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마음 간수와 업보

반야화 2007. 7. 12. 18:04

살아오면서 마음 간수를 얼마나 잘했나를 생각해 보는 날이다.

마음 간수를 잘 못하여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업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이 혀끝으로 실려오기 전에 혀의 놀림을 잘하는 것이 마음 간수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드러내기 전에는 열 길 물속처럼 깊은 심중이지만, 드러내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 잘 쓰면 비단결이고 잘못 쓰면 칼이 되고 독이 되는 것으로써 함부로 내 둘리지 말고 잘 간수하면 산 사람도 죽일 수 있고 죽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것이 마음 간수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세계는 4차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차원의 세계는 물고기처럼 앞으로만 갈 수 있고

2차원의 세계는 전동차처럼 앞뒤로만 갈 수 있다

3차원의 세계는 앞뒤 상하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자동차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 세계. 

4차원의 세계는  시공을 초월하는 마음의 세계로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이렇듯 자유로운 마음의 세계는 크고 넓고 깊기도 한량없고, 작고 좁고 얇기도 한량없다. 열면 우주도 담을 수 있고, 닫으면 바늘 끝 하나 꽃 을수 없을 만큼  좁아서 그 크기를 잘 조절해서 쓰는 것이 또한 마음 간수라고 할 수 있다. 죄를 지었다고 손을 묶지만 손은 마음에 따랐을 뿐이니 아무리 묶어봐야 소용없다. 요즘처럼 세상이 험난할 때일수록 교과서적으로 마음공부하는 방법을  필수로 교육한다면 손발을 묶는 방법보다 더 효률적이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말로써 천냥 빗도 갚는다고 하듯, 말 한마디 잘해서 선업을 짓고 말 한마디 잘 못해서 악업을 짓기도 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정권교체가 눈앞에 있는 지금이야말로 정치인들이 가장 마음간수를 잘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남을 헐뜯으려는 말 한마디 잘 못하면 그동안의 쌓은 공덕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쌓는 데는 수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마음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말이고 말은 또 혀를 조종한다. 그래서 혀끝이 칼보다 무서워 혀의 힘이 강할 때는 무소불위의 힘도 가질 수 있고 때로는 함부로 놀리는 혀끝에 베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 간수의 결과로 나타나는 업보는 어떤가?

 

나는 개인적으로 업보라는 것이 꼭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은 예를 들면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서부터 생각해 보면 , 그것의 만남은 수억 대의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만한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수억 마리 중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건강하고 가장 똑똑한 놈일 텐데 막상 태어나고 보면 머리가 나쁜 인간, 병약한 인간 더러는 기형으로도 태어나기도 하는 걸 보면 다 전생의 업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개를 싫어하는데 평소에 얌전한 개가 어느 날 느닷없이 사람을 헤칠 때가 있다. 말뚝에 묶여있던 개가 수많은 사람이 지나도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부리는 데, 물리는 사람은 왜 하필 그 일까? 그 순간 개의 눈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전생의 원수가 개의 먹이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개 옆을 스칠 때는 내가 저 개한테 무엇으로 보일까를 생각하게 되어 우선 피하고 본다. 그러므로 주인은 항상 개 간수를 잘하여 돌변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한 가지 흔한 예로 부부는 원수끼리 만난다는 말도 있고 부모 자식 간에도 선연만 있는 게 아니라 악연으로 만날 수도 있다. 요즘 존속살인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것도 업보 때문이다. 부모가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사랑하는 자식을 갑자기 잃을 때일 거다. 어떤 원한 관계로 원수를 갚기 위해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 원수를 부모로 택해서 태어나고 가장 이쁜 재롱을 부릴시기에 너 없으면 나는 못 산다고 할 때에 자식이 일찍 죽어버려 부모의 가슴을 후벼 파듯 아프게 함으로써 원수를 갚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면서 어떤 불행을 만났을 때 떨쳐 내려하면 쉽지도 않고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업보구나, 겪어야 하는구나 생각하고 살다 보면 남을 원망해서 스스로가 악의 소굴로 빠지기보다는 용서함으로써 더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면 자꾸 반복될 뿐이지만 용서를 하고 나면 너그러워지면서 악의 고리를 끊을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 8년을 병상에 있는 남편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업보를 갚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고 그런 눈으로 보니까 이렇게 라도 살아있어서 내 악업을 씻게 해 주는구나 생각하면서 그 속에서 나름대로 행복을 만들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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