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남녀의 위상 변화

반야화 2007. 8. 11. 17:42

세상이 참 많이 변했어. 이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여자의 위상이 점점 높아져 감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인위적이 아니라 우주의 원리에서 비롯된 자연 현상인 것 같다.

 

먼저 역경(주역)을 읽고 나서 터득한 태극의 동. 정에서 살펴보면  현대 이론은 빅뱅으로 인하여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원리이지만, 음양의 이치에서도 태극은  본래 무극에서 운동을 하여 양을 낳고 운동이 극한에 달 하면 멎은 상태가 되어 음을 낳는다. 가만히 멎은 상태가 극한에 이르면 다시 운동이 회복된다. 이같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음양의 운동이 순환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을 볼 때 음양의 순환에서 양의 기운이 점점 커져 극한으로 가는 동안은 남자의 기운도 극한으로 치닫고 남자들의 위상까지 높아지고, 반대로 여자의 기운은 점점 쇠하여지는 주기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현 시기에는 태극의 기운에서 볼 때 양의 기운이 쇠하는 주기고 음의 기운이 극한으로 치닫는 주기가 되어서 아마 여자의 기운과 위상이 높아져 가는 걸로 이해가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이지 어떤 기록이 있는 건 아니다.

 

사회 곳곳에서 여자의 위상에 남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언젠가부터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남자보다 우위에 있는 듯하다. 실력으로 보나 계급체계에서 보나 여자의 지위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남자들이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 남자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점도 간혹 있는 것 같아서 염려되는 부분이 많이 보이는 건 걱정이다. 교육적인 면에서는 남자 교사가 부족해서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여성화되어 가는 것 같고 청년기에 와서도 외모나 취향까지 남자들이 점점 여성화되어 가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여자들의 선호도도 변해가고 있다. 옛날에는 남자는 남자다워서 살색은 구릿빛이어야 하고 외모는 못생겨도 남성미가 매력이었다면 요즘은 꽃미남이라고 해서 예쁘게 생기고 피부도 하얗고 성격까지 온순한 여성다운 남자를 선호하는 세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기죽거나 억지로 여성스럽게 변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음의 기운이 쇠하여서  극한으로 가면 다시 양의 기운이 살아나고 하면 다시 그 위상도 따라 올라갈 테 나까 남자들이 더노력해서 위상을 되찾거나 양의 주기가 올 때까지 참아야 세상이 시끄럽지 않고 순리대로 흐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연의 섭리를 억지로 역행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한편 거슬러서 생각해보면 우리 할머니 어머니 세대에는 그야말로 여자는 사람 취급도 못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식 취급도 못 받은 때였다. 쉬운 예로 칠거지악 이란 악법을 만든 것에서부터 남자는 재혼을 할 때도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처녀장가를 들었고 여자는 선택의 길조차 없었다. 더 기가 막히는 건 소박을 맞고 나면 길거리 서낭당에서 기다리다가 처음으로 지나가는 남자를 곰보 거나 째보 거나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풍습도 있었지 않느냐. 우리 여자들이 얼마나 박해받고 얼마나 억울하게 당하면서 살았지 않느냐. 그런 걸 보면 요즘은 반대로 여자가 재혼을 할 때에 아이들이 있어도 총 각하고 결혼하고 연하의 남자와 결혼하는 일들이 사건처럼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우주의 주기가, 이론이 아니라 분명히 실행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초등학교 반편성부터 남 여 합반을 싫어한다고 한다. 여자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해서 남자아이들이 성적에서 손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로 남 녀 합반일 경우 성적에서 밀린다고 한다. 구태여 합반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인 시험인 수능시험에서도 상위권에 여학생이 늘어나고 각종 고시에서도 여성 합격자가 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론 남녀의 차별이 분명했으면 좋겠고 분별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딸만 둘인 나로서는 참 다행한 세상이다라고 안도하는 편이다. 남자들이여! 힘을 내라, 기죽지 말라, 하늘이 높고 땅이 낮다는 이치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것만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은 양의 회복을 위하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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