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다행히 통제는 풀렸지만 참으로 엄청난 눈이 쌓여 있어서 길은 겨우 한 줄로만 갈 수 있도록 튀어져 있어서 추..

등산 2012.02.07

눈오는 날

낮에 내리는 눈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것도 변화된 세상입니다. 나 어릴 때는 눈은 한밤중에 숨어서만 오는 줄 알았지요. 자고 나면 장독대와 초가지붕에 소복이 쌓인 눈만 봤거든요 내 마음 심층 가장 밑바닥에 있는 동심이 뛰쳐나와 눈밭을 뛰어다닙니다. 오늘처럼 따뜻한 방 안에서 넓은 창을 통해 눈 오는 걸 볼 수 있다는 건 겹겹이 세월의 층계가 있는 그 밑바닥 동심에는 있을 수 없었지요. 토굴 같은 초가 안에서 창호지가 유난히 밝게 보이는 정도였지요. 바로 창가에서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눈을 봅니다. 그러고 있으니 눈이 내 눈 속으로 들어올 것 같은데 눈이 흰색이어서 참 다행입니다. 저토록 가벼운 터치가 금세 설경을 그려내고 있네요. 앞뜰 작은 나무 실가지에 쌓이다 만 눈은 매화가 필듯한 봉오리 같습니다..

living note 201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