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사에 두고 온 마음,
올해다 내년이다 하는 거 다 인위적으로 나누어 놓은 세월이지 시간은 그냥 흐르기만 할 뿐이다.年과 年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느끼는 찰나가 새해라고 하기엔 믿어지지 않아 해마다 뭔가 선을 긋고 싶어 새해 해맞이를 하게 되고, 매일 보는 식상한 태양과는 달리 벅차게 가득 채우고 오는 희망 같은 게 있어서 새해 아침을 해맞이로 시작하는데 어느새 또다시 시간을 갈라 야한 끝 지점이 되었다..
어제는 친구와 올 한 해의 마무리를 하는 송년 산행을 했는데 뜻하지 않게 승가사로 가게 되었다. 물론 전에도 두어 번 둘러본 적은 있었지만 안내 글자 하나도 안 읽고 눈에 보이는 것만 대충 본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교회에 다니는 친구의 안내로 대웅전 뒤편에 백팔 계단 끝 산속에 마애불상이 있다는 걸 알고 함께 너무 좋아서 고맙다는 말을 거듭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르게 되었다. 모르고 보면 스쳐 지나게 될 만큼 경내에서는 눈에 들어오질 않는 곳이다. 그렇게 올라서 보니
그토록 잘 생기고 거룩해 뵈는 마애 석가여래좌상이 계실 줄이야, 바라보는 순간 온 마음이 한 곳에 묶여버리고 감탄사조차 숨죽일 정도로 환희의 빛이 서려있는 것 같았다.
규모도 대단하고 바위도 거의 흰색에 다 반듯해서 산에 흔히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고 거기다가 마애불의 모습까지 세월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고 금방 갈아입은 장삼 같은 게 꼭 불국사 석굴암의 부처님과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시대 같으면 그 정도의 조각이면 아주 유명한 작가의 예슬의 극치라고 할만할 텐데 고려시대였으니 기껏 솜씨가 뛰어난 석공 정도로 인정받았을 것 같다.
마애불은 불상을 새긴다고 하지 않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하듯이 처음 발견될 때는 득도한 사람의 눈에 암석 속에 원래 계시는 부처를 다만 겉을 약간 걷어 내어 그 모습을 나타나게 해 드리는 일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니 그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무슨 기술과 도구로 그렇게 섬세한 선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 계단도 어쩌면 그렇게 같은 간격으로 108개로 딱 맞게 나뉠 수 있었는지 오르는 동안에 무아지경이 되었는가 다리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런 곳이라면 신심이 절로 나고 서원이 다 이루어질 것 같아 마음은 그곳에 두고 몸만 내려왔다. 언젠가 마음이 날 그곳으로 이끌면 다시 가서 두고 온 마음까지 한아름 성취감의 기쁨을 안고 돌아와야지.
석굴 속에 계시는 승가 대사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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