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었어. 유례없는 더위를 오래 겪으면서 가을이 아예 없어진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오래 기다렸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역시 가을은 푸른 창공 저 넘어 이디엔가 침묵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가봐. 봄은 땅에서 솟아나고 가을은 하늘에서 내린다고 생각되는 건 하늘이 먼저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더 높아 보이고 더 푸르고 금빛이 쏟아지면 가을이 오는 징조가 된다. 봄은 언 땅이 녹으면서 생명이 솟구치고 나무들은 눈 녹은 땅에서 습기를 힘차게 길어 올리며 눈을 뜨고 좀 더 상쾌한 봄기운을 느끼게 된다. 늦게 온 가을은 분명 짧아질텐데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고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늘어선다. 머무는 시간보다 움직이는 시간이 더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을을 쫓아다녀야지 다짐하며 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