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계절에 가고 싶었던 경주남산, 드디어 오월 중에서도 산행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다 갖춘 날 날아가는 기차를 타고 남으로 가는 길은 살아있는 풍경화 속으로 가로질러 들어가는 느낌이었다.전국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신경이 쓰였지만 난 운좋게도 남북을 오가는 사이에 비는 한 방울도 맞지 않고 비 사이사이를 피해 다니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이었다.파아란 하늘에 뭉게구름처럼 파아란 산에 아카시아꽃이 뭉게뭉게 피어 있었고 달려가는 동안 마음이 즐거워서 전 날에 잠은 거의 못 잤지만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수면효과를 내는 아주 평화롭고 편한안 상태였다.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경주는 발을 내딛는 순간 아카시아향이 온 몸으로 밀려 들었다.경주남산에는 시부모님 산소가 모셔져 있기도 하고 그 곳에 살 때 자주 찾아가던 곳이라 늘 그리워햇던 곳이다.
남산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만큼 많은 불교유적들이 산재해 있어 불교성지라고도 한다.너무 오랫만이라 감개무량한 마음으로 온 몸의 털구멍으로 아카시아와 떼죽나무꽃의 향기로 향기욕을 즐기면서 그리워하던 마음까지 향기에 젖는 향수병에 테라피효과를 만끽하게 되고 옛날에 시어머니 모시고 다니던 곳곳을 둘러보는데, 상사바위 앞에서 무상한 세월에 다 잃어버리고 돌아 온 나의 변모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그때 어머니께서 상사바위에 동전을 붙이면서 손자 보기를 기원하셨지만 나는 그 소원을 드러드리지 못했다.만약에 바위에 붙인 동전이 10원짜리 구리동전이 아니라 한 오백원짜리 였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어느새 나 또한 그 앞에서 우리 어머니같은 마음으로 내딸에게 아기를 점지해 주옵시기를 기원하게 되다니........
시간이 충분했으면 다 둘러보고 싶었지만 당일 돌아와야 하는 부족한 시간이라 비교적 짧은 코스로 포석정에서 출발해 삼릉계곡으로 하산하면서 중간에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했는데 그 즐겁던 마음에 잠깐 혼자 찾아뵈어야 했던 죄송하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나왔고 모든게 그렇지만 자연으로 돌아가신 그곳에도 세월의 풍파는 어쩔 수 없었는건지 옛날같지 않았고 왜 그렇게 작아보이는지,돌아서는 발걸음이 편치 않았다.잠시 울적한 마음은 접어두고 남산의 모든것과 만나는 빈틈없는 산행을 거의 끝내고 시가지로 나가는 길에 참으로 오랫만에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보고 수채화 물감이 바람을 타고 번져나가는 것 같은 풍경이 약간은 지친 하루에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주는 내마음의 물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