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기 첫날,
한 치 앞을 모르는 미혹한 중생의 생을 살면서 어떤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D데이에 다가가는 마음 졸임, 최상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는 건 행운에 맡길 수밖에.......
이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기간에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내내 눈은 예보도 없었으니 진행하시는 여러분의 마음이 멋진 그날이 되길 얼마나 간절했을지 짐작이 간다. 동참하는 우리들의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 그럴 때는 내 마음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눈이 없으면 날씨라도 투명하게 밝기를 바랐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세가 만든 잘못이지 하늘의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청허 한 마음가짐으로 백담사로 향했다.
백담사 수심교를 지나면서 보면 언제나 한결같은 돌탑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는 좋은 날이 되기를 기원하는 탑은 없었는지 뿌연 먼지 속의 수심교를 지나면서 먼지 묻은 속마음은 백담계곡 얼음장 밑으로 흘려보내고 부질없는 바람들은 다 말갛게 닦아서 경내로 들어가라는 뜻이 있는 다리인 수심교를 건넜다. 경내로 들어가는 금강문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입차 문래 막 존 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의 뜻에 따르는, 세속의 지식으로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는 은연중에도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부처의 길,깨달음의 길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스스로 깨달 을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것, 화두를 지니고 참선의 삼매경에 들어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얻을까 말까 한 그런 경지다. 그냥 금강문을 쑥 들어가는 것보다는 한 번쯤 생각만 해도 업장 한 꺼풀은 벗어지지 않을까 생각되는 경건함이 생긴다.
공짜 밥이 어디 있겠는가, 밥값을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템플스테이 체험이다. 그만큼 한 사람이라도 부처가 무엇인지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싶은 불심으로 대하는 뜻이 너무 감사한 일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한 번 들으니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님의 해설을 듣고 공양간으로 가서 정갈한 점심을 얻어먹고 나오는데 왠지 뒤통수가 당겨지는 느낌이 든다. 벽에 쓰여 있는 문구 "이 밥이 어디서 왔는지...."그것 하나라도 잠시 생각했다면 밥값을 한 것인데, 몇 명이나 그 글귀를 눈여겨봤을까, 커피까지 보시하는 감사한 마음은 공양간을 빠져나오는 순간 다 잊고 일정표에 따라 얼을 위를 걸어가는 아이스트 레킹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백담사에 갈 때마다 궁금증을 유발했던 일이 이번에 스님의 말씀을 듣고 해소가 되었다."백담계곡의 돌탑은 여름 장마를 지나고도 그대로 있을까, 아니면 새로 쌓은 걸까, "드디어 생각했던 데로 새로 쌓은 거란 걸 알았다. 장마에 다 쓸려간 돌탑은 다시 쌓여도 같은 모습이다."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도 있건만 물살이 탑을 무너뜨린 것이 야속해 보이지만 그건 어떤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다른 이의 소원을 새로 들어주기 위함인 것 갔고, 다음 장마철까지 탑이 건재한 것은 물의 본성이 하심이므로 중간에 자갈을 실어다가 탑터를 북돋아 주고 가장자리로 물길을 내어 탑을 건드리지 않고 더 많은 기원이 쌓이기를 바라면서 흐르는 하심의 본성을 보여주는 "저것이 따뜻한 백담사의 자애로운 손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아서 아쉬운 아이스트 레킹이 끝나고 우리는 영시암을 향해 백담계곡을 트레킹 하는데 좋다, 멋지다, 아름답다, 화려하다, 행복하다 등등 숱한 수식어들을 겨울바람이 다 지워버리고 그 많던 수식어들을 바닥에 깔아서 거름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직 날카로운 송침을 드러내고 시퍼렇게 서 있는 적송들만이 멋지다는 수식어를 독차지하고 주인공처럼 서 있었다. 계곡에는 모든 게 하얗게 정지된 듯 두꺼운 얼음이 숨을 쉬면서 금을 내어 둔 하얀 선들은 쩡쩡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끝 지점인 영시암에서 간식과 커피를 마시고 같은 길을 되돌아오는데 겨울가뭄이 심각하다. 먼지가 심하게 푸석이고 바짓단은 흙투성이다. 땅이라도 촉촉하다면 화려하던 백담계곡의 가을을 생각하면서 걸어도 무척 좋았을 텐데, 다행히 오후에는 공기가 한결 맑아진 느낌이다. 내일은 더 좋은 공기를 기대하면서 첫날 일정을 마친다. 2019.1.19일 반 야화 씀
백담사 법회 영상
일일 템플스테이 체험
무설전
공양간
사랑은 얼음도 녹인다.
가을의 잔존
벽을 가려놓은 모습에서 제주의 들판이 연상
영시암 종루
종루에 있는 사물,대종, 법고, 목어, 운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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