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산행을 한 뒤라 곤히 자고 났더니 아침부터 촉촉이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동안 날씨가 추워서 눈이 오래 덮여 있었으니 갈증이 날 때는 벌컥벌컥 물을 마셔야 해소가 되듯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눈 물을 받아 마시기에는 해갈이 되지 못하던 대지의 생명들이 비라기 보다는 비료 같은 물기를 적기에 마시게 되었으니 바라보는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것 같다.
연초에 회의를 거쳐 새해부터는 가끔씩 원정 산행을 하기로 정하고 어제가 그 처음인, 파주에 있는 감악산으로 갔다. 봄기운이 도니 어린 대원들이 여럿 참석하게 되어 반가웠고 그동안에 키도 큰 것 같았다. 총 20명이 참석했고 승용차 4대로 나누어 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도 했지만 처음 가는 곳이라 모두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산 입구로 진입하는 길은 몇 구비를 돌아치는 가파른 길이었고 법륜사에서 바라보는 산세는 그리 높을 것 같지도 않고 코스가 길지도 않을 것 같았지만 막상
오르다 보니 한자리에서 다 볼 수 없는 봉우리들이 있고 가파르기까지 했다.
사람 마음이나 산의 깊이는 들어가 보지도 않고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얼마 가지 않아서 깨닫게 되었다. 그저 이말산 정도라고 생각했던 짧은 소견이 얼마나 과소평가였는지를 알게 하는 높은 봉우리와 가파른 길이 잔설도 있고 해서 무척 힘들게 올라야 하는 코스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 대원들이 걱정이 되었는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빠르고 잘 가서 눈앞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정상에 오르니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았고 어떤 무영 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글씨가 없어 몰랐으니 찾아보니 그 비석이 글자가 마멸된 비틀대왕 비이며 북한산 순수비와 형태가 흡사하다 하여 ‘진흥왕 순수비’라고 주장하는 설과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설인 귀비’라는 속설이 각각 전한다. 또 이곳의 장군봉 바로 아래에는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 굴도 있다 하는데 보지 못하고 와서 아쉬움이 남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서울산에서 보던 아파트 바다와 마천루 같은 빽빽한 도시가 아니라 오른쪽으로는 큼직한 저수지가 여러 개 있는 정겨운 촌락이 있고 왼쪽으로는 임진강이 먹여 살릴 듯한 넓은 들판들이 금방이라도 황금물결이 이는 가을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제는 날씨도 좋았고 그런대로 첫 원정 산행의 기대감을 충족해주는 즐거운 산행이었고 하산해서 보양식까지 먹었으니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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