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입동의 절기도 지났지만 겨울을 여는 손길은 대청호에서 문고리를 잡고 주저주저하고 있다. 너무도 곱고 붉은 화장기를 밀쳐내고 가을 속에다 쉬이 겨울의 영역을 확대하지 못한다. 그러기엔 남아 있는 가을의 뒤태가 너무 고와서 시커먼 겨울의 손이 들어서기엔 수채화에 먹물을 끼얹는 격이 된다는 걸 겨울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을과 겨울의 경계는 세우지 않은 채 다만 서로 만나서 악수하는 그런 순간이 있을 뿐이다.
설악에서 맞이한 가을을 대청호에서 배웅을 하는 날이다.어쩌면 내 내면의 바다에서 일어났던 파도를 잠재우고 가을이 떠났는지도 모른다. 여름내 잠잠하던 마음의 바다는 구월부터 파도가 일더니 마음 밖으로 물결이 밀려 나와 부단히 안과 밖을 쫓아다녔다. 이제 파도는 다시 내면으로 스며들고 5개월간의 길고 깊은 心淵에서 침잠할 때다. 5개월, 겨울, 무엇으로 그 시간을 헛되지 않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봄을 기다리며 설렘을 주기엔 시간이 너무 길다. 설렘이란 어떤 날을 받아놓고 다가가면서 기다리는 짧은 순간의 두근거림인데 그런 순간은 너무 멀리에 있어 차라리 혹한일지라도 눈꽃을 기다려보련다.
가을을 배웅하는 장소,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라는 이미지는 지우고 대청호의 호반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해서 처음으로 가는 길이다.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맞이하고 함께 배웅하는 마음이 꼭 닮아 있는 세사람, 우리는 어디서든 자연을 대하는 느낌이나 그것을 즐길 줄 아는 감성이 일치하기에 세간의 수치인 나이의 격차같은 건 없어서 좋다.혼자 어떤 아름다움을 대하면 생각나는 그 사람,우리는 이미 서로에게 그런 사람들이다. 삶이란 나의 한계에 다다르는 것인데 "더 이상, 그 넘어"라는 것이 없는 것이 한계인데 한계의 중반을 훌쩍 넘기고도 이토록 서로의 한계를 빛내주면서 다다르는 길동무가 있다는 건 어쩌면 큰 감동이라고도 할만한 소중함이란 걸 안다. 홀로 슬픈 한계점에 도달해야 한다면 너무 비참함이다. 대청호의 길을 열어보자.
청주시 문의면에 있는 청남대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고 셔틀 같은 시내버스로 환승해서 들어가는데 입구에서부터 대청호 물길이 보인다. 2차선 좁은 찻길에서 늦가을의 풍경 속으로 굽이굽이 들어가는데 마치 한컷도 맘 아내지 못하는 파노라마 필름에만 새겨지는 풍경화에 있는 것 같다. 약 15분간의 긴 필름 속에서 땅으로 내려서는 순간 어디서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을 준다. 일단 대통령 기념관 내부를 관람하고 나와서 노태우 대통령 길로 들어서서 호반 산책길을 거의 다 돌아서 김대중 대통령길에 있는 1 전망대에서 2 전망대로 가지 않고 하산했다. 누구의 길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길은 거의 같은 모양이고 꽃이 지고 없으니 숲 속의 식구들은 다 보지 못한 채 가을빛만 담고 있는 비슷한 풍경들을 보면서 약 8길로를 걸었다. 좁다란 호반길은 명패만 남은 꽃 진 흔적과 이미 떨어진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고운 빛이 더욱 선명한 단풍길을 도란도란 가는데 너무 이쁘다. 여러 길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길은 등산로로 되어 있고 야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서 대청호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좀 특별했다. 전망대에서 보는 대청호의 조망은 육지 속의 다도해 같았다. 날씨가 맑지 못해서 아쉬운 대로 멀리 대전의 마천루까지 보이고 대청댐과 야산들 사이를 들락날락하는 물길이 마치 섬을 이어놓은 다도해 풍경 같아서 무척 아름다웠다.
대청호의 조감도를 보면 산들이 흘러내린 줄기가 마치 커다란 발을 대청호에 담그고 있는 형상이고 호반 산책길은 발가락을 다 돌아나가서 발등에서 끝나면 주차장이 있어 차를 타고 나오는 여정이 된다. 사계절의 절대미를 감싸 안은 대청호의 비경을 그동안 절대 권력자들만이 즐기던 것을 일반에게 공개한 것은 그나마 애민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청주의 소득원이 되는 큰 제산이 되어서 누구든 찾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나누어 가진 느낌이다. 난 전체를 돌아보면서 터키에 있는 대통령 여름 별장이 생각났다.
바닷가에 있는 베일레 르베이 궁전인데 돌마바흐체 궁전의 축소판이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프랑스 왕비의 수모를 잊게 했을지 알 만한 곳이다."프랑스 왕비 으제니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 술탄의 팔짱을 끼고 궁전으로 들어 왔는데 이것을 본 술탄 어머니가,감히 술탄의 팔장을 끼고 하렘의 여인들 앞을 지나다니 하면서 그녀의 빰을 때렸다고 한다. 그러나 궁전 안으로 들어간 왕비는 궁전 내부의 아름다움에 반해 분개함도 잊은 채 파리로 돌아가 그녀의 왕실을 베일레 르베이와 똑같이 꾸몄다고 한다." 이 비교만으로도 청남대의 아름다운 풍경의 설명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부의 화려함은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바깥 풍경만은 터키의 그것과 견줄만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더 나은지도 모른다. 사계절의 특색을 다 보고 싶은 곳이다. 특별한 사람의 것에서 우리 모두의 것이 된 풍경을 다시 글로써 그려보기를 원하며 가을을 담아둔다.
스탬프도 있어서 구간마다 도장을 찍는다.
남북통일을 이루자며....
은행나무에 달린 감
모과나무
전망대에서 보는 대청호 풍경
멀리 대전시의 마천루
단풍주에 취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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