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4

남한산성 성곽 둘레길

가을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었어. 유례없는 더위를 오래 겪으면서 가을이 아예 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오래 기다렸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역시 가을은 푸른 창공 저 넘어 이디엔가 침묵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가봐. 봄은 땅에서 솟아나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린다고 생각되는 건 하늘이 먼저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더 높아 보이고 더 푸르고 금빛이 쏟아지면 가을이 오는 징조가 된다. 봄은 언 땅이 녹으면서 생명이 솟구치고 나무들은 눈 녹은 땅에서 습기를 힘차게 길어 올리며 눈을 뜨고 좀 더 상쾌한 봄기운을 느끼게 된다. 늦게 온 가을은 분명 짧아질텐데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고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늘어선다. 머무는 시간보다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을을 쫓아다녀야지 다짐하며 높..

등산 2024.09.26

상사화의 계절

2024년의 여름은 기록할만하다. 한 달간의 장마, 한 달 반의 혹서, 이 엄청난 날들을 이겨내고도 제철을 잊지 않고 곱게 피어난 꽃무릇과 상사화는 꼭 봐야 한다. 그동안 붉은 물감의 바탕을 이루는 거대한 군락지인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울산 대왕암공원에서 무척 잘 봤는데 남쪽지방이 생육조건이 좋은건지 아래지방에서 많이 본 셈이다. 그 붉은 꽃무리 속으로 들어가면 내 얼굴도 붉게 물들어 가는듯했다. 그렇다고 해마다 그곳을 찾지는 않는다. 가장 싱싱하고 화려할 때 봤던 고운 모습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같은 장소라고 언제나 같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기억에 흠집을 내고 싶지가 않다. 그 기억을 고이 간직하고 보고 싶을 때 나의 기록을 찾아보면 된다. 올해는 하얀 꽃무릇이 있다고 해서 찾아..

living note 2024.09.20

자연학교 개학날

우리들은 같은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며 생의 후반기를 자연학교에서 배우고 지혜를 얻고 있는 학생들이다. 우리의 교정은 끝이 없다. 선생님은 너무 많지만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말없이 가만히 보여주기만 하고 우리는 그 모습에서 관찰하고 즐기다 보면 절로 알아지는 지혜가 생기게 되는 무위의 진리를 배워가는 학생들이다. 대신 졸업은 언제든 할 수도 있지만 영원히 안 할 수도 있다. 생이 끝나도 그곳, 자연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래서 더욱 자연과 가까워지고 친해져야 언젠가는 오고야 말 끝이란 게 두렵지 않게 된다. 인생 전반기는 교육으로 지식을 얻었고 후반기는 우리처럼 자연에서 진리와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가장 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꽃을 보면 이름을 알고 싶고 이름을 알고 나면 더욱 친해지고 이뻐..

등산 202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