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딸은 아무 소용없다"라는 말을 하신 부모님은 역시 선견지명이 계셨는지 난 아직 아버지 제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런 나를 미리 아셨나 보다.어머니가 손발이 닳토록 치성을 들여 얻으셨다는 우리 오빠, 드라마 주인공 같은 2대독자 "귀남이"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딸들은 "남자는 하늘이다" 라는 말을 진리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것이 각인이 되었는지 결혼해서도 그건 변함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남편에게로 고스란히 전가 되었다.그런 아버지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비가 오는날엔 아버지의 다친 허리가 통증이 심하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잔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철이 없어서 일까 "이이고 허리야" 하는 그 소리를 그냥 매일 듣는 일과성 소리로만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어머니 한테는 후회 없을 정도로 딸 노릇을 한 것 같은데 아버지 한테는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다는 점이 이제와서 이토록 후회가 되는지 ......
아버지는 심한 멀미로 인해 차를 타지 못하셨기 때문에 장시간 차를 타야하는 곳은 되도록 피하시는 편이셨다.대신 어머니는 옛날 노인 치고는 딸네 집이며 여행이며 참 많이 다니셨다. 말년에는 병치레를 많이 하셨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방학 때만 되면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병간호는 시간이 제일 많은 내차지가 되었다.덕분에 교직에 있었던 남편은 방학시간을 나에게 많이 할애 해 주어서 마음 편하게 어머니를 간호 할 수 있었다.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병원 출입도 별로 없으셨고 대체로 잔병은 없는 편이셨다.늘 책 읽기를 좋아하셨고 우리집에는 기둥마다, 섯가래마다, 심지어 천장에까지 빼곡히 주련 같은 한자로 쓰여져 있었다.아버지는 늘 우리에게 명심보감을 들려주셨고 우리는 그 때문인지 형제들이 다 도리를 잘 지키려 애쓰면서 살았으며 오빠는 아직도 전통을 고스란히 지키려 애쓰기 때문에 힘드는 건 올케고 그때문에 가끔 충돌도 생긴다고 하소연이다.`효자의 어버이 섬김은 살아서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함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신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신 때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이 대목이 목에 가시처럼 박혀 영 지워지지 않는다.그런 아버지 께서 훌륭한 본보기를 남기셨다.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 이말은 스피노자가 했지만 우리 아버지께선 몸소 그 말을 실천 하신 분이다.90세가 넘도록 사셨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집 마당 한켠에 감나무 한 그루를 접 붙이기를 해서 심으셨는데 그 광경을 본 어머니는 참 한심한 생각이 드셨는지 기어코 한 말씀 하셨다." 얼마나 더 산다고 인제 그걸 심을꼬" 하시니 아버지께서는 " 내가 죽고나서 이 감으로 곶감을 깎아서 내 제사상에 올리라고 심는다" 그 말을 어머니가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걸 보면 어머니도 말씀을 하고 나서 마음이 찡 하신 모양이다.어느새 감나무는 지붕 위로 쑥 커서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오늘처럼 비가 많이 내리면 아버지의 쉴 새 없이 고단했던 일상처럼 투닥투닥 힘없이 떨어지는 풋감들이 늘어난다. 자꾸 떨어지면 어쩌나 곳감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름 한철 비바람 거센 태풍 몇 차례를 다 이겨내야 얼마나 남을지...........
그래도 모질게 살아남아 곶감이 된다면 아버지 제삿상에 꽃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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