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동 해맞이공원-정암해변-낙산사-낙산해변-양양 남대천-양양 장터
길은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길은 삶의 길 뿐이다. 길 앞에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고 어떤 길의 끝에는 목적지가 끝났을 뿐 언제든 다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겠냐만 느즈막에 가장 좋아하는 테마의 길은 아름다운 동행이 있는 길이다. 요즘 난 자주 그런 길을 간다. 세상에서 길을 제거하면 무엇이 남을까,....
봄은 자꾸만 밖으로 나를 불러내고 나는 봄바람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나서기만 하면 언제나 동행이 있어 너무 좋다. 이번에는 앞 뒤 다 잘라먹은 생소한 해파랑길 44코스로 가는 길이다. 부산에서 시작해서 38선을 그은 곳까지 동해안을 따라 우리나라 등줄기를 따라가는 길이다. 처음부터 걸었다면 곧 끝 지점에 다다르는 막바지, 숨이 차서 쉬어가야 하는 구간쯤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길에는 어떤 봄이 와 있을지, 무엇을 만날지 기대된다.
설악동 해맞이공원에서 인제천리길팀과 합류해서 정암해변을 걷는데 거듭되는 미세먼지가 심해서 마스크를 착용했더니 답답해서 벗어버리고 나니 바다내음에는 먼지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제주와는 또 다른 짙은 물빛과 하얀 파도가 또르르 말려오는 것을 보면서 해변을 걷는 재미가 있었다. 정암해변을 벗어나 낙산사로 가기 위해선 한참 동안 차도를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낙산사 입구에 들어서자 완전 다른 공기가 너무 좋았다. 푸르고 멋진 자태의 적송들이 만들어내는 풍경도 좋지만 솔향과 숲에서 나오는 청량제 같은 공기를 깊이 들이켜 보니 들숨보다 날숨이 많았던 부정맥 같았던 호흡이 그제야 편안해졌다.
핸드폰도 없던 까마득한 시절에 찾았던 낙산사는 화마에 소실되고 새단장이 되어서 더욱 낯설었고 전각들조차 본래의 자리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의상대와 홍련암은 그대로여서 그 아련한 기억 한 줄기를 찾아낼 수 있어서 참 반가웠다. 그뿐 아니라 동해를 바라보며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사안녕을 비는 듯한 해수관음의 인자함도 그대로였다. 낙산사 경내에는 매화가 피었고 그 향이 얼마나 짙었는지 어떤 값진 향수보다도 향기로워서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낙산사에서 보시하는 국수 한 그릇을 점심으로 먹었다. 국수 그릇의 비주얼에는 맛이 보이지 않았지만 길게 몇 가락 넘어가는 마각에는 세상의 맛이 다 살아날 만큼 맛있었다. 그 착한 국수의 맛을 그대로 살려 자유시간을 이용해서 홍련암과 의상대를 둘러보고 나니 아직 연두색 봄색깔이 없어도 풍경이 너무 경이로워서 먼지 같은 건 다 날아간 것인지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낙산해변을 걸으면서 봄바다의 낭만에 푹 젖어들다 보니 양양 남대천과 만나는 곳이 나온다. 남대천은 연어의 산실답게 강변을 아름답게 가꾸어서 휴양지가 되어 있고 강변 차로는 꽃이 피면 다시 찾고 싶어 지도록 벚나무 가로수가 잘 가꾸어져 있으니 연어의 고향이자 산실이며 생애를 끝내는 곳으로 연어의 바람을 다 채워줄 만큼 무척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도 시간을 즐기고 싶었지만 갈길이 바빠서 그냥 스치는 아쉬움을 남겨두고 그 아쉬움에 싹이 트면 이끌림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길을 간다
벚나무 겨울눈이 곧 터질듯한 꽃망울을 이슬방울처럼 매달고 봄바람에 일렁이는 길을 한참 걸어 이제 양양 오일장으로 간다. 오일장을 본지도 참 오래되었다. 양양 오일장은 대단했다. 마치 남대문시장만큼 사람이 붐비고 온갖 농산물이 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구경만 해도 즐거울 것 같았는데 가는 차편을 미리 예약을 해서 골목마다 누비면서 구경하는 재미를 놓쳤다. 여행은 언제나 미완의 여운을 남긴다.
정암 몽돌해변
서핑을 배우는 교육생들이 마치 고래 떼같이 보인다.
낙산사로 가는 길
낙산사 일주문
낙산배의 시조 나무
해수관음
의상대
홍련암
홍련암 법당 마루에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창을 두었다.
바닷물이 법당 밑으로 드나드는 모습
양양 남대천의 강변
'living no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오는 날의 수채화 (0) | 2018.05.13 |
---|---|
한양도성길(인왕산구간) (0) | 2018.05.08 |
몽당연필과 추억 (0) | 2018.02.28 |
인제천리길 둘째 날(자작나무 숲) (0) | 2018.01.23 |
상서로운 출발 (0) | 2018.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