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note

인제천리길 둘째 날(자작나무 숲)

반야화 2018. 1. 23. 06:20

긴 여운이 남는 여행이다.

첫날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걷고 이튿날 자작나무 숲 길을 걷기 위해서 폐교를 멋지게 리모델링한 숙소에서 잠을 잤다. 학교였던 곳이라 3층짜리 건물이어서 밑에는 세미나실도 있고 식당과 숙소를 갖춘 넓은 공간이어서 많은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있는 편리한 시설이었다. 음식도 맛있고 인제군에서 차량도 지원해주고 인제 마을 분들의 정성이 담긴 음식 제공도 있어서 대접을 감사히 받았고 숙소도 비교적 깨끗해서 잠을 제대로 잔 것 같았다. 그런데 외풍이 심해서 추운 것보다는 연료 소모가 많을 것 같아서 아까웠다.

 

잘 자고 일어난 아침해는 어쩌면 그리도 맑고 밝은지 우리 모두의 기분 같았다.길가엔 38선의 표석이 있고 떨고 있는 철쭉 잎에 상고대의 반짝거림은 지난밤 추위를 짐작케 해준다. 숙소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자작나무 숲길 입구가 있어서 숲을 찾는 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숲 입구는 넓은 임도여서 쉽고 편하게 걸을 수 있었으며 길은 역시 얼어 있었다. 아직 어디쯤에 어떤 풍경이 있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자작나무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다 잘려나가고 말았다.

 

임도를 거의 다 올랐을 때쯤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들머리에선 듬성듬성하던 나무였다면 절정에 달하는 그곳에는 하얗고 빽빽한 자작나무 숲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다른 산행을 하면서는 쭉쭉 뻗어 있는 낙엽송만 봐도 "와, 멋지다"라고 했는데 이곳에서만은 자작나무 옆에 서 있는 낙엽송 나무는 몹시 추레하고 마치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서 있다기보다는 백로가 멋 부리는 곳에 까마귀가 시샘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여기서도 관계라는 것이 성립한다. 홀로 한 그루 자작나무가 서 있었다면 어떤 이의 시선도 빼앗지 못했을 것이지만 군락이 만들어낸 관계 속에서 그들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으며 낙엽송이 눈을 맞아야 겨우 만들아낼 수 있는 그런 풍경이다. 그러니 분장을 하지 않아도 분장 이상의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옆에 홀로 서 있는 제멋에 겨운 소나무조차 외면당하고 말았다. 그곳에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이 숲의 사연을 알고 보면 더욱 놀랍다.숲을 조성한 계기는 삼사십 년 전에 솔잎혹파리 때문에 소나무가 다 죽어서 그 대체로 자작나무를 심었는데 숲이 울창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장관을 만들어내었는데 어떤 단계를 보여주듯이 유치원 아이들이 먼저 숲 체험을 하고 그것이 점차로 알려져서 사진작가들의 손에서 퍼져나간 숲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사람을 불러들이고 마을의 보배가 된 듯했다. 숲 하나로 동네까지 부양할 줄은 인제군민들도 몰랐을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선견지명이 만들어낸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숲 조성에 참여했던 분하고 함께 걷는다는 것도 뜻깊었다. 인제 산림청 신입 직원이었던 분이 자작나무와 함께 나이를 먹으면서 중년이 되고 중년이 된 나무는 더욱 우람하고 빽빽해져서 각처에서 인파들이 몰려드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놀다 나올 때는 넓은 임도를 다 메울 만큼의 인파가 몰려드는 것에 놀랐다. 그분은 얼마나 나날이 숲에서 보람을 느끼실까, 엄청난 정신적 부자로 보였다.

 

아무리 좋은 곳이 있어도 숨어 있다면 찾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 좋은 숲과 걷는 길을 연결해 놓은 분이 또한 계신다.역시 그분과도 함께 걸었다. 난 이분을 보면 새옹지마라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신체의 건강을 잃고 마음의 건강을 얻은 분이다. 어느 것이 더 나을지는 그분의 생각이지만 그분이 건강했다면 아마도 인제 천리길은 탄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길을 열어 가는데 동참한 몇 분과도 함께 걸었다. 보통 "나의 길"이라고 하면 삶의 어떤 진로로 생각되지만 이 길을 길게 열어 둔 몇몇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그들의 길을 가졌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낄 것 같았다.

 

끝으로 하얀 설원애 더욱 잘 어울리는 자작나무 숲에서 남녀노소 없이 백지같은 마음으로 돌아가 쉬게 하는 숲이 주는 행복감에 듬뿍 취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나 또한 그 순간에는 마음 가득히 즐거운 마음 외에 그 어떤 것도 스며들 틈을 내주지 않았다. 때때로 누구나 이런 힐링의 시간들이 필요할 텐데 그럴 때는 다 자작나무를 끌어안고 그 숲에 뒹굴라고 말하고 싶다. 정신적인 어떤 고품이 있을 때 그곳으로 가면 그 고픔을 다 채워줄 것이다. 아, 이 포만 간의 여운은 오래 남으리라.

 

폐교를 리모델링한 숙소

 

서리꽃

숲 길 들머리

건너편의 원경

 

 

 

 

 

 

 

 

 

 

 

 

 

 

 

 

 

 

 

 

맛있는 점심

박인환시인 문학관이 있는 뜰에 세워진 시인의 흉상

박인환 시인의 고향이 인제라는 것을 알았네. 문학관 안에는 그 시대의 시인들이 즐겨 찾던 다방을 재현해 두었고

유품이며 여러 시들을 남겨 놓았다.대표적 시인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시인의 유품

시인의 향기를 느끼는 곳

내린천의 풍경,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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