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경주에 가면......

반야화 2018. 8. 29. 13:10

유난히 별이 그리운 날 경주로 간다. 나만 볼 수 있는 별.

일 년에 한 번 별과의 랑데부를 하는 날이다. 한여름 우란분절의 밤하늘은 유난히 감청색이어서 그 별이 타고 온 구름 베끼지 선명한 채로 옆에 두고 우리는 랑데부를 한다. 해가 지고 옅어진 밝음 속으로 어둠이 스며들 때쯤 선도산 검푸른 나뭇잎 사이로 조명 같은 보름달이 차오르고 감청색 푸른 하늘 바탕에 창백하리만치 하얀 달은 내가 서 있는 금선사 종각과의 직선거리에서 나와 별 사이를 밝혀준다. 그리고는 슬며시 달이 비켜주면 수많은 별들 중에서 나만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별과 우리는 밀회를 즐긴다. 마치 지척 인양 그렇게 만나면 입 속에서 말라버린 말들이 부스러기처럼 다 날아가고 오직 또렷한 추억만을 마주 보며 닿지 못하는 손짓을 하는 애달픔만 남겨진다. 달이 주선해준 별과의 밀회를 별만 두고 차마 돌아설 수 없는 시선을 거둘 수밖에 없어 나머지는 꿈속으로 이끌어봐야겠다.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까지 이어진다.비를 기다리다 하늘을 원망하던 경주 땅을 깊이깊이 적시면서 휘이지도 않고 최상 꽂이듯이 곤두박질처럼 대지로 쏟아진다. 비를 기다리다 지친 경주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 재미있다."비가 오 다기도 앗, 경주다 돌아가자"라고 한다나, 그러나 오늘은 과유불급이 될지도 모를 비가 이틀 째 긴 빗줄기는 끊어지지도 않는다. 다행히 어제 오후에 잠시 첨성대 일대를 돌아본 것이 참 잘한 일 같다. 그곳에 가면 계절마다 다른 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넓은 대지가 마치 전시장처럼, 도화지에 가득 담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번에는 꽃 진 연밭과 노란 코스모스, 알록달록 백일홍, 배롱나무꽃, 조롱박 그 외 여러 가지 꽃들이 늦여름의 정취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꽃밭 둘레에는 반월성이 울타리처럼 짓 푸르게 둘러치고 산 같은 왕릉들은 초록빛을 더하여 일대가 거대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사계절이 아름다운 곳이어서 갈 때마다 나를 불러 세운다. 내친김에 분황사와 빈터에 주춧돌만 옛 영화를 잊지 않고 푸르고 넓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옛터를 찾았더니 호국 불은 간데없고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있어 한 시절의 야단법석은 고요만이 푸르게 깔려 있었다. 언젠가 다시 야단법석(야외법회를 여는 법당)이 열릴 당간지주에 내 기원 하나 걸어두고 왔다.

 

 큰비가 잦아들 즘 나는 넓은 우산을 쓰고 발목 위로 바지를 걷어부친 채 슬리퍼를 끌면서 절 한 바퀴를 도는데 내리막 길 위로 빗물이 얉으막한 여울까지 지으면서 강물처럼 흐른다. 잠시 손으로 막아보니 손등을 타고 흐른다. 어느 고을, 어느 산촌, 이름 없는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빗물은 흐름의 지도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도 강으로 가는 여정을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실핏줄 같은 길을 돌고 돌며 강을 찾아가는 물길을 걸으며 물의 숙명을 만지고 이름 없는 강을 만진다. 강 또한 바다로 가는 길을 얼마나 많이 돌고 돌애야 가는지 알고 흐르는 기나긴 여정을 찰방찰방 만져주면서 잠시 친구가 되어 보았다. 혼자서 말갛게 씻겨진 산길 모퉁이를 돌면서 호젓한 기분에 젖어드는 그 한가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꼭 움켜쥐고 놓고 싶지 않았다.

 

경주로 달려가는 차창 밖 풍경

금선사 위로 달이 떠오르는 초저녁

 

 

 

 

한 방울의 물이 담고 있는 잎만 무성한 연밭의 동그라미 세상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나가지도 못하는 시간에 즐기는 비를 아주 가까이서

즐기는 참 여유로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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