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노란각시를 만나다

반야화 2011. 4. 20. 23:11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단 한 번의 기억으로 남겨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첫사랑의 추억처럼, 그걸 지키지 못하고 오늘 또 오류를 범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3년째, 첫해 봄에 진달래 능선에서 능선 양쪽으로 진달래가 마치 래드 카펫을 밟고 걸어가는 주인공의 들러리처럼 화려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때 나는 그 길을 선택된 주인공처럼 진달래의 축복을 받으면서 걷는 기분을 느꼈었지. 그렇게 기분 좋은 기억을 담아 오던 밤에는 잠도 이룰 수 없었다. 잠자리에 누워 있으면 낮에 본 그 꽃 길이 깜깜한 밤에도 꽃잎을 열고 그 빛깔로 그렇게 아름답게 피어 있을까, 아니면 달님이 놀아줄까,하는 철 없는 생각 때문에 해마다 봄이면 잊을 수 없는 기억이고 추억인데 차라리 아름답게 남겨둘 걸 작년 봄에도 찾아갔었고 오늘도 찾아갔었다. 그런데 연거푸 실망을 하고 돌아오다니. 이제는 미련을 버리고 그해 봄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만 간직해야겠다고 마음을 닫아 두기로 한다.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쳐 그 고운 꽃길을  못 볼까 봐 불현듯 가 봐야겠다고 커피와 물만 넣고 오늘 오후 한 시 반쯤에 일을 하다가 팽개치고 달려갔는데 진달래는 보이지 않고 날은 저물고 할 수 없이 중간쯤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때가 일러서 그렇다기보다는 나무에 꽃망울이 맺혀있지가 않아서 더 있다 간다 해도 내 기억 속의 꽃길은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수유리까지 내려간다면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기억 속에는 능선 잎구에서부터 화려하게 피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가 보고 싶지도 않고 집과의 거리도 불편하고, 실망하고 돌아오는데 대동문에서 말로만 듣던 노란 각시붓꽃을 발견하게 되고 너무 반갑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흠뻑 빠져서 카메라에 담아 왔다. 청색은 흔하게 봤지만 노란색은 처음이다. 그림으로는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꼭 보고 싶었는데 그님을 만나다니, 산이란 늘 그렇게 오르고 나면 실망으로만 보내지는 않는구나 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보는 연두색도 참 좋았고 노랑, 분홍, 흰색이 잘 어우러져 있는 산의 색채가 아름다워서 그 풍경을 보는 마음밭도 파릇파릇하게 물들게 되어 오늘 하루는 행복한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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