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한양도성길(인왕산구간)

반야화 2018. 5. 8. 17:59

지난 늦가을에 걷다가 중단된 한양도성길을 이어서 걷다.(사직공원에서 혜화문까지)

 

수도권의 성길은 다 걸었다. 북한산성 14문 종주, 수원화성, 남한산성, 한양도성길을 걸음으로써 성길완주를 했다. 성마다 다 특색이 있지만 아름답다는 게 공통적이다. 어느 것이 더 좋았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복원된 성길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 이면에는 선조님들의 피와 땀이 배어져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아끼고 사랑하면서 걸을 때마다 한 번이라도 그 시대를 생각해봐야 한다.

 

성 안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다.무덤이 없다. 아무리 성군이라도 돌아가시면 성 밖으로 나가야 했고 성을 쌓다가 사망하면 다 시구문으로 나가야 했다. 한양도성 축성 당시 한양 인구가 10만 명 정도였는데 축성 공사에 동원된 인구가 19만 7400명이 되었다고 하니 전국에서 동원되었으며 최장기간 도성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1396~1910년, 514년간)그리고 세종 4년에 개축할 때에는 32만 2460명이나 동원되었는데 그중에 사망자가 872명이었다니 그분들이 시구문으로 실려 나오는 장면이 떠올라 무척 마음이 아팠다. 숙종 때부터는 군인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한양도성 길을 처음 시작할 때는 여름 달밤에 걷는 달빛기행이었고 그 후 밤에 걸었던 성길이 너무 좋아서 가을에 남산구간을 이어 걷다가 중단되었는데 이번에 가장 좋은 때를 기다렸다가 완주를 했다. 달밤에 낙산구간인 좌청룡 길을 걸었고 이번엔 인왕산 구간인 우백호 길을 걸은셈이다. 종로 사직공원 담벼락 길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전에도 인왕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성 밖에 있는 선바위와 국사당을 보고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번에 제대로 성길을 따라 걸었다.

 

난 왜 성길 투어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전생에 궁녀였을지도 모르지. 아니야, 궁녀는 결코 성을 좋아하지 않았을 거야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감옥 같았을 테니까. 아무튼 시대를 아우르는 조각조각 성돌의 퍼즐이 너무 정겹고 아름다워서 온 마음 다 빼앗기는데 가장 좋은 계절 오월에 좋은 사람들과 호젓이 아름다운 길을 산책하는 날, 우리는 행복에 겨웠다. 성곽은 안쪽보다는 바깥쪽으로 걸어야 성체를 볼 수 있어서 좋다. 안쪽은 여장만 보이지만 바깥을 걸으면 몇 시대를 조금씩 다 걸어보는 시간여행이 되고 그 아름다움에 푹 빠져볼 수 있다.

 

산은 더없이 푸르고 오월의 꽃들은 하얗게 피어나 향기를 뿌리고 인왕산과 북악산 정상에서 600년 전의 눈으로 바라보면 상전벽해가 된 사대문 안의 서울 도심이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제벌의 부를 과시하는 잠실의 마천루는 어디서나 지표를 알게하는 랜드마크가 되어 마치 도시를 호령하는 듯하다. 정상에서 내려와 창의문을 지나면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 우리는 잠시 문학관에 들려서 기록영화도 보고 부암동 암문을 통해서 성곽 안으로 들어와 다시 부암동과 평창동 쪽의 부촌을 바라보면서 가장 높은 도성 곡장으로 치닫는다. 곡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돌고래 쉼터, 백악 쉼터가 있고 백악마루를 지나면서도 우리는 무엇에 심취했는지 1.21 사태 소나무를 보는 걸 놓쳤다. 그렇게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력 같은 나무를 못 보다니 다시 갈 수도 없는데 너무 이 쉬웠다.

 

숙정문에서 말바 위안 내소에 들려서 표찰을 반납해야 되는데 잠시 길을 잘 못 들어 한참을 내려오니 숙정문 안내소였다. 그래서 다시 나무계단을 거슬러 올라서 말바 위안 내소로 가는 길이다. 이왕 잘 못 든 그 숲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데 서울 도심에 이렇게 좋은 숲이 있는가 싶어 짙은 숲 속에서 잠시 쉬어가는데 새소리가 너무 좋았다. 늘 당연하게만 생각되었던 숲 속의 새소리에 귀 기울여 집중해 듣다 보니 그보다 더 좋은 휴양지는 없어 보였다.

 

이제 표찰도 반납했고 성북동 쪽 와룡공원을 지나면 도심이다. 그렇게 느리게 놀면서 걸었더니 약 6시간을 걸었고 혜화문에서 시작되는 낙산구간은 밤에 걸었지만 낮시간에 다시 걸어보자는 약속을 한 뒤 흥인지문으로 들어와 일정을 끝내고 그날 달밤 기행 때에 들렸던 광장시장에 들어가서 유명한 빈대떡집에서 간소하지만 푸짐한 뒤풀이를 했다. 5.29일 우리는 나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애기똥풀꽃

성곽길 시작

 

시대별로 성돌 모양도 다르고 크기와 색상이

달라서 더 보기 좋은 성곽의 바깥쪽으로 걷는 길.

왼쪽부터 성돌 모양에 따른 시대는 태조, 세종, 숙종, 현재 복원된 성체와 여장.

태조 때는 무정형의 작은 돌, 세종 때는 직사각형 모양, 숙종 때는 정사각형의 큰 성돌로 쌓음.

 

 

 

5월에 주로 피는 꽃

 

인왕산 정상에서 보는 서울의 도심과 남산

북악산(백악산)

 

인왕산에서 보이는 경복궁

5월 산에서 피는 꽃들이 다 비슷해서 구분이 힘든다.

산사나무 꽃, 가막살나무 꽃, 덜꿩나무 꽃은 거의 같은데

잎을 보고 구분한다. 이것은 덜꿩나무 꽃 같다.

 

 

 

창의문 가는 길

윤동주 문학관

창의문(자하문)

 

창의문 지나 백악 마루로 올라가는 길

북악산을 오르면서 바라보이는 인왕산 정상의 치마바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사가에 나가 있던 단경왕후가 중종이 왕후를 너무 그리워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궁궐에서 바라보이는 인왕산 정상 넓은 바위에 치마를 걸어두어 중종이 볼 수 있게 했다는 바위.

중종과 단경왕후는 금슬이 무척 좋았다고 한다.

북한산 보현봉이 보인다.

 

 

 

백악산 정상에서

 

백악 마루를 내려서서 왼쪽으로 돌아가는 곡장으로 가는 길

성 돌 모양으로 보면 여긴 다 숙종 때에 쌓은 것이다.

바깥 성체에서 암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서 곡장으로 올라간다.

여기도 세종 때와 숙종 때의 성 돌이 섞였다.

봄에 만난 가을여인들.

 

곡장에서 보이는 백악 마루

 

 

 

숙정문 측면

 

숙정문(북대문)

평창동 지나 성북동 와룡공원으로 가는 길에

적송이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뒤 태 자랑, 앞도 뒤도 멋져요.

평창동 마을의 부촌.

 

 

 

 

성 길의 명암

 

 

 

혜화문의 잡상들

혜화문(동소문)

헤화문에서 지난번 달빛기행으로 걸었던 낙산구간을 건너뛰고 도심으로 들어와서 대학로를 걷는다.

 

 

흥인지문(동대문)

`각자성석`은 축성을 맡은 지역명과 담당자 등을 새긴 성곽 돌이며, 일종의 ‘공사 실명제’로서 공사가 끝난 후

그 구간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축성을 맡았던 해당 군현(담당자)이 보수까지 책임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성 길을 10 시반경에 시작해서 6시간 넘게 걷었다.

완주인증받고 나서 광장시장에서 유명한 빈대떡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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