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둘러본 곳
톱카프 궁전-아야 소피아 성당-불르 모스크-예례 바탄-카리예 박물관-테오도시우스 성벽-발렌스 수도교-돌마바흐체-탁심-갈라타 탑 보스포루스-카라쿄이-갈라타 교. 그랜드 바자르 등등, 아시아 쪽-베일레 르베이-위스퀴다르-카드 쿄이 등.
부르사에서 밤에 도착한 이스탄불, 제일 먼저 본 것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술탄아흐멧 광장의 아야 소피아와 블루모스크의 야경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그 유명한 아름다움 속에 서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숙소를 정한 다음 우리는 이튿날부터 도보로 볼 수 있는 곳을 두루 둘러보았다. 술탄아흐멧 광장은 언제나 전 세계의 사람들로 붐비고 튤립 꽃이 광장 정원을 메우고 있었으며 소피아 성당과의 사이 중앙에 분수는 힘차게 솟아오르는 곳이다. 여러 곳에 입장하는데 티켓 구매가 너무 더디고 많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힘든 과정이다. 그리고 입장료가 좀 비싼 편이다. 우리 돈으로 15,000원 정도, 그러나 들어가면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만한 볼거리가 있었다.
터키는 어딜가나 먼저 보이는 것이 자미(이슬람 모스크)가 눈에 띄는데 자미의 건축물은 밖이나 안이 다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었다. 오스만 시대의 것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그중에 단 하나 아야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의 걸작인데 불르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는 역사를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곳이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그리스 정교 본산이며 높이가 높아(54미터) 천상이 연상되는 곳. 우선 아야 소피아에 대해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우주관에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었다가 모스크로 바뀐 곳이다. 돔을 가진 최초의 건축물이며 천명의 목수와 만 명의 노동자, 5년 10개월 4일 만에 537년 12월 26일에 완공, 유스 티 아노스 황제가 첫 예배를 드리면서 , 아름다움에 취해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라고 경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물로 황소 1000 마리, 양 6000마리, 1만 마리 이상의 새와 닭을 바쳐 감사드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밀가루 3만 부셀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돔은 하중을 줄이기 위해 기공이 많은 진흙 벽돌로 썼으며 돔의 하중은 4개의 거대한 아치로 분산시키고 아치와 아치 사이에 기둥을 바쳤다. 그리고 동서의 아치는 다시 반원의 아치와 소형 반원형 돔으로 이어지게 하여 하중을 분산시켰다고 한다. 실내는 빛으로 츙만하도록 창을 많이 냈다. 그런데 비잔틴이 오스만의 마흐메트 2세 때에 점령당하면서 성당의 벽에는 회칠을 하고 코란을 써넣어서 미나레를 세운 다음 모스크로 바꾸어버렸다. 본당에 들어가면 각 제국에서 보내온 107개의 기둥이 있고 일부는 신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현재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잘 보존하고 있다.
블루 모스트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가 있다. 이 자미는 14대 술탄인 아흐멧 1세가 20세에 건립을 추진하여 7년 후인 1616년에 완성했다. 터키인들에게 아야 소피아는 그리스 꺼라는 것 때문에 불르 모스크는 그보다 더 잘 지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서 규모를 성당보다 더 크고 위치도 더 높으고 화려하게 건축했다는 자부심을 가졌지만 실제로 보면 아야 소피아 성당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나레도 술탄은 원래 4개를 세우는데 6개로 되어 있는 것은 터키 말인 황금은 알튼이고 숫자 6은 알트다. 술탄은 미나렛을 황금으로 세울 것을 명령했는데 당시 제정을 생각해서 건축가는 6이라는 숫자로 잘 못 알아들은 척하고 6개를 세웠다고 한다. 그 후에 메카에 있는 미나 레와 같을 수 없다는 이슬람들의 항의가 있어 결국 메카에 미나렛 1개를 더 세울 수 있는 자금을 지원해주고 나서 잠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월로 비교해도 천년이 넘는 것과 400년 된 것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두 건축물은 광장 좌우를 꽉 메우고 서서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훌륭한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보스포루스를 건너면 바닷가 멋진 위치에 돌마바흐체 궁전이 있다. 이곳은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를 찍을 수 없었지만 톱카프 궁전의 화려한 색체의 청자보다 단조로운 색상의 문양이 있고 모든 물건들이 마치 금방 생활하던 공간처럼 배치되어 있어 현대적 감각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방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가구들의 장식은 아주 화려하다. 이 궁전을 짓고 나서 제정이 나빠졌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베일레 르베이 궁전도 있다. 두 궁전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터키에서 유적들을 보면서 잠시 우리나라를 떠올려 보았다. 터키의 유적은 대리석과 벽돌이 많은데 우리는 흙이 많았으니 오랫동안 남겨지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주로 빈 터만 남아있는 우리의 고대 유적과는 비교할 대상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빈터라도 한 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제주를 가면 선 사유 저을 찾아봐야겠다.
톱카프 궁전으로 들어가는 문과,
밑으로는 궁전 내부
하렘의 흑인 환관들
이들은 경비나 잡무를 담당하였고 술탄과 만날 기회가 많아 권력을 가지기도 했다.
하렘 바깥 공간
금장식 거울
벽난로
하렘에 있는 왕의 어머니 방
하렘이란, 각지에서 모인 소녀 약 500명이 살았고 궁궐의 여자들만 기거하던 방,
하렘의 구조는 술탄의 모후가 최고의 지위에서 여성들을 관리하였다.
술탄의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는 여러 개의 방을 주었고 술탄과 잠자리를 함께한
여성에게도 독방이 제공되었다. 그리고 술탄이 죽으면 여성들은 다른 궁전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단순한 생활을 하며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밑으로, 아야 소피아 성당
아야 소피아 성당 정면과 밑으론 내부 모습
성당 천장
성모 마리아와 예수
악마의 눈, 터키에서는 이것으로 상품을 만들어서 부적으로 팔고, 몸에 지닌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닥인데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닳고 닳아서 반짝거린다. 더러는 약간 꺼진 곳도 있었다.
바닥이 금이 많이 갔다.
성당의 반은 지금 수리 중이다.
대단한 뜻을 지닌 모자이크다.
성당을 바치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콘스탄티노플을 바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오른쪽)
폰으로 찍은 아야 소피아의 야경
예례 바탄(지하 저수지)
기둥이 많아서 지하궁전이라고도 함, 화재로 인해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6세기에
재건되었다. 저수지 내부는 높이 9미터, 길이 143미터, 폭 65미터다. 336개의 대리석 기둥이
천정을 떠받치고 있다. 기둥에 다양한 문양이 있는 것은 제국령 각지의 신전 등에서 운반해왔기 때문이다.
저수지의 물은 20킬로나 떨어진 북쪽 교외의 베르그 라드 숲에서 토관과 수도교를 거쳐서 공급되었으며
비잔틴 시대에 궁전과 아야 소피아 성당과 톱카프 궁정에 물을 공급하던 곳.
블루모스크 정면
문에 쇠줄이 있는 것은 술탄이라도 신 앞에 들어갈 때는 말에서 내려서 고개를 숙이라는 뜻
모스크로 들어가기 전에는 꼭 발을 씻어야 한다.
모스크에는 발 씻는 곳이 어디에나 있다.
밑으로 모스크 내부 모습 이즈닉 청자로 장식
모스크 내부 중앙에 있는 대형 기둥
벽체가 푸른 청자로 되어 있어 블루모스크라 함
술탄 아흐멧 광장의 정원
청동 탑, 청동으로 만든 뱀 기둥인데 콘스탄티누스 1세가 그리스
텔포이 아폴로 신전에 세워져 있던 것을 약탈해서 여기에 세웠다.
히포드롬 관장에 있는 오벨리스크,
이집트 파라오가 시리아 정복을 위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
콘스탄티노스 황제와 그의 아들에 걸쳐서 이 탑을 가져오려고 시도했으나 둘 다 죽고 아들
율리아 노스가 오벨리스크를 콘스탄티누 폴리스(비잔틴 수도)로 가져오라고 명령, 그러나 이걸
가져온 사람은 테오도시우스 1세라고 한다. 원래 길이는 60미터, 무게는 800톤, 너무 무겁고
위험해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가운데 윗부분만 가져옴. 현재는 전체 높이 26미터다.
3500년 전에 만들어져 현재의 자리로 옮겨온지가 1600년 지났다고 함. 바로 앞에서 보면 잘렸는데도
무척 높았고 끊김이 없는 통 대리석을 어떻게 만들고 세웠으며 상형문자까지 새겼는지
너무 감탄스러웠다. 과연 세계 7대 불가사의다웠다.
오벨리스크 기단의 조각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
독일 빌헬름 2세가 이스탄불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분수대
톱카프 궁전에 붙어 있는 튤립공원
술탄 아흐멧 3세가 튤립을 심어서 튤립공원이라고 하는데 튤립은 페르시아가 원산지이며
터키에서 재배했고, 네덜란드 대사가 본국으로 가져가 개량종으로 재배했다고 함.
현재 터키와 네덜란드의 국화로 지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