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고향 산천

반야화 2007. 11. 8. 12:22

어느새 오늘이 입동이다. 해마다 맞이하고 보내고 순환하는 계절이지만 그  계절이 내게 어떤 빛깔을 남기고 가느냐에 따라서 다시없는 날들로 기억되곤 한다.

 

나에게 있어 올 가을은 지나온 숱한 가을 중에서도 오래도록 기억 속에 묻어두고 싶은 행복한 가을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그동안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없이 살아온 것 같다. 만약에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얼마나 발버둥치며 원망하며 살았을까. 내가 선택한 사람에 대한 내 자리니까 그 책임을 다하고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오직 그 마음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많이 져버리기도 했고 주위를 돌아볼 마음을 쓰지 못한 채 덧없는 세월에 편승해 친구도 모르고 살아왔던 세월이었다.

 

올 가을이 떠나가는 막차에 난 얼마나 행복한 여행을 했는지,늘 꿈에서만 만나던 고향 친구를  고향에서 만나기로 하고 며칠 동안 설레는 맘으로 기다리고 전날에는 잠조차 이루지 못하고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향해 차보다 마음의 속도를 더 내면서 질주해 갔다. 30년을 뿔뿔이 흩어져 소식도 모른 체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연락이 닿아서 꿈같은 상봉을 한 셈이다.

 

많이 변해서 몰라볼까 생각했었는데 다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만나자마자 그동안의 세월의 무게 같은 건 차디찬 갈바람에 날려 버리고 소녀적 시절로 금방 돌아갈 수 있었다. 참석 못한 친구가 있어 아쉬웠지만 이제 길을 열어 두었으니 만남은 어렵지 않겠지. 알고 보니 다 거리가 지척인 것을 그렇게 긴 세월 동안 못 본 체 지내왔다는 것이 참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반나절을 그동안의 쌓였던 얘기꽃으로 보내고 고향마을 한 바꾸기를 돌아서 남자친구가 가장 경치 좋다는 곳을 드라이브를 시켜 주었는데 고향에 살 때도 몰랐는데 내 고향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길안천을 끼고 상류를 향해 청송으로 가는 길이 양 옆으로 펼쳐져 있는 산에 단풍이 곱게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산 자체가 빼어나고 내 눈엔 금강산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몇십 년 만의 귀향길이 즐거운 비명으로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도시에서 빌딩 사이로 조각난 하늘만 보다가 고향하늘을 보니 시야를 어지럽히는 막힘이 없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 하늘은 또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차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들을 마구 찍으면서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지만 제대로 된 사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출향 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계획으로 다음날을 약속해 두고 나 혼자 사정상 밤차로 돌아오고 몇몇 친구들은 하루를 고향에서 보내고 갔다. 우리가 하루동안이라도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을 지키고 있는 믿음직한 고향 선 후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아 행복했지?

우리 또다시 만나자.그리고 건강해야 돼.

 

 

 

 밑에 글은 오랜만에 고향친구를 만난다는 말을 듣고 상상하면서 친구가 쓴 글

***

친구들 만남에서 꽉 채워져 있습니다. 반가움의 열기로 시끄럽고 요란스러워도 탓하는 이 아무도 없고 목소리가 커도 어깨 건들림에 손놀림이 있어도 모두의 공통 적인 건 고개 젖힌 웃음소리 하하하~허허허

농 짙은 몇 마디에 박장대소할 적엔 눈가에 웃음 번진 눈썹이 크게 기울고 한껏 벌어진 입 속으로 목젖이 보이게 웃어도 정겹고 잘 차려진 커다란 식탁 위 수저가 오가고 냄새가 피어나고 각색의 음식들 바지런히 먹으면서 얘기 담긴 구수한 맛에 자꾸 수저가 간다. 놓을 자리 없이 채워졌던 삶의 종지와 접시들 하나 둘 비워져 가고 복잡하던 일상들이 웃음소리에 좋은 기억 더듬어 쏟아 내는 큰 목소리에 희석되어 비워져 버린다. 묵은 세월만큼 진한 우정과 몇 잔의 술기운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고 온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