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2018.11.4일,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반야화 2018. 11. 5. 13:16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

가끔 국가대항 스포츠가 열리면 축구든 야구든 경기를 보지만 그 외는 별로 보지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야구의 룰도 모르고 더구나 구장에 직접 나가서 본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그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꼼짝 않고 4시간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쩔 수 없어서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루하지도 않았다는 게 어느 팀의 우승보다도 나에게는 더 큰 이변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11월 2일 금요일, 두산은 일찌감치 한국시리즈에 나갈 결승전 티켓을 거머쥐고 상대가 누가 될지를 관망하는 중에 있고 다른 한 팀이 올라가는 SK와 넥센의 5차전 경기가 열리던 날 자정까지 잠을 자지 않고 끝까지 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작은딸의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준 경기 티켓 교환권을 받아서 결승전 진출이 되면 본 티켓으로 교환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뿐 아니라 한국시리즈 티켓은 구매가 너무 어려워서 경기장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하고 티켓 한 장에 45000원이나 한다니 sk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보는 중에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두 팀이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연장전까지 갔는데 연장전에서 넥센이 먼저 1점을 내서 실망하고 있는데 sk반격이 시작되고 첫 주자가 첫방에 홈런을 쳐버렸다. 그때 우리 집은 가자! 하는 소리가 동시에 터졌고 그다음에 두 번째 타자가 들어와서 이번에는 멋진 굿바이 홈런을 쳐버렸다. 이건 내가 야구장에 4시간을 앉아 있는 것 같은 이변 같았다. 흔히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에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족은 나 빼고 다 두산팬이다.

간밤에 잠을 설치고 새벽부터 준비해서 첫차로 구미에 결혼식이 있어서 다녀왔다. 그리고 야구장에서 4시간 보내고 저녁 먹고 들어오니 밤중이다. 내일은 또 산행 일정이 있는데 아직은 촘촘한 일정들을 다 소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고 내 몸을 잘 대접을 해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끝까지 잘 동행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몸이 피곤하면 잠을 잘 자기 때문에 간밤에 단잠을 잤다. 그리고 다른 휴일보다 일찍 일어나 야구장 가는 길에 작은 딸을 픽업해서 잠실구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2시에 경기 시작인데 선수들의 몸 푸는 것도 본다며 일찍 들어가서 직원들의 좌석이 마련된 네이비색 좌석에 앉아 있으니 온통 sk를 응원할 야구팬들이 자리를 메워가고 앞 줄에도 직원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한국시리즈 개막전 풍경이다.

앞으로 5차전까지 열리지만 두산의 홈구장인 잠실에서 개막전을 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건만 된다면 경기는 5차전까지 계속 볼 수도 있지만 평일은 딸들이 시간이 안되고 인천까지는 가기도 힘들고 어쩌면 이번이 내가 현장에서 보는 처음이자 마지막 야구 구경이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사람은 인산인해고 날씨는 따뜻하고 경기장 바깥 풍경은 가을이 무르익어서 단풍도 구경거리에 한 몫하고 있었다. 긴 줄을 서지 않고 곧바로 티켓을 교환해서 들어가니 마침 그늘이어서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볕이 뜨거웠다. 차츰 자리는 다 사람으로 채워지고 양 팀 선수들이 입장한 뒤 대형 깃발이 펼쳐지는 순간 뭔가 벅찬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어느 팀이 이겨도 상관없으니 마음은 편한데 가족들은 두산이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마치 적진 같은 남의 팀 한가운데 앉아서 반대쪽 두산을 응원해야 하니 상하좌우의 흥분된 sk팬들의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두산이 점수를 내자 눈치 같은 건 사라지고 가족들의 응원소리가 높아지는 함성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솔직히 난 경기보다 응원하는 두 팀의 분위기와 그 열기를 더 보고 싶었고 그 속에서 처음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우리는 응원도구인 막대풍선을 받고서도 딸들이 커내지도 못하게 해서 지금도 방안에 포장 채 뒹굴고 있다.

 

경기가 무르익고 sk가 먼저 점수를 내자 옆에서 실망한 딸이 고개를 내 어깨에 떨구는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두산쪽으로 기울었는데 중간에 두산이 3점을 내긴 했지만 오래 쉬어서인지 두산은 몇 번의 아까운 기회를 놓치고 결국 sk가 이겼다. 다음에 더 잘하겠지라는 위로가 되지 않을 위로를 하고 나는 응원의 열기와 재미만 느끼는 중이었다. 응원 숫자는 두산의 홈구장이어서인지 두산이 훨씬 많았지만 적진인 sk속에 있으니 응원소리는 sk가 더 큰 것으로 들렸다. 가만히 지켜보니 응원에도 어떤 패턴이 있고 선수에 따른 응원구호는 별도로 있었다. 모두가 힘들어 보였다. 치어리더도 응원단장도 선수들도, 그리고 그 많은 인파들이 아주 질서 정연하고 응원단장의 구호와 몸짓을 한 몸처럼 잘 따르고 움직이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신기했다. 경기가 막바지에 접어들자 어느새 석양이 물들고 라이트가 껴지고 한낮에 빛 때문에 속도가 빠른 공이 보이지도 않다가 해 그늘이 지자 공의 움직임도 보이고 더욱 좋았는데 두산의 경기는 풀리지 않았다. "인생은 한방이라잖아"또 어떤 기적 같은 한 방이 터질지 모르니 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나 출입구에 서서 마지막을 지켜보았지만 홈런을 쳐봤자 나가 있는 주자가 없으니 역전의 가능성이 없어 우리는 일찍이 나와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경기장 안에서 이긴 자들의 함성은 끝나지 않았고 끝까지 선수들과 행복한 순간을 만들고 있을 모습들이 그려졌다. 언제 한번 우리도 이긴 자들의 행복한 마무리 속에 있어 봤으면 좋겠다. 딸들, 실망 히지 마 경기는 또 열리고 있으니 두산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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