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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무대의 장막을 연 복수초(물향기수목원)

검은 암막커튼 같은 겨울이 밀려나면서 화사한 꽃무늬의 커튼이 열리더니 지난해의 봄을 다시 불러 세우는 커튼콜이 열였다. 가장 먼저 무대인사를 한 복수초가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듯 노랗게 방긋 웃고 있다.매섭던 찬바람의 성질이 유순해지더니 멀리 남쪽으로 봄을 데리러 길을 떠났는지 날이 따스하다. 얼마나 이쁜 봄처녀를 데려올지 기다리는 시간의 조급한 마음을 달래주며 언 땅에 금을 내더니 그 틈을 비집고 복수초가 먼저 얼굴을 드러냈다. 오늘 같은 날씨가 일주일만 이어지면 뒤이어 땅에서는 노루귀, 봄까치, 봄맞이 현호색 얼레지 등 수많은 봄꽃들이 존재를 드러내게 될거다.머잖아 수많은 봄꽃들을 맞이할 때는 이쁘다고만 할게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가짐이 된다.고생 많았지?살아 있어서, 다..

living note 2025.02.28

동탄 무봉산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려도 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산을 뚫고 나가지만 역시 산에 갇혀 있는 길일 뿐이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지평선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다. 특히 경기도에 산이 많아서 아직도 처음 가는 산이 있어서 참 좋다. 그저께는 무봉산에 갔는데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산이었다.겨울산행은 좀 심심하다. 아무리 살펴도 뭐 하나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봄을 가장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눈이 녹아도 눈물이 땅으로 스며들 정도가 아니어서 푸석푸석한 산길을 걷다 보면 음지에는 몇 번 내린 눈이 그대로 얼음이 되어 낙엽 속에 단단히 숨어 있다. 숨은 얼음덩어리가 녹을 때면 산길이 질척이기도 해서 이즘에는 산길을 잘 선택해야 된다.처음으로 가는 곳은 지명의 ..

등산 2025.02.24

영흥수목원(수원)

영흥수목원은 수원시 영통구 도심가운데 있는 수목원이어서 여러 주민들의 정원 같은 곳이다. 수인분당선 청명경에서 4번 출구로 나가서 마을 사잇길을 따라 약 20분을 걸으면 공원이 보인다. 하루 중 어느 때라도 찾아가 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는 너무 좋은 공간이 있다.먼저 방문자센터로 들어서면 로비와 대강당, 책마루, 카페, 가든숍, 체험교실, 정원상담소, 가든교육장이 있고 야외정원 안에는 전시온실, 꽃과 들풀 전시원, 전시숲, 생태숲 등이 산책로에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겨울이어서 산책로 옆에는 몸체는 사라지고 이름표만 남아서 이름표의 주인공을 만날 수 없었다. 봄이 오면 잠자던 공주가 깨어나듯이 이쁜 야생화가 얼굴을 내밀지 싶다. 때를 기다렸다가 낯선 이름표의 공주님들을 만나봐..

living note 2025.02.21

결빙과 해빙

입춘이다. 겨울이 둘러치고 있던 검은 장막에 금을 내고 봄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열었다. 그러나 겨울의 끝자락이 더욱 발악하는 혹한을 붙들고 있어 언제나 이즘이 가장 춥다.찬기운이 드세게 온기를 밀어내고 세상을 결빙 속으로 밀어 넣더니 곧 따스함이 차가움을 밀어내는 때가 도래했다. 따스함과 차가움, 두 힘의 원리가 대립하던 결빙과 해빙의 싸움에서 해빙이 승리를 하는 따스함에 내 몸에도 기운을 얻는다.입춘이 지나도 봄의 여신은 아직 멀리서 이제 신발을 신은 정도다. 첫 발도 떼기 전인 입춘의 절기에는 해마다 같은 말을 되뇌게 된다. "춘래불사춘" 봄이 왔지만 아직 봄이 아니다. 결빙 속에 움츠렸던 마음에도 얼음의 숨구멍이 토해 내던 쩡하는 소리 같은 것이 언 마음을 가르고 따뜻한 입김이 나온다. 혹독한 겨울..

living note 2025.02.04

좋은날

봄속에도 겨울이 있듯이 겨울 속에도 봄이 있는 그런 날이다. 이렇게 좋은 날은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길게 늘여 쓰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가장 잘 쓰는 것일까? 생각 끝에 이끌려 밖으로 나간다. 맑은 하늘을 끝없이 바라보며 걷고 싶어 물이 있는 수변공원으로 갔더니 너무 좋구나. 맑은 공기, 푸른 하늘, 따스한 온기, 나무랄 데 없는 겨울 속의 봄이다.하늘은 물속에 잠기고 물은 하늘 위를 흐른다. 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하늘에 닿을까.물속의 신기루 같은 그림 속에 잠기고 싶다.하늘을 유명하는 원앙고요히 드넓은 하늘을 담아내고 있는 얕은 하천이 하늘만큼 깊어 보이네.

living note 2025.01.25

겨울 광교산

겨울 기온은 고르지 못해서 날 잡는 것부터가 산행의 시작인데 오늘도 너무 좋은 날을 잡았다. 매번 정해진 날자가 아니라 각자의 여건을 고려해서 이왕이면 다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잡지만 여행철이 되면 꼭 한 명은 빠지는 날이 있다. 그러므로 겨울 동안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싶다.어느 해는 광교산만 가다가 작년에는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연초에 산문을 열었으니 올해는 광교산행이 많을지도 모른다.상현역 3번 출구에서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서 중앙공원 속으로 들어가는데 간밤에 내린 빗물인지 눈 녹은 물인지 나목의 실가지에 은방울이 조롱조롱한 것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이쁜 모습에 벌써 파져든다.편안한 산길이 펼쳐져 있는 광교산 대부분에 눈이 없는데 우리가 가는 길에만 눈이 남아 있는 건 마지 하얀 ..

등산 2025.01.14

2025년 트레킹 스타트(청계산)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사계의 추억은 하얀 백지 같은 눈으로 덮어두고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라는 듯 2025년 첫출발에 산은 고운 눈길을 내주어서 축하받은 기분으로 길을 오른다.트레킹을 이어가다 보면 때로는 험한 코스를 만나기도 하니까 스타트는 산꾼들이 시산제를 올리듯 우리도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청계산 눈길을 걸었다.가끔씩 친구들과 모여 앉아 눈 속에 묻어 두었던 백지장을 들치면 지난날의 추억들이 순서도 없이 다투어 나온다. 그렇다 보니 살아가는 이야기보다 어디서 무엇을 봤고 어디로 가면 무엇이 있는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즐겁다. 누군가와 같은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며 추억을 공유한다는 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며 헌신적이던 의무에서 벗어난 우리들한테는 꼭 필요한 만남의 시간이 되어준다.지금은 산이 품고 ..

등산 2025.01.07

눈내리는 날의 탄천 단상

눈 오는 날의 산책은 더욱 여유롭다.하얀 바탕에 검은 동체 같은 내가 눈길을 걷는다. 동네 한 바뀌 돌아 눈길 걷기에 제격인 수변공원이 있는 탄천으로 나아갔다. 두 손은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스칠 사람도 없는 조용한 길을 걷는데 새로 조성된 탄천 산책길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탄천 물이 흐르고 , 다른 쪽에는 속도를 경쟁하듯 고속도로 위로 차가 흐른다.고속도로와 물줄기는 닮은 점이 있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의 성질은 다르지만 둘은 잠들지 않는 것도 닮았고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것도 닮았는데 경쟁하듯 밤낮없이 흘러서 도달하는 종착지만 다르다. 물길은 바다에 이르는 것이 종착지고 찻길은 인간의 목적지가 종착지다.두 개의 긴 흐름을 따라 걷다 보니 길이 물과 같고, 물이 길과 같다. 두 흐름을 따라 ..

living note 2025.01.05

독야청청의 고집

첫눈이 내리는 걸 보면 절로 하얀 미소가 피어나면서 늘 그것은 서설이라고 생각했다. 기후가 비 뀌고 있다는 징후가 뚜렷한 요즘은 서설이라고 반겼던 첫눈도 한갓 추억일 뿐인가?2024년 첫눈은 서설이 아니라 흉설이 되고 말았다. 집 앞이 마치 한라산눈 같이 쌓였던 첫눈이 아직도 음지에 시커멓게 쌓여있는 산길을 오랜만에 올랐더니 입새부터 소나무들이 허리가 다 꺾어지고 생살이 찢어져 하얗게 드러나 있다. 더러는 길을 막기도 해서 겨우 동강동강 잘랐을 뿐 아직 찢어지고 꺾어진 잔해는 다 치우지도 못하고 널브려져 있었다.강풍이 불어도 흔들리며 피할 수 있는데 짓눌리는 무게는 감당이 안되었던 것 같다. 짓누른다는 것은 숨이 막히는 일이다. 사람이 잠든 사이 숲에서는 얼마나 고통의 아우성이 들렸을까. 여기저기서 괴성..

등산 2025.01.01

한해의 마무리

함께 시작하고 함께 보내는 한 해의 배웅,단단한 우리들의 우정에는 시작과 끝도 함께한다. 그동안 사계절을 보내면서 매 순간 행복했던 조각들을 같이 들춰보는 재미도 함께여서 더욱 실감 나고 재미는 배가 된다. 새싹이 움트는 걸 보면서 시작한 봄날의 자람과 꽃피고 녹음 짙어지는 여름도, 고운 단풍을 보면서 우리도 단풍이야 하며 지나온 시간은 하얀 눈 속에 묻어두고 새로운 추억 쌓기로 곧 첫발을 내디디게 된다. 그런 의미부여를 하면서 우리는 건배를 했다. 우리들의 새로운 시작은 더욱 건강하게.......이른 아침 해가 느린 걸음으로 중천에 이르면 그 시간이 너무 좋은데 머물러주는 법 없이 지나가버리는 하루의 걸음은 너무 빠르다. 그렇듯 한 해도 봄이 오기까지는 차가운 겨울이 지루하지만 봄이 되고부터는 너무 빠..

living note 2024.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