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사계

한라산 관음사코스

반야화 2014. 5. 9. 16:26

제주 둘째 날, 전 날 한라산에 비가 100m가 왔다는 말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사라오름과 백록담에 물이 차 있을 것 같고 하늘도 맑고 푸르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냐 싶어서다. 더불어 이른 감이 있지만 진달래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동안 한라산 다른 코스는 갔었지만 관음사코스를 못 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성판악에서 출발해서 관음사코스로 하산하는 게 목표다. 한라산은 거의 눈 산행을 했고 봄에 가는 건 처음인데 참 다르더라. 눈 속에 묻혀 볼 수 없었던 울퉁불퉁하고 뾰족한 검은 돌들이 제멋데로 박힌 길이 뜻하지 않아도 느리게 걸을 수밖에 없었다. 돌계단 나무계단을 번갈아 오르는데 눈이 들어찼을 땐 얼마나 편하게 걸었는데 이게 뭐야? 발만 보고 걸어야잖아,

 

산 입구에는 나뭇잎이 푸른빛이 도는데 중턱을 넘어서니까 나무들은 아직도 선잠을 깨지 못하고 있다. 2시간 반 정도 걸려서 진달래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진달래는 생각했던 데로 이제 피기 시작했고 그 겨울에 발 디딜 틈조차 없던 휴게소 안은 한산 했고 컵라면에 부어질 물은 펄펄 끓기만 하고 라면은 빵빵한 공기를 가득 담고 터질 듯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간식을 가져갔지만 탄수화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체력이 떨어질 것 같아 라면에 맹물을 부어서 면을 불리고 다시 물을 따러 내고 손에 들고 한참을 오르다가 보온병에 있는 물을 붓고 수프를 풀었더니 뭐 좀 이상하지만 바다와 해무를 바라보는 워낙 좋은 밥상을 차지했으므로 라면 맛이야 어떻든 풍경을 반찬삼아 잘 먹었다.

 

백록담은 언제나 가난하다. 긴긴 장마철 물난리가 나도 백록담은 솥이 커서인지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는 가난한 솥이다. 전 날에 온 그 많은 비는 어디로 다 빠지고 겨우 한 귀퉁이에 산짐승들이 목을 축일만큼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앞서 사라오름에는 그래도 물이 밑바닥을 채우고 있어 내 목마름은 거기서 해갈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내일이면 오월인데 백록담엔 아직도 얼을이 붙어 있는 걸 보면 봄의 기운이 약해 겨울의 여운을 다 밀어내지 못하나 보다.

 

백록담에서 보는 바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바다의 운치다. 물과 구름이 층을 이루고 둥글게 보이는 수평선은 마치 토성의 고리 모양이다. 그래서 난 잠시 토성에 승선한 우주인이 되어 지구인 제주를 조망하는 꿈을 꾸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춘몽 속에 놀다가 관음사 쪽으로 하산하는데 한라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다소 길은 지루하고 불편하지만 색다를 풍경을 보는 재미에 지치지 않고 내려갈 수 있는 코스다. 여름엔 탐라계곡이 참 좋다 하더니 지금은 물은 말랐고 검은 돌들만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이 역시 가난함이다.

 

살필 것이 많은 초행의 코스를 돌아 돌아보면서 한참을 내려가니 삼각봉 대피소가 나오는데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더니 예상도 못한 능선 끝자락이 삼각으로 우뚝하니 압도적이었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하산한다면 아마도 삼각봉이 어디 있냐고 할 뻔했다. 그건 위치 때문이었다. 능선이 거기서 딱 끝나는 지점의 모서리가 그렇게 보이는 신기함이었다. 삼각봉을 지나면 조금 지루함이 느껴지지만 쭉쭉 뻗은 적송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그나마 향도 좋고 걷는 재미도 주어서 다행이었다.

 

어느덧 관음사 야영장까지 내려왔다. 야영장이 여름에 계곡에 물이 풍부하고 숲이 짙어지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3,000원이면 하룻밤 야영을 하고 새벽에 산을 오를 수 있으니 한 번쯤 즐겨볼 만한 곳이었다. 다만 대중교통은 주말에만 통행이 가능해서 난 날씨도 좋고 풍경도 좋아서 걸었더니 40분 정도면 되겠지 싶었는데 자꾸만 뒤돌아 보는 재미에 빠져 한 시간을 걸은 것 같았다. 남에게 권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나니깐 가능한 거야. 이제 한라산 코스는 다 가 본 것이네, 앞으로는 무리하지 않고 사라오름까지만 가야겠다.

 

 

 

 

사라오름에 물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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